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갈라디아서 4:12~20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설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서울 신학대 조갑진 교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몇년 전 한 모임에서 어떤 분에게서 명함 한 장을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그분의 다양한 경력이 기록돼 있었는데 맨 마지막에는 40일 금식기도 2회,성지순례 1회라고 적혀 있었다.
또 어떤 교회를 방문했는데 그 교회 당회장실에서 미국 모 신학대학원과 한국의 모 신학대학원과의 공동 학위 과정에서 받은 학위 수여 사진을 출입구 정면에 크게 걸어 둔 것을 봤다. 그런데 그분의 후임 목사는 바로 그 자리에다가 미국에서 받았다는 학위 3개를 걸어두고 있었다.
어느 교회 목사는 단 3개월 만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들어와 성대한 학위 취득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한 단면이라고만 말하고 지나쳐 버리면 그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 공동체의 자랑하는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됨은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갈라디아교회 교인들도 이와 같이 신앙의 본질은 생각하지도 않은채 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바울은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탔습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랑스러운 왕손가문 베냐민 지파의 사람,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종교적인 배경,당시 최고 학부였던 가말리엘 문하의 수석 졸업생이고 율법적으로 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모든 자랑이라는 깃발을 내리고 그 자리에 예수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올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명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또 그 일을 목표로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운동선수처럼, 군인처럼, 그리고 신앙의 용사처럼 그의 인생을 경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갈라디아교회에 처음 할 때를 기억하며 그들이 배풀어줬던 사랑을 회상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을 형제들이라 부르며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사도 바울의 진심과 복음의 뜻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12절입니다.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울은 먼저 자신이 그들과 같이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어떤 자세로 복음을 잘 했는지 우리는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본질과 상관없는 곳에는 융통적이었습니다. 복음을 온전히 붙잡는 사람은 자유롭기에 복음과 상관없는 것이면 유연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어 너희가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갈라디아교인들이 자신을 닮으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면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난 것처럼
너희도 나처럼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 있는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인격적으로 복음을 전했기에 이러한 말을 담대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살란터 랍비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다가오면 유월절 무교병을 굽는 법칙에 따라 무교병을 구워야 합니다. 생수로 반죽해야 하고 이방인들이 보면 부정 타기 때문에 몰래 구워야 합니다. 또 다른 것이 섞이면 안됩니다. 불은 반드시 나무로 피워야 합니다. 살란터 랍비의 임무는 제대로 무교병을 굽는지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그는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감독관을 세워야 했습니다. 감독으로 선정된 제자들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님, 감독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살란터 랍비가 병석에서 말했습니다. “제자들아, 무교병을 굽는 여인들에게 보수가 제대로 지급되는지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습니다. 사랑이 율법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율법의 본질을 잘 알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았다는 이야기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13~14절입니다.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했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아마 애초에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병을 얻게 되었고 아픈 바람에 갈라디아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의 병약하므로 외적것으로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에 연약함은 외적으로 드러나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칫 시험에 들게 하기도 하고, 바울을 업신 여기기도하고, 버리기 쉽상인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갈라디아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전해준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 구원의 기쁨과 그 구원의 감격이 있어서 사도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심지어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하였다'라고 상기하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연약함과 약함은 복음사역에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생활을 저버리고 율법을 지키고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유대주의적 그 거짓 가르침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우리 15~16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이제 그들은 사도바울을 원수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에 흘러 갔을때 사랑의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의 관계가 차갑게 식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이 진리를 말한 것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놓치게 되면 기쁨도, 사랑의 관계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한 후 폭군같이 변한 남편과 30년을 살아왔던 한 여자의 고백입니다. 출근하기 전에 남편이 아내의 입술에 사랑의 키스를 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 여자의 남편은 키스 대신에 자기가 돌아오기 전에 아내가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적힌 쪽지를 주었습니다. 만약에 쪽지에 적힌 사항을 하나라도 빼 먹으면 남편은 폭군으로 변하여 엄청난 폭력을 사용했기에,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가고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는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30년을 이렇게 살다 보니까 집이 감옥과 같았습니다. 팔자타령을 하며 하루하루 지겨운 삶을 살아오던 중에 갑자기 남편이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녀는 자기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한 남자를 만나서 과거의 모든 것을 잊고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살던 집에다 신혼살림을 꾸몄는데, 하루는 소파를 청소하다가 쿠션 사이에서 구겨진 종이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쪽지를 펴서 읽던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자신의 30년 인생을 빼앗은 전 남편의 지겨운 쪽지였기 때문입니다. 읽어 내려가다 보니까 조목조목 적어 놓은 항목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그 쪽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적힌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을 하고 있단 말이야. 이런 쪽지에 적힌 목록이 없이도 말이야.”
사랑이 왜 중요한지, 사랑이 없는 율법이 왜 이처럼 위험한 것인지 잘 말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다시 한번 복음을 처음 전파 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과 사랑을 가져 왔는지 갈라디아 성도들이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복음으로 돌아올 것을 간절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첫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습관처럼 율법에 따르는 신앙생활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우리의 옛일을 잊고, 복음의 은혜를 다시 찾기를 바랍니다.
주님에 대한 첫사랑을 찾고 율법에서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산 자유를 율법으로 얽매이게 하지 마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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