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디모데전서 3:8~13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설교: 크고 경건한 비밀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 말한 대로 거짓 경건은 이중 죄악입니다.
경건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정적이며 고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경건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경건이란 동적이고 활기찬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참된 경건은 자기 혀에 재갈을 물리고,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은 세상 속에서의 삶과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참된 경건은 사람을 세상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면서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사는 것은 바른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해야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아니 우리에게 "너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면서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그의 자비하심에 온전히 의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매일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는 것이 경건한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의 생활이 오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압력, 세속적인 압력, 성적인 압력이 강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인데 이것은 가장 높은 이에 대한 경의, 존경, 예배 또는 순종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을 연습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존경, 예배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기본 태도를 바로 가지기를 연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경건을 연습하는 것, 하나님께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예배와 순종이 우리 생활에 습관이 되고 전통으로 젖어 버릴 만큼 수없이 되풀이하는 연습이 얼마나 풍요한가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슨 경기든지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협력과 연습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좋은 소질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꾸준한 연습이 없이는 경기에 승리 할 수가 없습니다. 경기뿐만 아닙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노래하는 것도 악보만 가지고 나와 노래하는 것 아니고 운전이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연주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수 없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연습한 만큼 됩니다.
교회에서 피아니스트나 올가니스트들이 반주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늘 연습을 하는데 그들이 곡을 몰라서가 아니고 연주하는 것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연습은 아는 것을 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훌륭한 대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 만한 노력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연습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편합니다. 앉아있기 보다 누워 있으면 더 편합니다. 누워 있는 것보다 잠을 자면 더 편합니다. 사실 자는 것보다 아주 자면 더 편합니다. 우리의 이 육신을 쉽고 편한 것만 찾는 것이 본능입니다. 그러나 본능이 하자는 대로 말하면 사람이 아닙니다. 본능은 쉽고 편한 것을 찾지만 힘들어도 귀찮아도 연습의 생활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크고 경건한 비밀”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4~15절의 말씀입니다.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뜻이 맞는 사람끼리 조직한 계모임이 아니고 취미나 특기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야 되는 동호인 모임이 아니며 마음대로 회원이 될 수 있고 원하면 쉽게 탈퇴도 가능한 자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오늘 왔다가 내일 떠나갈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아니며 원하는 물건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서 물건을 사는 상점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 자신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건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건물은 교회가 회집하는 처소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있어야 세우는 것이 아니고 자금이 있어야 시작을 하는 사업이 아니며 모이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도 건물도 필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예배당, 교회당으로 불러야 합니다. 교회라고 하면 우리는 곧 바로 이 종탑 두 개의 건물을 연상하지만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 "하나님 자신이 거하시는 처소"라고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지으시고 소유하시고 주인이신 집이요 가정입니다.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하시는 집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모임에 임재하시고 있다는 의미로 생각해야 옳습니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왜 부르는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양자되는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그 분의 자녀로 받으셨을 뿐 아니라 그 분 자신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자녀로 받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 자신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 자신이 벽돌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바울도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가정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각기 인종도 다르고 의무와 책임도 서로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큰 가정에는 가정을 돌보는 집사가 있어서 각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주인의 뜻을 이루도록 감독을 했습니다. 가정이란 구성원이 서로 의존해있고 상호간의 행동을 용납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것으로 주님의 목표를 이루는 교회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거기 속한 자의 안전과 보호를 보장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 교회에 속해 있다면 안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족이라면 가장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질 것입니다.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책임을 혼자 지기가 정말 힘 드는 시기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하신 가장이십니다. 우리가 가족이라면 가장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이기에 악한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출석한 자들로서 구성되는 모임이 아니라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의 진리를 그 마음속에 '아멘'으로서 받아드리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포되는 진리를 '아멘'이라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는 이 진리를 파수하고 널리 선포하여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말로서, 그리고 행동으로 파수하고 옹호하기 위해서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 되고 진리의 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기둥 뿐 아니라 터라고 합니다. 기둥은 지붕을 받치는 반면 터는 집 전체를 받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진리를 떠나면 교회는 교회될 수 없습니다. 기둥이 무너지고 터가 사라진 곳에 건물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교회는 그 생명이 진리 파수와 진리 선포에 있습니다. 그 진리에 서 있지 않는 교회, 그 진리를 선포하기를 중단한 교회는 교회되기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16절의 말씀입니다.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성육과 부활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육하면 오늘 처음오신 분들은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교회가 고백을 합니다. 달리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은 본래 신체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는 몸을 가지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삶을 함께 나누신 것입니다. 그것을 몸을 입으셨다는 말을 간단하게 성육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육신으로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저주아래 오셨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의 의미가 거기에 있습니다. 복음의 진수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그의 부활에 대해서 천사들도 증인입니다. 복음서 곳곳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천사들에 관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노래했습니다. 천사는 또한 광야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실 때 수종 드셨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그의 부활 소식을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은 우리가 받은 구속을 철저히 살피려고 합니다(벧전 1:12).
"만국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음이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미치는 범위를 보여줍니다. 땅 위 만국 뿐 아니라 하늘에까지 그 영광이 미치고 있습니다.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 만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시 72:8, 11). "해 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구약의 시인의 소원이 이뤄진 고백입니다.
영광 가운데 올리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천사와 능력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거기서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오른 손에 잡으시고 그 세우신 사자를 통해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교회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이끌려 나가는 정치 집단이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 주인의 장중에 있습니다. 주일마다 세우신 종들을 통해 말씀하셔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응시하므로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교회가 위탁받은 진리의 위대함을 깨닫고 경건의 비밀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이 세상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의 핏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교회를 세워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주의 뜻을 받들고 경건하게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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