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절: 마태복음 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설교말씀: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
어느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하는 도중에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신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괜찮으니까 계시다면 한번 손을 들어보세요.” 그 때 맨 뒤에 앉으신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한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놀라서 목사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정말 미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십니까?” 그러자 이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응! 옛날엔 나도 미운 놈이 많았는데 이젠 그놈들이 다 죽어서 하나도 없어!”
참으로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 흑인 해방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두움은 어두움을 쫓아낼 수 없고 빛이 있어야만 사라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만이 미움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악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들지만 그러나 그것이 미움을 이기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세상 일 같지만 사실은 악한 영들이 우리를 미움과 억울함으로 가득차게 만들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우리를 방해하고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사순절 기간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법으로 사는 것을 이 사순절 기간동안 배워야 합니다. 오늘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서 주님의 놀라운 축복의 비밀을 아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1절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오늘 말씀은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 형제가 내게 죄를 지었을 때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형제”는 성경에서 가족이라는 뜻도 되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아끼는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자신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한마디로 배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사랑하고 아낀다는 마음을 이용해서 이 “형제”가 죄를 짓습니다. 아마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배신감으로 마음도 상처를 입고, 화도 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형제”가 같은 잘못을 여러번 되풀이 하면서 당하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서, 율법에 나오는데로, “일곱번 용서하면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확실하게 듣기 위해 그는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22절입니다.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숫자적으로 490번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유대에서는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그래서 남을 용서할 때는 무한히, 즉, 그때마다 언제나 용서하라는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완전히 언제나 용서를 해야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어느 계명이 더 크냐는 물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6~40)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말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은 틀립니다. 성경에는 악을 이기는 길로, 누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라고 했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라고 말씀하며 또한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고 합니다. 나를 비우면 충만하게 되고, 내가 죽으면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짓는 자들이 악한 행동을 우리에게 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용서까지 해야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물리칠 수 없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노력해도 자꾸 미움이 차올라 죄를 짓게 만드는 사탄의 장난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나님께 그 원수를 맡겨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아무 죄없는 다윗을 사울이 질투로 괴롭히고 죽이려합니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사울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랬더니,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울을 직접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습니다. 전쟁에서 처참하게 다른 사람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왕은 다윗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10년 넘게 괴롭힌 사울왕을 자신의 손으로 망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을 죽이는 죄를 짓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평화롭게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모르는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에 대한 주님의 엄청난 축복입니다.
제가 예전에 벨라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 소개시켜드리기를 원합니다.
큰 교회 다니는 아나스타샤라는 20대 젊은 자매가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고 있는데, ‘교회 다녀요?’ 라고 물어보더랍니다.
그래서 ‘응 교회 다니지~’ 그랬더니 이 아나스타샤라는 자매가 교회 갈 때마다 짜증나고 겁이 많이 난다는 겁니다. 왜냐 했더니 어떤 사람이 자기한테 크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 사람은 아주 뻔뻔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고, 자신이 아주 친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너무 보기 싫은데, 보기만 하면 화나고,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너무 화가 나는데, 주일에도 그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교회에 너무 가기 싫다고 그냥 너 가는 교회 가면 안 되겠냐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벨라가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교회 가야해~ ”
아나스타샤가 깜짝 놀랐습니다. “뭐~ 왜?”
벨라가 말했습니다. “ 그 교회에 가야한다고, 그 사람 사랑해야한다고~ 왜 그러냐고? 우리가 하나님한테 잘못했어도 하나님 우리에게 오셨잖아.
만약에 네가 그 사람 때문에 교회 안가면 누가 좋아하는 줄 알아? 사탄이야~ 하나님한테 가는 걸 싫어하는데 네가 그 사람 때문에 상처 입었다고 하나님한테 안가면 사탄이 이기는 거야~ 너는 사탄의 뜻대로 하는 거야~ 너 그걸 반드시 알아야 해!“
그리고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서로 만났습니다. 아나스타샤가 벨라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나 어제 그 사람 만났어~ 정말 우연치 않게 교회 들어가자마자~ 딱! 얼굴이 맞부닥쳤어~”
벨라가 물었습니다. “ 어! 어떻게 했어?”
아나스타샤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놀랬지~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시하고 난 휙하고 인사안하고 지나갔어.”
벨라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기분이 어땠어?”
아나스타샤가 말했습니다. “정말 이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았어~ 화나지도 않고”
벨라가 말했습니다. “거 봐~ 넌 사탄에게 이겼어~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기뻐하셔~”
이것이 바로 “용서하고 또 용서하였더니 받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 손에 피를 묻혀 사탄에게 끌려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기에도 바쁩니다.
온전히 오늘 주님 주신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도 저 천국에서도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고 또 용서하게” 하소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살아서 우리가 변화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 이웃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므로 예수 이름으로 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성령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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