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야고보서 5:19-20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설교: 진정한 경건
야고보서는 ‘사회복음 운동의 교과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회 개량에 앞장서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우리가 알기 쉬운 말로하면 개혁파들, 진보그룹이 제일 좋아하는 성경이 야고보서입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깊이 삼가고 조심함’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책자들의 풀이를 소개해 드리면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보여야 할 거룩함’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리고자 하는 절대귀의의 감정이나 의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
‘기독교인의 내적 신뢰와 공경심과 평안이 외적으로 그의 언행, 심사 전반에 나타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공경하고 봉사하는 것’
여러 가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경건은 바로 신앙생활 자체를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6세기 초반에 독일에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1세기 정도가 지나면서 개혁정신이 많이 흐려졌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이 ‘다시 한 번 개혁하자!’ 하는 각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교회의 역사에서는 이 운동을 경건주의 운동(Pietism)이라고 부릅니다.
쉬페너(Spener), 프랑케(Francke), 그리고 웨슬리 목사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진젠도르프(Zinzendorf) 백작 같은 분이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감리교도 이 경건주의 운동에 뿌리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경건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참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진정한 경건”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19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야고보가 보여준 참된 믿음의 증거들은, 구원받은 자에게는 더욱 더 그런 증거를 나타낼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이 편지의 대상인 유대인들은 여러 어려움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편지는 고난 중에도 참된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또 다른 목적은, 이런 증거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있는 것이 거짓 믿음이라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는 후반부로 갈수록 거짓 믿음을 가진 자들이 회개할 것에 대해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4장에서 야고보는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 사는 사람과 다툼을 일으키는 것으로 삶이 특징지어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제 야고보는 서신서를 마무리하면서 교회 안에 여러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줍니다. “너희 중에”(13,14,19절)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고난 당하는 자”와 “즐거워하는 자”, “병든 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가리키며 이런 상황에 있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20절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오늘 본문인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는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에 대한 명령은 이미 4장에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는 명령입니다. 그들을 돌아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 낙심한 성도들은 격려가 필요하고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삶에 매우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하늘나라에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20절).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다 할지라도 사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침례를 받았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자들을 볼 때 그들을 돌아서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두 사람을 언급합니다. 한 사람은 ‘진리를 떠난 자’이고 한 사람은 ‘그를 돌아서게 한 자’입니다. 진리를 떠난 자는 그릇된 길에 살던 자고 그를 돌아서게 한 자는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죄 용서를 받게 한 자입니다.
특별히 야고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자들과 교회 안에 있었던 자들입니다(“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그들은 교회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고 어쩌면 지금도 그 안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성도의 무리 안에 있으면서 가르침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하신 일과 우리의 책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거절하고 죄악된 삶을 살면서 영원한 심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구원받은 사람 같을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 그 형제가 주님을 떠날지 몰랐다. 그는 주님을 고백하고 교회에서 나와 함께 일했다’라고 말할 사람이 주변에 있을지 모릅니다. 현재 죄악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과거 한 때는 그렇지 않았으니 훗날 천국에서 볼 수 있겠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이것은 구원받았던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믿는 자의 무리 속에 있었던 것이고, 그가 떠남으로 그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영원한 멸망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교회 안에 있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통해 이것이 참된 믿음이 증거라는 것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가까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증거가 완전할 수는 없으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싸움이 내 안에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지금까지 믿음이라고 고백한 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변에 거짓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했던 사람들, 진리를 거절하고 죄악된 삶을 살고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전해야 할까요? “누구든지” 전해야 합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하나님과 화목된 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직분을 맡은 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영혼을 구원하고 화목하게 하는 일을 마치 우리가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시는데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양을 잃은 목자’와 ‘동전을 잃은 여자’, 그리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귀한 것을 찾았을 때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이유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올 때 이와 같이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야고보서를 통해 참된 믿음의 증거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정말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었습니다. 참된 믿음은 그 증거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데 어떻게 그 증거가 나타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열매 맺지 않는 나무가 어찌 살아있는 나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8-20). 여러분의 열매가 여러분의 믿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들의 입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말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열매는 교회에 나오고 헌금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행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여러분들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있는 영원한 사망을 향해 가고 있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전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야고보서를 통해 진실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외식하는 신앙생활로 주님의 말씀에 반하여 살았다면 용서하여 주시고 날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드로전서 강해 1) 택하심을 받은 자들 (수요기도회 20230726) (0) | 2023.07.26 |
---|---|
범사에 형통한 요셉 (창 39:2-3, 주일예배 20230723) (0) | 2023.07.23 |
온라인예배 20230716 (0) | 2023.07.16 |
야고보서 강해 27) 기도의 사람 엘리야 (수요기도회 20230712) (0) | 2023.07.12 |
온라인예배 20230709 (0) | 2023.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