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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후서강해 40) 오직 진리를 위하여 (수요예배 20200212)

by 온누리선교 2020. 2. 11.


 

성경: 고린도후서 13: 8~13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설교: 오직 진리를 위하여

 

복음서에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기심에 그 마음이 젖다보니 결국은 아버지가 물려준 축복까지도 다 죄악으로 바꾸어서 까먹고 맙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삶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의 축복도 한 사람의 축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축복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확대되어 드러나는 축복, 별과 모래 수처럼 넘쳐나서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축복의 사람은 믿음부터, 마음부터, 태도부터, 하는 일부터, 접촉하는 모든 것까지도 축복으로 열려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축복받은 자로서 고린도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아주 축복의 인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축복의 인사들의 내용들이 참으로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답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주신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놀라운 축복 받으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8~10절의 말씀입니다.

 

8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9.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10.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하여 바울은 '오직 진리를 위해 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8절에서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며 바울은 진리를 거스르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거스른다는 것은 진리를 거역하는 것이며 진리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집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는 집과 비슷하나 집은 아닙니다. 집이 실체이며 그림자는 집의 반영일 뿐입니다. 사진은 실물과 똑같습니다. 허나 실물은 아닙니다. 실체는 실물이요, 사진은 실물이 반영된 그림자일뿐 입니다. 그림자는 변하는 것이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 우상, 이것들은 모두 그림자들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모두 그림자일 뿐입니다. 스스로 계신 참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참 진리 이십니다 ( 14:6)

그러기에 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을 걸고 생명도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가지고 일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약함이 강함으로, 온전함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9절에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라고 한 것은 바로 사도 바울이 주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힘을 느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사도적 권위로 주님의 일을 할 때 나타나는 기적과 축복의 일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끝을 맺습니다.

11~13절입니다.

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주의 백성들을 간절히 축복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귀한 은혜가 임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11)라고 나와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고통 속에 있을 때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위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툼과 분쟁 속에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위로란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위안을 받는다, 마음의 유쾌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불쾌감도 가질 수 있고, 유쾌한 마음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공포 심리를 유쾌한 마음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보혜사라고 하는 뜻이 바로 위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위로를 베풀어주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위로의 영이 함께 동행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큰 위로가 있기를 소망하면서 위로를 받으라고 축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4에 보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있을 때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도 위로하실 수 있고, 또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은 바로 환난을 극복하시는 분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풍파와 한파가 몰아닥칠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사람에게는 없지만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주고, 또 뜨거운 햇빛이 강하게 쪼여주면 그것을 다 이길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당하는 어떤 고통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평안하십니까?’ 이렇게 우리 한국의 인사는 묻는 인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더 좋은 인사는 평안하세요 이렇게 축복해주는 인사가 더 좋습니다. 주의 백성들의 입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평안을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이 찬송을 부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사야 57:21에 보면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있는 평안도 없어질 뿐 아니라 평안이 오지도 않습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고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움이 있는 곳에는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주께로부터 임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중에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5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구원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노력하거나 자기 공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0:6에 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킴으로 천대까지 베푸시는 축복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험난한 광야 길을 걸어가는데 왜 시내산에서 돌비 십계명을 주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굴레 같지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특히 13절은 지금 우리 교회들에서 쓰는 예배의 마지막 순서인 목사의 축도 내용입니다.

축도는 복을 기원하는 단순한 기도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실 것을 선언하는 목회자만의 축복 기도입니다. 예배드리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한 축복의 선언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축도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나이다' 하지 않고 바울의 축도 형식을 따라 통상적으로 '있을 지어다'라고 기도합니다. 축도의 소중함을 깨달은 성도들은 이 축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깊이 있게 깨닫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축도를 통해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용기백배 하는 힘을 얻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야기라고 들은 미국의 한 믿음 있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축도를 통한 축복을 받고서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하는 마음으로 재빨리 가까운 이웃 교회로 달려가 목사님의 그 축도를 통한 축복을 다시 한 번 받았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이 놀라운 축복을 보낸 사도 바울을 우리가 참으로 닮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축복이 없지만 주님의 축복을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는 그 사명이야말로 정말로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고린도후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나타내신 기적과 축복의 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그 당시 받았던 유혹과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늘 기도하면서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섭리, 그리고 축복이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사도 바울처럼 잘 받들어서 주님의 것으로서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