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빌레몬서 1:1~3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설교: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그리스도인
인도에 선교사로 간 맥스웰이라고 하는 분은 그곳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별나게도 인도는 마을마다 언어가 달라서 새로운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새롭게 언어를 습득해야만 됩니다. 한번은 어느 마을에 들어가 힌두교인 한 사람을 붙들고 말 좀 가르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내게 와서 말을 가르쳐주시오."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말만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힌두교인이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당신하고 함께 있어 그리스도인으로 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이 사람하고 만나면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 사람하고 말을 하면 누구나 같아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이 집에 들어와 20년을 살았는데도 아직나 닮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렇게 되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디 가서 머물든지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라고, 나와 같아지려고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저런 사람이 교인이라니, 나는 그런 종교 안 믿겠다."라고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참으로 볼품없는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갇힌 자”에 대해 우리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우리는 성경을 읽고, 우리는 기도도 하고, 우리는 찬양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즘 “본캐, 부캐”라는 것이 한국사회에 유행입니다. “본 캐랙터”는 세상의 이름에 두고 “부캐랙터”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본캐랙터”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예수에 속한 그리스도인로 두고 세상에서는 “부캐랙터”를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우리 함께 주님의 말씀을 나누면서 마음을 이제 확실히 정하기로 합시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로 사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지혜로 더욱 복음의 진리로 더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쓴 말씀입니다. 빌레몬에 관하여 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갇힌 자 된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는 우리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요 동료 일꾼인 빌레몬과”
이 말씀에서 빌레몬에 관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극진히 사랑하는 자요 동료 일꾼..”이라고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구원받은 형제였으며, 형제들로부터 극진히 사랑받는 형제였고,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는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서는 자신을 ‘종’이나 ‘사도’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에서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실제로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로마 감옥에서 쓴 다른 서신과는 달리 오직 빌레몬서에서만 자신을 갇힌 자로 소개하는 것은 사도의 권위로서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함께 고난받는 동료로서 빌레몬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수신자인 빌레몬을 ‘사랑을 받는 자’이자 ‘동역자’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에 사역에 동참하는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빌레몬 다음으로 거명된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로 보입니다. 또 바울이 자신과 함께 병사 된 자라고 지칭한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이거나 그의 가정에 속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빌레몬의 가정과 그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소개하며, 그 안에서 함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바울은 그렇게 그들을 향해 애정을 보일까요?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도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지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자, 그리스도를 닮은 자라는 뜻입니다. 온유 겸손하신 예수님, 죄인을 구원해주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닮은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란 말은 처음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이 섞인 호칭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신문을 받는 중 그 기회를 이용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깜짝 놀라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바울을 책망합니다.왕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라벨이 붙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침을 뱉듯이 외면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를 가르키는 별명입니다 원래 이 이름은 그리 명예스러운 내용으로 불리운 이름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신자들은 그들에게 붙여진 부끄러운 별명을 받아 오히려 놀라운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인이라는 빛나고 존귀한 이름이 되도록 우리에게 좋은 영적 유산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주후 313년에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빛나는 이름을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항상 생각하며, 축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손을 펴서 축복하기 원하시고, 또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복 받을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그 복이 무엇인가 하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시고, 누구든지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뛰어나지 못한 사람도 구원의 대열에 들어 설 수 있고, 어린아이들도 구원 받을 수 있고, 연세 드신 분들도 구원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내려지는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았으니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요?
교부 크리소스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로마 황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맞섰습니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로마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크리소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감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하기를, "황제님, 크리소스톰은 크리스챤입니다."
황제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크리스천이면 별 놈이냐? 빨리 집어넣어라!"
"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기다 가두어 넣더라도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중얼중얼 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 두게 하면 그에게 좋은 일만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라!" 신하가 고개를 흔들어 대면서, "황제님, 그건 더욱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할 것이며, 얼마 있지 않아 그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크리스천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무도한 악질죄인도 변화시켜 오히려 상급을 받게 해주는 일입니다."
황제가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러면 그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당장!"
신하가 사색이 되어서 다시 말하기를, "아이구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들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처형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우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제일 좋은 것을 안겨주는 셈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아이고!“
이렇게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바울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없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그리스도인인 우리 안에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어디서든 늘 주 안에서 승리하며 주님께 영광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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