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온누리선교교회 Onnuri Mission Church Миссионерская церковь Оннур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9-10, 주일예배 20220828)

by 온누리선교 2022. 8. 27.

성경말씀: 열왕기상 19: 9-10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설교: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매일매일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삽니다.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는 것도 우리는 챙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두려움에 사는 것은 챙피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지금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큰 기적을 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도 지금 불안해하고 이세벨 여왕이 자기를 죽일까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런 엘리야를 통해서, 오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벌벌 떨며 걱정근심하며 살지 않는 방법을 같이 알아보는 귀한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지금 엘리야는 무척 걱정과 두려움으로 숨쉬기 힘들 정도입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앞 장 18장의 내용을 보면,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맞서 이겼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신을 끌고 들어온 이세벨 여왕 앞에서, 아합왕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불이 물로 가득히 젖은 제단에 떨어져 다 태우는 것을 보였습니다

, 850명의 이방선지자들도 다 멋지게 죽여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능력 받은 자, 엘리야가 공포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아세라여왕이 그를 죽일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엘리야를 갈멜산이 아닌 하나님의 산 호렙 산에서 만나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해 몸의 원기를 회복한 엘리야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에 신앙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아주 연약한 사람의 소리를 냅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그래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방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보니, 이들이 더 악해져서 더 크게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죽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도 다 망가뜨려버렸습니다. 이제 나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이 저까지도 죽이려 합니다.

우리도, 참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것이 늘 평화롭지는 않습니다. 어떨 때는 당하지 않을 어려움도 더 당하는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도 더 하나님을 믿었다 하여 더 핍박받고, 힘들게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떠나기도 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산다하여도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 떠나서는 잘 살 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다시 우리를 찾아내시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해야겠습니까?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해야합니다.  

엘리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질문,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오늘 본문 9절과, 13절에 두 번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의 질문 사이에, 강한 바람과 지진, 불과 세미한 음성, 즉 아주 작은 소리들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나실 때 함께 동반되는 자연적 현상입니다. 지금 엘리야는 호렙 산 어느 동굴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동굴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동굴 속에서 나와서 호렙 산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가 숨어 있는 동굴 앞쪽으로 그냥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강한 바람이 지나가고, 하나님 앞에 지진이 일어나고, 하나님 앞에 불이 지나갔지만, 그 어느 것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강한 바람과 지진, 그리고 불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마지막에 들은 세미한 음성을 듣고 동굴 밖으로 나와 어귀에 섰습니다.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엘리야는 동굴 어귀에 서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주 강한 바람과 지진의 소리를 내시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엘리야를 불러내신 걸까요?

하나님은 사람들 보기에 강한 바람, 지진, 불과 같은 매우 강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항상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엘리야에게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소리처럼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을 엘리야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엘리야에게 9절에서 하셨던 동일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던진,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는 질문은 엘리야가 여기 호렙 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죽겠다고 말하는 엘리야를 비록 하나님의 천사가 돌보아서 호렙 산으로 오게 했지만, 엘리야가 지금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엘리야는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엘리야의 첫 번째 대답과 두 번째 대답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전혀 변한 것이 없습니다. 14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의 첫 번째 대답이 하나님을 향한 항변이었다면, 두 번째 대답은 엘리야에게 깨달음을 준 강한 바람과 지진, 불과 세미한 음성을 통과한 뒤였기에, 궁색한 변명처럼 들립니다.  

분명히 같은 말이지만 말의 느낌이 달라진 것입니다. 엘리야는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질문 앞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물으셨던 그 질문은 엘리야뿐만 아니라, 이 본문을 읽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너는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서야 할 자리에 지금 서 있습니까? 아니면 자리를 이탈하여 다른 장소에 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자리, 내가 인내하며 지켜야하는 신앙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우리들은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자리, 신앙의 자리를 혹시 떠나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타락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할 때 시작됩니다

신앙의 회복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기 시작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는 우리들이 청지기적 삶의 태도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신앙만큼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반문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분명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돈입니까?  

돈은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많은 돈도 그 돈을 적절히 쓸 줄 아는 인격과 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중국동포교회에서 제가 일할 때 많은 조선족들을 보면, 한국에서 열심히 하루에 세 군데 직장을 돌아다니며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 중국으로 돌아갔지만 중국 물가는 한없이 치솟아 올라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노동으로 인해 몸은 이미 엉망진창이가 되어 벌어논 돈마저 다 써버렸습니다. 거기에다 그들은 중국에 있을데가 없어 다시 한국에 있는 중국동포의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돈을 열심히 벌고, 또 성공을 한다해도 무엇이 우리에게 확실하단 말입니까? 저는 이 질문에 분명히 말씀들입니다. 신앙을 가지십시오!

우리의 삶의 가치가 극도의 가난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만큼은 가난에 처하지 않을 방법, 세상이 주는 한계를 넘는 방법은 바로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한계만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한계를 넘는 많은 기적들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기적의 조건은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지내기만 한다면, 바로 엘리야처럼 하나님과 만난 그 자리가 기도와 응답의 자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고 에너지 원이며, 이것 없이는 다른 세상사람들과 같이 회의적이며, 그저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 가슴에 또 새기시고 새기셔서 세상이 줄수도 없고 알수 도 없는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늘 세상에서 불안하며 걱정과 근심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늘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