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빌레몬서 1:8-12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설교:그는 내 심복이라
만약 한 회사가 유능한 신입 사원을 뽑기 위해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대상으로 인물 분석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회사가 이들의 학력, 경력, 적성을 종합해 컴퓨터에 분석을 의뢰했다면 아마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 사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청탁하려 하였습니다. 도마는 매사에 너무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이 급해서 일을 그르치고 실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드레는 너무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속도가 늦고 추진력이 떨어집니다. 야고보는 혁명가적인 기질이 있어서 회사로서는 채용하기에 좀 위험한 존재입니다. 세리 출신인 마태는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제자들 중 가장 이상적인 신입 사원을 뽑는다면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학식과 경험을 겸비한 인물이며 실업가의 감각과 사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독교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은 실격자로 판정난 제자들이었습니다. 세상적 판단으로 가장 유능한 가룟 유다는 오히려 배신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레몬이란 사람은 골로새 교회의 교인으로 바울의 제자입니다. 그는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전도할 때 회심한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오네세모는 매우 재능이 뛰어난 젊은 사람이었는데 아마 로마 군대의 침략 당시 노예가 된 것 같습니다.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돈을 훔쳐 가지고 로마로 도망갔다가 거기서 바울을 만났습니다. 바울을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오네시모도 바울 만난 후 전도를 받고 개종하여 좋은 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개종한 오네시모에게 바울은 본 서신 서를 가지고 주인에게 돌아가게 했습니다. 바울은 편지에서 도망갔던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영접할 것을 빌레몬에게 부탁합니다.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복음을 위하여 유익 한자가 되었기에, 이제는 종의 위치가 아닌 사랑 받는 형제로 두어 복음의 일꾼으로 삼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인하여 잃은 손실은 자신이 보장하겠다고 말합니다. 오네시모를 위하여 자신이 보상하겠다는 바울의 친필은 법적으로 유효한 지불 보증 각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이 자신의 말에 순종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확신하되 자신이 요청한 내용보다 더 많은 일을 할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권위를 가지고 담대하게 권면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명령이 아니고 따뜻한 사랑의 간청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상은 무익하여 쓸모 없는 오네시모 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받는 형제가 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백성이 누리는 축복은 무조건적이며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 자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누구나 동일하며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이기에 모두가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8~10절의 말씀입니다.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바울과 오네시모가 만난 것은 로마 감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경위는 각각 달랐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오네시모는 주인의 집에서 재산을 훔쳐 도망친 종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위로 만났던지 간에 그들의 만남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로마의 감옥은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감옥에는 죄수들이 살 듯이 이 세상에는 각종 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하여 그들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서도 그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은 그대로 복음 증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만난 곳이 로마 옥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권한다고 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완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바울의 옥중 전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슨 기회든지 꼭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치면 실패하고 그 기회를 잘 포착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모는 골로새 교회의 중심 인물인 빌레몬의 종이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그러한 좋은 조건 속에서도 예수를 믿지 아니했습니다. 도리혀 잘 믿는 주인의 재산을 훔쳐 로마로 도망했든 사람입니다. 로마에 가기는 했지만 돈이 다 떨어지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이때 그는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을 찾아갔고 거기서 전도를 받아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즉 오네시모는 실패하고 앞길이 캄캄했을 때 변화되는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1-12절의 말씀입니다.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에만 해도 오네시모는 남에게 손해나 끼치는 쓸모 없는 사람, 아니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을 뻔한 인물이었는데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거듭난 오네시모는 변화를 받아 모두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고 특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에게는 꼭 있어야 할 인물로 변화된 것입니다. 나이 많아 육신적으로 약해져 있었고 몸이 자유롭지 못한 감옥 생활을 하는 사도 바울에게는 누군가가 곁에 있어서 사도 바울을 도아 줘야 했었는데 그동안 오네시모를 곁에 두고 생활해 보니 오네시모는 바울을 돕는 일에 큰 몫을 해낸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는 주인 몰래 도망쳐 나온 죄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되 주인의 허락을 받고 오네시모를 자기 곁으로 오게 하기 이해 무게 있게 그리고 간절하게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빌레몬이 사도 바울의 요청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만큼의 호소력이 있는 편지를 쓴 것입니다. 빌레몬이 사도 바울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게 쓴 편지의 요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복음으로 낳은 아들의 관계이므로 빌레몬에게 명령을 해도 되는 권위가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랑으로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 자신이 나이 많고 복음 때문에 옥에 갇혀 있는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자기를 돕는 자가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또 오네시모가 전에는 쓸모 없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사도 바울에게나 빌레몬에게 쓸모 있는 자로 변화되어 특히 사도 바울에게는 자기 마음이나 몸의 일부 같은 정도의 그를 돌려보낸다고 했습니다. 즉 오네시가 빌레몬에게도 필요한 존재이겠지만 사도 바울 자신에게 더 필요한 존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빌레몬이 직접 로마에 와서 바울을 돕는 대신 그의 노예인 오네시모를 사도 바울 곁에 두고 돕도록 하고 싶지만 주인인 빌레몬의 승낙을 받지 않고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돌려보낸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일단 돌려보낸 다음에 빌레몬이 다시 자원하여 그를 돌려보내 준다면 이 선한 일이 억지가 아닌 자원하여 베푼 선으로 될 수 있을 것을 알고 돌려보낸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의 편지라면 능히 빌레몬을 설득시킬 수 있는 호소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생명들은 노예이건 아니건 간에 아주 소중한 존재이므로 그 누구도 주님의 자녀로서 사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함께 애써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 우리가 한 생명, 한 생명을 복음 안에서 만나고 섬기는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시고,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의 동역자들을 늘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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