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야고보서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설교: 욕심이 잉태한 즉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손이 간신히 들어갈 만큼 코코넛 열매 속을 비우고 그 속에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코코넛 열매에 줄을 달아서 나무에 단단히 붙들어 매 놓습니다. 그러면 원숭이들이 와서 코코넛 열매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기 위해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런데 빈손만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뚫어놨기 때문에 음식물을 움켜쥐면 손이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이 다가와도 원숭이는 달아나지 못합니다. 움켜 쥔 손이 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만 펴면 도망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에 쥔 음식에 대한 욕심 때문에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원숭이들은 사람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고 머리도 좋은 편입니다. 원숭이들이 사람들에게 붙잡히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욕심 때문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때 도마뱀처럼 과감하게 꼬리를 잘라내 버리면 살 수 있는데 욕심 때문에 결국 잡히고 맙니다.
사람도 욕심에 사로잡히면 원숭이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도서 5:10).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시는 축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4-15절의 말씀입니다.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 때문에 생깁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경계하라는 야고보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산새는 둥지 하나만 있으면 보금자리로 만족한다. 거기서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산다. 내 둥지는 몇 평인데 네 둥지는 몇 평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아예 그런 산출을 모른다. 처음부터 욕심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아파트가 평수로 따져지고 예금통장이 금액으로 따져지면서 욕심의 넓이를 재고 깊이를 재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을 뱁새가 본다면 얼마나 가소롭게 여길 것인가."
"사람의 욕심에는 한이 없다. 욕심이 물이라면 배가 터져도 마셔야 하는 것이 사람이다. 실컷 마시고도 모자란다고 다시 실컷 마셔서 배가 터진 사람을 보고 두더지는 무엇이라고 할까? 천하에 바보는 사람밖에 없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오, 하나님]이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작가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옷을 주지 않으셨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옷을 받자마자 주머니를 달아 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주머니를 달아 주면 돈을 채워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돈을 채워주는 순간부터 사고는 시작될 것이다." 재미있지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이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죄를 지으며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욕심 때문에 고통이 있습니다. 욕심은 마치 불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불장난 같지만 나중에는 큰 화를 당하는 불과 같습니다. 불조심하듯이 욕심을 단속해야 합니다. 욕심대로 하다가는 큰 화를 당합니다. 욕심 때문에 전쟁을 합니다. 욕심 때문에 부정과 부패가 계속됩니다. 욕심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욕심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욕심을 경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에 욕심이 자리 잡으면 아무리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느 기자가 미국의 한 재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에 만족하십니까?”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그는 “조금만 더”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조금만 더’의 끝은 어디 일까요?
아간은 시날산 외투와 금덩이, 은덩이를 탐내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나아만이 예물로 가져온 금은보화를 탐내다가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즐겨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어떤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왕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루 동안 밟고 걸어 다닌 땅을 모두 다 네 것으로 주겠다.”
농부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에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뛰어야 합니다. 농부는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힘을 다하여 밤늦게까지 전력을 다해 뛰었습니다.
그 덕분에 농부는 많은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출발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린 나머지 쓰려져 죽고 말았습니다.
웃고 넘길 수 없는 것은 우리도 그 농부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혹의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는 것은 마귀의 유혹 때문이요, 내 욕심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바닷물을 마신 후의 갈증과 같아서 끝이 없습니다.
욕심은 적당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은 채우려 하지 말고 다스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망하게 하는 욕심을 일으키게 하는 유혹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죄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란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되면 죄를 낳는데 죄는 낳는 순간부터 자랍니다. 사망에 이르기까지 자랍니다. 잉태, 장성, 자란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죄는 자라납니다. 어린아이는 죄 중에 잉태됩니다. 시편 51편의 다윗도 “내가 죄악 중에 잉태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짓습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죄도 자랍니다. 죄의 활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욕심을 그대로 두면 계속 움직이고 자라나며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죄는 아주 빨리 자랍니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보다 죄가 자라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죄가 잉태되면 결국 사망으로까지 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죄가 계속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야 합니다. 죄가 성장하도록 방치하면 나중에는 내 힘으로 다룰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 “보임직도 하고”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미지를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밀고 들어오는 유혹은 강력합니다. 보는 것을 단순히 보는 것으로만 여기면 안 됩니다. 보는 행위 속에 우리 안의 욕망과 뒤섞이게 되면 그것은 증폭현상이 일으킵니다. 욕심이 잉태되고 나면 점점 자라고 마침내 어떤 결과가 탄생되고 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은 종국적으로 육체적 사망이지만 그 이전에 인격적 사망, 때로는 가정적 사망, 사회적 사망을 선고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특성입니다. 작은 출발이지만 크게 작용합니다. 작은 출발에서부터 경계심을 가지지 않으면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작게 시작한 죄가 한 가정을 파괴하기도 하고 공동체를 비극으로 몰아가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욕망은 그대로 두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똑같습니다. 죄는 영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사람들마다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알고 덫을 놓습니다. 다윗은 광야의 험난한 삶에서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는 용사였습니다. 그를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의 영웅 골리앗을 넘어뜨렸던 전설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여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삼손 역시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힘은 강점이면서 약점이었습니다. 드릴라라는 한 여인의 무릎을 베고 그의 인생이 무너졌습니다. 이삭은 먹는 것에 약했습니다. 별미에 눈이 어두웠습니다. 가룟 유다는 물질에 약했습니다.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 버렸습니다. 사울은 권력욕에 약했습니다. 그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칩니다. 자신의 약점을 알면 사전에 조심해야 합니다. 기름을 가지고 있다면 불을 조심해야 합니다.불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내가 기름을 가지고 있는데 불이 붙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의도적인 회피를 해야 합니다. 돈에 약한 사람은 돈을 책임지는 자리에 가면 그 결과는 망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삼손과 같이 여자를 밝히는 사람은 그런 유혹으로부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자신이 넘어졌던 부분이 어디인가를 계속 확인하면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셋째, 유혹의 통로를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이 첫 시작입니다. 보는 것을 통하여 마음에 미혹을 일으킵니다. 유혹에 관한 원론적인 방법은 피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결국 도망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혹을 주는 자리를 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분은 먹는 자리를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과 관련된 업무를 한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참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유혹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라고 합니다. 유혹의 요소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시선을 그리스도에게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승리하게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파워를 이기는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삶에서 찾아오는 수없는 시험을 이겨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와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죄의 힘을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을 우리가 믿고 주님을 붙잡고 나아가면 우리를 찾아오는 수없는 덫들, 수없는 유혹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유혹으로부터 이기게 하시는 그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시험을 당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욕심을 다스리고 자족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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