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디모데전서 5:1~8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설교: 관계를 존중하는 그리스도인
프랑스의 농민화가 '밀레'와 그의 친구인 화가 '루소'의 이야기입니다.
밀레는 무명 시절 몹시 가난했습니다. 루소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합니다. 하루는 찾아와서 말하기를 '드디어 자네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네! 이것 봐. 선금을 내게 맡겼다고...'
그 덕분에 밀레는 생활이 안정되었고 그림에 전념하게 됩니다. 점차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루소의 집에 놀러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수년 전 팔았던 그 그림이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게 아닙니까?
그는 친구의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나눔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서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부모에게 하듯 하고, 젊은이에게는 형제와 자매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한 마디로 성도들을 대할 때 가족처럼 대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에 모인 성도들이 하나님을 같은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며 살아가는 영적 가족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인간 관계는 바로 ‘가족 관계’라는 점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사는 천국의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늙은이로 번역된 헬라어는 일반적으로 나이 많은 남자를 지칭하는 용어였으며 동일한 단어가 교회 안에서 사용 될 때는 ‘장로’를 의미하였습니다. 1절에 사용 된 ‘늙은이’는 전체 문맥상 ‘장로’라는 특정 직분을 의미하기 보다는 교회 안에 나이가 많은 남자 교우님들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제국은 정교한 법과 군대 조직으로 운영 되었으며 조직 문화는 로마 제국 전역에 자연스레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이 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맡고 있는 역할에 따라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쉬운 에베소의 문화적 배경을 감안할 때 교회 안에 나이 많은 남자 교우님들에게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는 바울의 교훈은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된 교회가 어떻게 교회 밖의 공동체나 조직과 차별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 교회는 교회가 뿌리 내린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한국의 문화적 배경에서 1절 말씀을 이해하는 것과 1세기 로마 문화적 배경에서 이해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목사로서 성례를 주관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등 여러 사역을 감당할 때 자연스레 교우님들 보다 주도적이며 일방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독점적 사역은 목사가 교우들 보다 영적으로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착각에 안주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목사의 일방적인 소통이 빚어내는 수직적 관계는 교회 안에 역할의 우열과 경중이 있는 것처럼 유혹하기도 합니다. 교회 안의 모든 직분과 역할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더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섬김의 방향을 따라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 보다 상대적 우위를 누리고 싶은 죄의 관성에 저항 없이 몸을 맡기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로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본을 따라 나이가 많은 남자 교우님들에게는 아버지에게 하듯 하고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교회를 이 땅에 심으셔서 뿌리 내리게 하셨지만, 뿌리 내린 토양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를 힘입어 뿌리 내린 토양에 생명을 공급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형제로 번역된 헬라어는 직역하면 ‘같은 자궁’이라는 의미로 혈연 공동체인 가족, 형제를 의미하였지만, 에베소교회 안에서는 젊은 남자 교우들이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나눠 받은 하늘 가족임을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담임목사인 디모데와 젊은 남자 교우들과의 관계가 주님 안에서 동등한 형제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2절에서 교회 안에 나이가 많은 여자 교우들을 대할 때에는 어머니에게 하듯하라고 권면한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롬1:13). 고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예속된 존재로 공동체 안에서 독립적인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법률인 로물루스 법에 따르면 로마의 남성들은 아들과 첫째 딸만 양육할 수 있었기에 많은 여자 아이들이 계곡에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여자 교우들이 남자 교우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나이 많은 남자 교우들의 아내들을 어머니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나이 많은 모든 여자 교우들을 어머니에게 하듯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젊은 여자 교우들에게는 젊은 남자 교우들과 마찬가지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권면하며 ‘온전히 깨끗함’으로 대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에서의 결혼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기에 서로의 신뢰는 매우 낮았습니다. 로마 문화에서 결혼은 공식적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기 보다는 양가 아버지들의 합의로 이뤄진 것이었기에 남편이 전쟁에 나간 사이 아내가 결혼 지참금을 가지고 다른 남자에게 가면 손쉽게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부는 서로의 동의하에 부부 관계 밖에서 성생활을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하나님의 목적에서 빗나간 가정은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허락하신 성적 친밀함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 삼아 하나님께서 정하신 부부의 울타리를 넘어 성적 방종과 타락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깨끗함으로 여자 교우들을 대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죄로 인해 타락한 성문화를 경계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럼, 바울은 또 이어서 누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3~6절의 말씀입니다.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과부를 돕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참 과부’란 남편을 사별한 여성으로 그를 돌보아 줄 가족이 없어, 그야말로 홀로 외롭고 궁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부양가족이 없는 사람 입니다. 바울을 그들을 ‘경대하라’고 했습니다. ‘경대하라’는 말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서 쓰인 ‘공경하라’와 같은 뜻 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내 부모에게 대하듯 마음으로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섬기라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일반적인 성도들과의 관계를 언급한 이 곧 바로 가장 먼저 과부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주목하십시오. 이 당시 참 과부는 가난하고 외롭고 오갈 데 없는 힘없고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이러한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과 사랑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교회를 참 교회되게 하는 표지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후손들이 있으면 그들로 하여금 먼저 과부된 자신의 부모를 섬기고 효를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섬기는 행위가 단지 동양사상의 하나인 효 사상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부모를 섬기는 일은 단순히 하나의 인간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보실 때 선한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 가난하고 외롭고 힘이 없는 부모를 외면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됩니다. 특별히 4절에서 ‘효를 행하여’라고 번역된 표현은 본래 ‘경건을 실천하여’라는 뜻 입니다. 즉 부모를 봉양하며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 못지 않게 동일한 제사요 거룩한 행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부모를 공양하고, 특별히 가난하고 외로운 부모를 잘 섬기고 효를 행하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행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낳아 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를 섬기는 행위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행위 모두 하나님께는 받으실 만한 예배로 여겨집니다. 즉 다시 말하면 부모를 거스르는 자식은 하나님 보실 때 하나님 자신을 거역한 것과 동일하게 취급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절의 말씀입니다.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쾌락에 빠져 살았으나 죽은자 처럼 살아가는 과부들은 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본인에게 있지만, 남편과 사별한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죄의 유혹 앞에 약해진 상태를 돕는 것은 공동체의 역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라는 표현을 통해 위기에 처한 가족을 돌보지 않고 죄의 길을 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며 그와 같은 행동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보다 더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신앙생활은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알았습니다. 우리 중 가장 거룩한 사람은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도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아, 교회의 성도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고, 또한 내 가족들을 끝까지 돌보고 책임지고 사랑하는 그런 진실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마주한 어려운 상황 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신 은혜를 따라 어려움에 처한 가족과 교우들을 돌보게 하시고 우리의 신랑되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이 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조명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의 기름을 항상 공급 받아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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