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디모데전서 6:11~16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설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프랑스의 극작가인 빅토르 위고(V. M. Hugo, 802-1885)는 우리네 인생에 세 가지 싸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자연과의 싸움이고, 둘째는 이웃과의 싸움이며, 셋째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는 이 세 가지 싸움 가운데 가장 힘든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란 사람을 주인으로 등장시켜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레미제라불"은 '빵을 훔쳤다는 이유 때문에 절도죄로 19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던 장발장이 출옥하자마자 그를 환대해 준 한 사제의 은촛대를 훔치고 만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첫머리부터 위고는 우리 인간이 강한 것 같지만, 사실 얼마나 잘 흔들리고 깨어지고 넘어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연약하고 악한 길로 빠지기 쉬운 악한 존재인 우리 자신과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할 것인가에 대해서 교훈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을 말씀 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 험난하고 악에 가득찬 세상에서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1~12절의 말씀입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그리스도인이 좇아야 할 것을 11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좇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좇아야 할 것은 바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의」라는 것은 공의를 뜻합니다. 모든 일을 처리 할 때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구원에 관한 믿음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행하셨던 가장 위대한 일인 사랑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이기적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인내」는 참을성으로서 상황이 어려울 때에 끝까지 분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유약함이 아니라, 통제 하에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온유함이 없는 용감한 인내는 압제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도 온순한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여섯 가지의 덕목을 잘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 이였습니다. 자기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40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도 오래 동안 인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선교 여행을 하면서 개척 교회를 설립하고도 온유함으로 가르쳤습니다. 사실 이 여섯 가지의 덕목은 바울이 실천했던 덕목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성품을 닮으려고 많은 고난을 당했고 사실 예수의 성품을 닮아갔습니다. 그래서 젊은 목회자 디모데도 예수의 성품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싸우라'(아고니주)는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에서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 애쓰다'의 뜻을 갖습니다. 이것과 동족어인 명사 '싸움'(아곤)은 원래 운동 경기를 위한 '집회'를 의미하였는데 이것이 점차 경기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선한 경기에서 경쟁하라." 혹은 "선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라."입니다.
결국 믿음이라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을 권고합니다(Simpson).
여기서 말하는 ‘싸우라’의 문자적 의미는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라’인데 바울은 특별히 성도의 싸움은 선한 싸움, 즉 영적 싸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로 인간의 삶 자체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과 육의 싸움을 하며,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 즉 영적 싸움을 경주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인류를 타락 시킨 이래 아직도 타락시킬 대상들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찾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 5:9)합니다
우리의 싸움 대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이며 세상의 불의한 집권자들과 그들의 악한 꾀인 것입니다.
만일 신자들끼리 서로 으르렁거리고 교회끼리 서로 싸운다면 마귀는 손뼉을 치고 기뻐할 것입니다. 마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한국 교회의 힘을 분산시키고 한국 교회가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치명타를 가해서 파괴하려고 온갖 공작을 다 펴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16절의 말씀입니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그럼 언제까지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까?
1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곧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명령입니다. 육신을 안고 사는 우리들의 영적인 삶은 이 육신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싸워야 합니다. 이와 같은 전쟁은 영혼을 거스리는 육신이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생 대적과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적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지켜 낼 수 없습니다.
지켜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 어떤 것들입니까? 빼앗으려고 사단이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 영생, 성령의 은사, 성령의 충만, 기쁨, 평안, 사랑, 감사, 교회,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빼앗기고 잃어버리기에는 아까운 너무나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항복하고 사단에게 다 내어주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우리에겐 승리도, 면류관도 없습니다. 신앙이 점점 후퇴하는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나가기 위해 싸우면, 기도 응답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더 내기 위해 힘쓰면,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전도하기 위해 영적 싸움을 하면,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을 포기하여 복도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가면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러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담대히 싸워 이김으로 승리의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을 차지할 것을 확신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의 삶은 안락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이 땅은 우리 신앙의 적들이 기다리고 있는 적진입니다. 이 세상을 승리하며 통과하기 위해서는 항상 긴장하고 경계하며 싸우는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영광스러운 호칭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의 사람 된 자는 그에 합당한 삶이 요구됨을 깨우쳤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썩어질 것, 멸망의 요인을 철저하게 피하여야 하며,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가운데에 영생을 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절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은혜가 임하고 모든 신앙이 제대로 되어지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마11:12)” 이라고 하였습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했습니다(딤후4:7). 저와 여러분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마칠 때 우리를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쓰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디모데에게 말하신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말을 우리가 듣게 해주세요. 그리고 늘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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