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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오! 주님 채우소서 (요 4:13~15 주일예배 20190428)

by 온누리선교 2019. 4. 25.

성경본문: 요한복음 4: 13~15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설교: 오 주님 채우소서

 

생수의 특징을 아십니까?

대부분 깨끗한 생수는 지하에 숨겨져 있습니다. 현재 지금 가장 깨끗하다는 생수, 제주 삼다수는 대한민국 유일의 화산암반수로 제주도에 내린 빗물이 현무암층을 거치면서 화산암반에서 걸러진 물을 지하 420m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깨끗한 영혼의 생수를 어떻게 얻어야 할까요? 더럽고 추악한 우리의 죄의 빗물이 회개와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걸러지고, 하나님을 저 깊은 곳에서 영적으로 만날 때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아주 깨끗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조용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곳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얻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알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는 아주 놀라운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행복이 바로 우리가 사는데 힘이 됩니다. 힘이 있어야 우리가 일어나 걸어서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렇게 될 수 있냐고 쉽게 그렇게 되는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에 아름다운 얼굴과 우아한 자태. 고상한 표정을 한 그리스 소녀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가난한 시골 소녀가 그 동상을 마주 대하게 되었는데 소녀는 선 채로 그 동상을 빤히 쳐다보다가 집에 돌아가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었습니다. 그 다음날 그 소녀는 다시 동상 앞에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서 그녀의 누더기 옷을 수선했습니다. 날마다 소녀는 변화되었고. 모습은 더 우아해졌으며. 얼굴은 더 세련되어 갔습니다. 소녀는 그 유명한 동상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소녀의 외모가 변모된 것입니다. 시편 17:15절에 다윗은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사람은 날마다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닮아 가기를 구해야 합니다. ‘예배는 이렇게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주의 형상으로 점점 변해가는 성화의 과정을 갖게 만듭니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우리들로 하여금 점점 더 참된 행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사는 이런 행복을 누리고 사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늘 어디를 갈 때에 그냥 가는 법은 없습니다. 슈퍼에 가게 되면 알뜰하게 세일되는 쿠폰을 들고 조금이라도 더 싼 먹을거리를 사러 가서 멋진 밥상을 차릴 꿈을 가집니다. 또 직장에 가게 되면, 한 달 후에 내 통장으로 들어오게 될 월급과 그것을 가족들과 함께 어떻게 재미있고 즐겁게 쓸까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아침 일찍 일어나 오후에 퇴근할 때까지 다닙니다. 이렇듯, 우리는 어디를 갈 때마다 그곳에서 지내는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며 목적 있게 다닙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또 세상 적으로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예배의 전에 나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무엇을 얻고자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수가성의 여인처럼 예배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회복과 은혜를 깨달아 알고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14절의 말씀입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진짜 목마르신 것 때문에 말씀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축복을 받는 예배를 빗대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혈통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타락해버린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나님은 두렵지만 경배하고 싶은 분이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하고 복을 받고 싶지만, 자신들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자들이었고, 순수한 혈통과 신앙을 지켜온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배 드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상처받은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거부하였고, 유대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그리심 산의 예배는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 둘 사이에는 골이 깊은 갈등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마치 장충동 족발집 원조가 자기라며 또 장충동 동네에서 자기네 집이 족발 맛이 가장 최고라며 식당들끼리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마치 기득권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황당하시고, 웃기는 일이겠습니까? 예배에 있어서 주체는 하나님이신데,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 있어서 주체는 예배라는 형식, 장소가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아주 명쾌하고 정확한 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계셨지만 이 여인은 그 만남을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겉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유대인 남자인 당신이 사마리아 여인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내게 주었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속 깊은 갈증을 다 알고 계셨고 그래서 그 갈증을 온전히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아직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을 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물 한 그릇 기를 수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나에게 그런 생수를 주신다고 합니까? 이 우물은 야곱이 판 우물이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짐승들과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해 왔는데, 그러면 당신은 야곱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예수님은 여인의 말을 들으셨는지 듣지 못하셨는지 그저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속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기서 부터 여인의 시각이 조금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15절입니다.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런 물이 진짜로 있습니까? 있다면 저에게 좀 주세요. 그래서 앞으로는 목마르지도 않게 해 주시고, 또 다시는 이 뙤약볕에 여기로 물을 길으러 오지 않도록 해 주세요.”

여인은 이제야 예수님께 무엇을 구합니다. 그러나 그가 구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을 한 번 만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마법의 물과도 같은 것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저 육체적인 갈증을 영원히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물말입니다. 예수님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도 좁혀진 거리보다는 좁혀져야 할 거리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도 정도는 다르지만 아마도 항상 예수님과 어느 정도는 이런 관계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참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헛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주님은 영원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자꾸 일시적인 것들,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관심을 더 가지고, 예수님은 하늘의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땅에 속한 것들에 대해 집착하고... 이런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아도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남겨 놓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어떤 면에서는 항상 주님과 평행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지고 또 더 성숙해 지지 않는 이유들 중에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이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저는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이름만 대면 다 아실 그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잘 몰랐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고 2, 3년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이 대부분 어린아이 수준의 신앙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은 미국 로버트 슐러의 적극적 사고방식의 한국판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잘 믿으면 잘 된다는 것이 그 목사님의 설교의 거의 동일한 요지였습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 실패하고 상처받고 살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 설교를 듣고 아주 쉽게 신앙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자라야 할 신앙이 성장하지를 않았습니다. 소위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는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아도 정말 정말 신앙이 유아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20대 후반에 가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이 성도들을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라 성도들 자신의 관심, 그것도 지극히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관심에만 붙들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을 소원을 말하면 다 들어주는 램프요정 지니처럼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님들이 더욱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 중에는 100퍼센트 영적인 복들이고 그것이야 말로 진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구하고 또 그것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물에 대해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성도 여러분 이런 물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주님께서는 진짜로 우리에게 이런 물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습니까? 이 복을 받는 일은 이런 복이 있고, 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복을 받게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또 그런 복을 주셨을 때 그 복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이런 물을 마셔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마셔본 적이 없는지 궁금하시죠? 제가 그 기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음식을 아주 아주 맛있게 하는 그런 음식점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배가 많이 고플 때, 그런 음식을 먹으면 그 만족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눈이 번쩍 뜨이고 저절로 탄성이 나오고 미소가 생겨날 지경이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니죠. 그런 경험은 나중에 집에 가서도 다시 그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기회만 되면 다시 그 집에 가 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들을 받았을 때, 우리에게 생겨나는 반응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마실 때, 우리는 정말 정말 완전한 만족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기쁨과 영혼이 꽉 찬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과 만족은 그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우리를 진짜로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복은 우리가 그 복을 계속해서 더 온전하게 더 풍성하게 누리고 싶다는 갈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 복을 놓치기 싫다는 애타는 마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중심으로 살게 합니다. 그 은혜를 더 달라는 기도, 그 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도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 안에는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물을 마실 수 있는 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건강 그런것 상관없이 우리 영혼을 그렇게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순전히 영적인 복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로 그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주님의 축복으로 생명의 물로 채워달라고 계속 우리는 구해야합니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구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 주님 채우소서!”라는 기도가 날마다 응답되시는 하루하루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루하루를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시작하고 또 그 은혜 가운데 하루를 마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셔서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주님!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서 치유받고 성화되어 온전하게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스스로는 이것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없사오니, 주님께서 만져주셔서 메마른 우리의 영혼을 촉촉이 적시시사 씨가 뿌려지게 하시고 싹이 나게 하시고 굳건히 자라게 하실 뿐 아니라 열매 맺게 하셔서 다른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사마리아 여인으로 인하여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온 것처럼, 우리도 많은 사람들을 주 앞에 인도하는 쓰임받는 자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