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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강해 15)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유 (수요예배 20200602)

by 온누리선교 2020. 6. 2.

 

 

성경: 갈라디아서 5:1~6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유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하여 15세 된 침팬치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맨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let me out" 나를 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란 짐승도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패크릭 헨리가 말한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진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자유는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마음대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자유란, 율법의 종된 삶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의 종된 삶이란 무엇입니까?

율법을 통해서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법 아래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렇게 다른 복음을 말하면서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든 유대인선생들에 대해 정확히 사도 바울은 복음의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더 큰 복음도 없고, 더 높은 율법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주 안에서의 복음을 아시길 바랍니다.

 

2~4절의 말씀입니다.

2.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첫째, 이와 같은 자유의 복음을 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당신이 만일 할례를 다시 복음 안으로 가져와 의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면, 할례만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즉 율법 전체를 행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전의 요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셋째, 만약 율법을 다시 가지고 와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면(할례를 받으려고 한다면) 너는 그리스도가 가지고 오신 것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의 법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말하면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제는 결단하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만약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끊어버리는 것이요 은혜에서 떨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율법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다른 복음을 받으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5~6절입니다.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할례나 무 할례가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뿐임을 사도 바울은 강조합니다.

 

바울은 5절에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소유자가 된 신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데 이 연합은 그리스도의 모든 소유가 믿음을 통해서 내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소망으로 기다리는 이의의 소망이란 우리가 온전히 의인을 이루게 되는 소망으로 이 소망은 부활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육체의 몸으로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자유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죄와 율법의 종의 자리에서 속량해 주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탄식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요 우리의 육체가 죄의 습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우리를 죄 가운데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같은 현실에서 오는 우리의 탄식은 이 땅에서 삶이 계속되는 한,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법적으로는 분명히 율법이나 양심이나 죄악에서 벗어나 의인이 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 앞에는 날마다 죄인의 모습으로 고민하고 번뇌하며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멍에를 벗고 온전한 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날을 소망으로 살아가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인 것입니다.

 

또한 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서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선생들의 꾐에 빠져 할례를 받은 일에 대하여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단정하고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고 말하므로 할례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효력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면 무 할례가 효력이 없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를 받는 일도 구원을 얻는 일이나 의롭다 함을 얻는 일에 아무런 효력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의 종으로 율법을 지켜야 하며 율법의 멍에를 메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 할례가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여기서 왜 무 할례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 할례란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할례를 받지 않는다고 그 사람에게 의롭게 하는 일에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란 의미입니다. 바울이 할례 받는 일을 공격했다고 해서 바울이 무 할례자냐? 무 할례가 할례보다 더 의롭다는 것인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일에 할례나 무 할례나 똑같이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할례를 자랑하는 자는 율법의 종으로 멸망 받지만 그렇다고 무할례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믿음이 없다면 무 할례자나 할례자나 율법의 정죄를 받아 멸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주며 구원의 효력을 주는 것은 오직 믿음뿐인데 바울은 6절에서 이 믿음에 대해서 사랑으로써 역사 하는 믿음이라고 언급합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믿음의 뿌리는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믿음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믿음의 뿌리는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믿음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그의 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속죄케 하심으로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 같은 사랑이 없다면 믿음이 역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들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 값을 치루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우리 마음과 생각대로 함부로 다루고 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현혹시키는 다른 복음으로 귀한 진리의 복음을 바꾸어서는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믿음으로 가지고 유지시켜서 저 천국 가는 날까지 주님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이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존재할 수 없으며 또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계속하여 소유할 없음을 오늘 말씀으로 깨달았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한없는 이런 은혜를 계속 내려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