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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요8:31-32, 주일예배 20220731)

by 온누리선교 2022. 7. 24.

성경말씀: 요한복음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설교: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우리 가운데 어떠한 억압의 고통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건, 사람들 사이의 관계건, 정치적 억압이던, 자유하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러한 억압의 고통을 망각시키는 마약과 같은 중독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또한 살아가고 있습니다. 향락이며, 세속적인 재미며, 공허한 철학을 통해 이런 고통을 견디어 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얻을 방법이 있는데도, 벗어날 방법이 있는데도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는 이런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가지고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깨달음을 발견하시고 또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31-32절의 말씀입니다.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영혼의 참 자유를 얻는 방법에는 먼저, 자유하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알아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노예니 자유니 하는 말을 해가면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선포하시자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종도 아닌 우리에게 어째서 자유케되리라는 둥 엉뚱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종 된 적이 없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유대인들은 민족적인 편견 때문에 역사를 보는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바벨론 70년 포로생활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로마의 속국으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노예생활을 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자유인이다 노예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들은 적의 침략을 받을 때마다 종 되기를 거부하고 격렬한 저항운동을 벌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민족적인 자긍심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는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만들어 주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이나 이 대화가 성경에 기록되던 그 순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음에도, 유대인들은 종이라는 자기들의 처지를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된 상태란 단순히 정치적인 현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누르는 죄의 사슬, , 이 백성들을 붙들어 매고 있는 영적인 현실을 보고 계셨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한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자유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상대 평가의 차원에서는 인간의 죄인됨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인됨을 바로 알려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를 기억해보십시오. 밤늦도록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고기잡이를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 허탈했던 새벽에 예수님을 만났고, 그 분께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말씀하시고 이에 순종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처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

이 대목에서 왜 이런 고백이 나왔을까요? 그 순간 베드로는 인간 예수가 아닌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단순히 바다를 잘 아는 한 인간이 아니라 저 바다의 깊은 곳을 아시는, 고기떼의 행방을 아시는, 더 나아가 베드로의 내면까지도 꿰뚫어 보시며, 그의 절망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아시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앞에 서는 순간 베드로의 입에서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터진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보시는 분, 우리 의식의 저변에 숨어 있는 무의식의 동기까지 보시고 아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요 나의 주님으로 영접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유, 이 자유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계속적으로 거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1~32).

'주님 말씀 안에 거한다'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까?

쉽게 말해서 이것은 이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짐을 꾸려서 예수님의 말씀 안으로 이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별로 이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들고 이웃들도 다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삶의 방식이 익숙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사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내가 신뢰하고 내가 붙들고 있던 모든 가치관과 생각들 그리고 신념들에 대하여 모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신념, 새로운 사상 안으로 이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전혀 생소한 곳으로 이사해야만 했던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기 위하여 그에게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작별해야만 했습니다. 옳은 것을 바로 알고 그것을 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경에 대하여 많이 듣고 아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익숙하던 모든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 안으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합니까? 주님의 말씀 안입니다. 이 안에는 사람의 외적 조건이 전혀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 중심이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심의 변화와 함께 예수님은 더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이 말씀은 '미안하지만 너희들은 내 말을 믿고 아주 좋아하는데 너희는 참 내 제자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제자가 되어야 온전히 진리를 알 수 있고, 진리를 알아야 만이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진리를 잘 알고 있으며, 신앙에 있어서 자유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부정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가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되어 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이 지금 말씀하신 세계 안으로 이사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내 말에 거한다'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 안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자기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말씀 안에만 머물러 있고 결코 그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말씀은 억압이 아닙니다. 말씀은 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억압처럼 생각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말씀이 억압이 되었다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면, 이것은 신앙생활의 진정한 재미를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했던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119:35).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면 그 즐거워하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짐이겠습니까?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 대화하는 것이 과연 짐이겠습니까? 그것은 짐이 아니라 기쁨이고, 짜릿한 감격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능력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유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기쁨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미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뉴욕에 방문하게 되면 유명한 관광코스로 배를 타고 뉴욕 항구 앞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 여신상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습니다. "피곤한 자와 가난한 자는 모두 내게로 오시오.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를 호흡하시오. 누더기를 걸친 난민, 집없는 외로운 사람, 폭풍우에 시달린 힘없는 사람, 이 생동의 해변으로 오시오. 황금의 문에서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리니.." 이 글의 유래는 엠마 나자루스라는 여인으로 부터 출발합니다. 러시아의 군대가 유대인 마을을 습격해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이 가운데 간신히 마을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와 열심히 공부하여 시인이 되었고 신문기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86년 뉴욕 항구에 이런 인생역정과 승리의 이야기를 가진 엠마를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여인은 병들어 움직일수조차 없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자유의 여신상에 바치는 글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억압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이 자유의 여신상에 글을 남겨 그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유의 소중함을 우리는 신앙적으로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를 모든 고통과 억압에서 자유를 주러 오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을 다해서 한평생 섬기고 증거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육신과 정신,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영혼을 공격하는 모든 사단의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실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압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자유의 기쁨을 가지고 늘 살면서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