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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강해 4) 젊은 남자와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에 대한 교훈 (수요기도회 20221005)

by 온누리선교 2022. 10. 5.

 

 

성경말씀: 디도서 2:6-10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설교: 젊은 남자와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들을 위한 교훈

 

최용우 목사님의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검은 가죽 표지의 성경책이 저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성경책을 열심히 읽을 때는 '성서'()에 불과했는데, 성경책에 열심히 나를 비추니 어느 순간 '성경'(거울)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 내 모습이 처음 비추어 보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성경에 비추인 내 모습은 너무나 더럽고 불결하고 불완전했습니다.

성경에 비추인 내 모습은 돼지우리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비추인 내 모습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비추인 내 모습은 남의 실수를 그렇게 고소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비추인 내 모습은 사랑한다고 큰소리친 것이 실은 야심이었습니다.

성경에 비추인 내 모습은 대단한 욕심과 탐심으로 뭉쳐진 사람이었습니다.

! 그 초라하고 비참하고 추잡스러웠던 내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성경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단단히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나도 온전해지자'(5:48) 나는 크게 손해보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비평하거나 흉보거나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명예와 권세와 감투와 자랑과 같은 나를 높이는 것에 관심을 끊는다. 나는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책을 읽기만 하면 그것도 유익은 되지만 내 참 모습을 볼 수 는 없습니다.

! 성경책이 맑고 투명한 거울이 되어 나를 빤히 비추던 그 순간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도 사도 바울이 열심히 목회하면서 하나님의 교훈을 구하는 디도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6-8절의 말씀입니다.

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6절부터 젊은 남자들에게로 관심을 돌리면서 바울은 또 다시 이와 같이라는 말과 신중하도록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성급하고, 경솔하며, 행실을 삼가지 않고, 충동적이며, 쉽게 폭발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많으므로 자기 다스림, 즉 신중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젊은 남자를 훈계하는 데는 그들과 비슷한 연배에 있는 디도 자신이 본을 보임으로써 그들을 훈계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많은 사람이 주시하는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그의 행동은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7절에서 중요하게 묵상해볼 단어는 선한 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입니다. 디도서에서 선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두 단어가 등장합니다. ‘아가도스라는 헬라어는 116절에 사용된 선한이라는 의미의 단어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선함을 나타내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데 비해서, 본문에서 사용된 헬라어는 칼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칭찬할 만한이라는 의미로 쓰여 주로 인간관계 속에서의 윤리적 측면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본절에서 디도에게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 선함이라기보다는 타인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도덕적인 고상함의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눈여겨볼 문구는 네 자신이.. 본을이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헬라어가 세우아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네 자신이라는 의미의 재귀 대명사로서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되, 먼 데 있는 다른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디도 자신을 본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7절 하반절부터 8절 상반절까지 한글 개역 개정은 마치 디도가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라는 식으로 번역했으나, 원문상으로는 디도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교훈 안에서 젊은이들에게 본을 보이라는 의미가 원뜻에 가깝습니다. , 교훈의 주체가 바로 네 자신이라고 표현된것처럼 디도라는 점에서 본문의 책망받을 것이 없는 건전한 말을 해야 하는 주체 역시 젊은이들이 아닌 디도라는 점이 8절 상반절에서 주목해 볼 점입니다. 8절 후반절을 통해 바울은 디도가 왜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적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함이며 동시에 복음 사역자들이 악하다는 비방을 듣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은 적대자들이 처음에는 당당한 태도로 복음 사역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후에는 반대로 부끄러움을 받게 되는 자로 변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8절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우리의 행실이 과연 우리의 대적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지, 아니면, 기독교인의 정체성과 삶의 정체성의 분리로 인하여 내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디도에게 조언합니다. 9절에서 10절의 말씀입니다.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말하는 종들은 로마 제국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자신들의 상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가르칩니다.

첫째 범사에 상전들에게 순종하여 기쁘게 하라. 로마제국 당시 노예들은 주인들의 학대가 두려워 마지못해 순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노예가 자발적으로 순종하면 그 주인들은 기쁜 마음을 얻게 되고 자신의 노예로부터 어떤 변화가 있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둘째 상전들에게 거슬러 말하지 말라.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상전들, 즉 노예주에게 거슬러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노예들은 믿지 않는 노예들과 인격과 삶에서 다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셋째 상전의 소유를 훔치지 말라. 로마제국 당시 노예들은 주인의 소유를 훔쳐 달아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가 그 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된 노예는 상전의 소유를 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훔치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범죄이고, 상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자신들과 다름이 없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라.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믿지 않는 다른 노예들과 달리 범사에 순종하고 거슬러 말하지 않으며 상전의 소유를 훔치지도 않으면 그 상전(노예주)은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다른 믿지 않는 노예들과 다른 참된 신실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된 종(노예)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주 하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전하는 교훈이 그리스도인이 된 종(노예)들의 삶을 통해 나타날 것이며 믿지 않는 상전들과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빛나는 하나님의 교훈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페스탈로치는 전쟁 후 고아들의 교육에 헌신한 스위스의 위대한 교육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어려운 가운데 아내와 함께 성경을 애독하며 인생을 가꿨습니다. 1815년 그는 아내를 잃었을 때 관 위에 성경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성경에 의한 사랑을 체험했고 오랜 세월 동안 고난과 싸웠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마른 빵을 먹어야 할 때도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하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우리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으로 함께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는 모든 자가 살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우리들과 저 세상에 살아 있는 앞서간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금생과 내생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모든 내용을 정리해 보면, 바른 교훈을 따라가는 삶은 결코 가볍거나 쉬운 일이 아님을 본문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은 세상의 방향을 거스르며, 세상에서 그 어떤 사람들보다 수고하며, 고생하는 일이 많기에 때로는 불편하며, 성가신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디도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에게 종들로부터 늙은 남자까지 그 행실에 대한 지침을 본문을 통해 말해 주었습니다. 혹자는, 이 시대와 너무도 대비되는 상황과 교훈이기에, 적당히 재해석해서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내 상황에 억지로 오늘의 지침들을 끼워 맞춰 남을 가르치는 도구로 말씀을 이용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이 디도에게 부탁했듯, 말씀은 내 자신을 향하여 적용하며, 그 본을 먼저 내 자신이 보여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대적자들과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를 통해 바라보며 알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손해보는 것 같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보호하시는 그 은혜를 느끼며, 감사하는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나의 생각과 판단이 아닌, 말씀의 기준과 요청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참된 은혜를 저희의 심령에 부어주시길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썩어져가고, 잠깐 있다가 없어질 안개 같은 세상 속에서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붙잡는 주의 자녀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오늘을 살아가지만, 주님께서 머리털 하나까지 보호해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