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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라 나니 두려워말라 (마 14: 24-27, 주일예배 20220710)

by 온누리선교 2022. 7. 9.

성경말씀: 마태복음 14:24-27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설교: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말라

 

영국의 유명한 찰스 웨슬리는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구찬송가 441)라는 찬송을 지었습니다.

그 찬송을 짓게 된 동기는, 어느 날 서재의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쉬고 있으려니까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매에 쫓겨 살 길을 찾아 그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는 공포에 싸여 방안을 몇 바퀴 돌더니 푸드득거리며, 조용히 앉아 있는 그의 옷자락 속에 깃들였습니다. 찰스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새가 하는 대로 맡겨 두었습니다. 할딱거리던 새는 잠시 후 평안해진 듯 보였습니다. 그는 어린 새를 쓰다듬어 창밖으로 놓아 보내고 일어나 불현듯 그 마음에 떠오르는 노래를 읊게 되었는데, 그 노래가 곧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라는 찬송입니다. 그가 이 노래를 짓게 된 동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아메리카에 가서 전도하려고 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도중 풍랑을 만나서 처참한 곤경을 넘긴 일이 있는데, 그때 위기 중에서 전심을 주께 맡기고 고난을 돌파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황야 같은 세상을 사는 인생들이 참 생명의 주를 신뢰하도록 하는 데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풍랑을 만날 때는 주님께 나아갈 때입니다.

 

이런 찰스 웨슬리의 경험은 성경에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니, 제자들은 바다를 건너려고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서 왕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그 유혹의 흥분 속에 휩쓸릴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일은 매우 위험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배를 띄우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4절의 말씀입니다.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갈릴리호수 또는 디베랴 바다로 불리는 이곳은 낮이면 아주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처럼 기후가 좋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의 항로나, 또는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아주 좋은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나 밤이면 지형상 돌풍이 불어 아주 무서운 곳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제가 성지순례때,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자게 되었는데, 낮에는 바람 한점 없던 그곳이 밤에는 무서운 돌풍의 소리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아무리 관광이라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배를 띠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어두워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살아남고자 노를 저었고, 십여리쯤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상황은 나아지는게 없었습니다. 아마도 점점 제자들은 그 바다 가운데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폭풍 가운데 물위를 걸어오시는 그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군가에 의해 제자들의 공포는 더 배가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25~26절의 말씀입니다.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왜 제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했을까요?

첫째로, 어둠 속에 처하게 되면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그때는 어두웠으므로 제자들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폭풍의 위협과 위험과 그것에 대한 감정적인 긴장은 어둠 때문에 훨씬 더 강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빛가운데 살려고 노력하지만 뜻하지 않게 어두움에 속한 삶을 살아가곤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피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삶이라는 것은 바로 어둠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늘 고난과 고통없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이라는 어둠을 종종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마다 우리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도리어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을 느끼자 마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하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은 바로 주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어둠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가는 승리의 비결입니다.

 

왜 제자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을까요?

둘째로,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게 되면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임재와 도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의 도움만을 얻을 수 있었을 뿐 자신들 스스로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제자들은 잘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에는 한계가 있고 마침내는 실패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순간에서 자기 자신은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면서 최면을 걸어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공포의 순간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자신의 힘은 바닥이 날 테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최면한 자신에게 멸망은 갑자기 찾아와져 순식간에 자신을 무너뜨려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실패할 수도 있고,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솔직한 사람은 그 두려움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솔직히 두려움을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어서, 힘이 바닥나기도 전에 그 도움을 받아 금방 속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나 자신을 다 드러낼 때, 예수님께서는 속히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모든 고통과 공포 가운데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시는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그 폭풍우 속에서 두려워하였습니까?

셋째로, 가장 큰 격렬한 삶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면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큰 바람격렬한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출항했을 때의 바다는 잔잔하고 평온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격렬한 폭풍을 결코 예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과 구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삶의 폭풍의 경우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골칫거리. 시련. 질병. 죽음.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일단의 다른 폭풍들이 모든 사람에게 닥칩니다. 그것들은 준비가 가장 안되었을 때나 예기치 않게 닥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폭풍들은 우리에게 임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무서운 두려움으로 몰아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에 대한 해답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무엇입니까?

27절의 말씀입니다.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두려워사지 않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단 한 마디 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말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기뻐하며, 배로 영접하자 마치 거짓말처럼, 제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능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14:28~29에 보면,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자신도 그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위를 걷는다는 것은 바로 전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그 누구도 어떠한 장비를 쓰지 않는 한 그 자체로 물위를 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 속에서 물위를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영화 슈퍼맨을 보면, 초능력자 슈퍼맨이 호수 위를 걷는 장면이 나오는가하면, 부르스 올마이티에 보면 부르스가 하나님에게 능력을 받아서 능력을 시험하는 장면이 바로 바다 위에 서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전능하다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바꾸어놓으실 능력도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물없이는 우리가 하루도 살아갈 수 없지만, 폭우, 홍수나 태풍같은 물의 재해로 인하여 죽음의 공포도 경험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면, 이 물로 인한 공포를 만들어주는 사단의 세상은 우리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조금도 건드릴 수도 없고 우리를 다스리지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수님께서 나를 인도해달라고 마음으로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두 가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첫째, 모든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세상의 폭풍이 잠잠해져서 잔잔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살면서 이만큼 행복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이겠습니까? 폭풍우 속에서 사방이 도망칠 수도 없는 넘실거리는 파도 가운데에서 물위를 걸어오신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큰 힘이요 큰 전능자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험난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쳐다보고 갈 대상은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의뢰함으로 응답을 받아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풍랑과 같은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의연한 믿음을 가지게 하소서. “두려워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지나친 두려움과 염려로 인해 나의 믿음을 잃지 않게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 살면서 주를 늘 영접하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