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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 1) 택하심을 받은 자들 (수요기도회 20230726)

by 온누리선교 2023. 7. 26.

 

성경본문: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설교: 택하심을 받은 자들

 

대구 한 마리가 약 400만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른 물고기나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알을 낳기까지 살아남아있는 대구는 겨우 서너마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39999964의 엄청난 생존율입니다.

상수리나무 한 그루에는 한 해에 한 가마 이상 도토리가 열립니다. 하지만 그 중에 열매가 열리는 나무로 자라는 도토리 열매는 한 해에 한 두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산짐승이나 사람들이 먹고 나머지는 그냥 썩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사모하여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보기 힘듭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주여!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악을 쓰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쓴잔을 마시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황금면류관을 쓰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가시면류관을 쓰고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으니라."(22:14)

 

오늘부터 우리는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저자는 본문에 쓰여진 것처럼 사도 베드로입니다. 특히 언급된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저자가 베드로이며, 그는 택함을 받은 자들이고, 이렇게 자신과 같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기록 당시 베드로는 로마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5:13), 4장에 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대대적인 박해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4:12-19) AD 64년에 네로황제가 로마 대화재를 기독교인의 소행으로 몰아 대박해를 감행한 전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의 기독교 대박해를 직접 목격하고 그 박해가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임을 예감하고 베드로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수신자는 아주 명확합니다. 바로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 성도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교와 로마제국, 그리고 각종 우상 숭배자들의 박해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러내 놓고 기독교인임을 밝히기 어려웠던 만큼 여러 가지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나 하면, 이방인들의 음란하고 방탕한 삶과 달리, 구별된 삶을 사는 그 자체부터 미움받고 비방받는 원인이 되었습니다(4:4).

오직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갖은 비방과 인격 모독과 일터에서의 해고와 폭행, 심지어는 죽임까지도 당하는 온갖 핍박가운데 있던 이들의 형편은 마치 낯선 환경에 처한 이방인이자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와도 같았습니다.

더욱이 로마에서 발생했던 대박해의 소식은 이미 많은 고난 중에 믿음을 지키던 이들에게 더욱 큰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불 같은 시험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으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힘겹게 믿음을 지키고 있던 그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의 서신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베드로전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부정하는 요구들을 세상에서 받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1절의 말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라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한 것은, 지금 쓰고 있는 이 서신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라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공식적으로 보냄 받은 대리자의 자격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써서 보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말을 원어의 뜻을 살려서 풀이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사명을 부여받아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이 바로 사도인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명확한 확신이 있습니까? 이러한 소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아무리 성도라고 말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아직 온전한 성도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흠없고 티 없는 자만이 택함을 받는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것이 잘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을 택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베드로는 사도로 택함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베드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다른 제자들보다 더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있었고, 잘 배우지도 못했고, 의심을 했기에 바다 속에 빠졌고, 예수께 사탄이라고까지 불림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때에는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인간적으로 볼 때 아주 형편없고, 신뢰할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이렇게 완전한 자가 아닌 불완전한 자들을 택하셔서 가르치고 연단하셔서 귀한 일꾼으로 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선한 일꾼이 될 수 있 다는 소망을 품고 주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자, 준비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대로 살기를 결심한 사람을 훈련시키시고 연단하셔서 그와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흠 많고 티 많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음까지는 어찌어찌 믿는데, 그런 사람을 연단시키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부르심은 아는데,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성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직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자부심과 그 특권을 누리려고만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는 반드시 연단 받고 훈련 받습니다.

그를 통해 믿음과 인격이 하나님의 기준에 달했을 때 세상에 보내심을 받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성경구절은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나그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3장에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매장할 곳을 구할 때 헷족속에게 자신을 나그네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그네란 일시적인 거주자,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나그네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종합해 보면 외국인, 손님, 이방인이라는 뜻과 더불어 하늘이 본향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을 본향 삼아 나그네처럼 살아가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3:20). 하늘의 시민으로서 하늘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고난을 당해도, 멸시를 당해도, 경제적인 손실을 당해도 마치 나그네인 것처럼 그런 것을 초월하며 힘껏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풀이하자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미리 아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 주셔서, 여러분은 순종하게 되고, 예수님의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더욱 가득하기를 빕니다라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인간의 행위가 선하냐’ ‘악하냐에 관계없이 그의 백성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뜻합니다(3:5~7).

우리 인간의 한정된 지식과 지혜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결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드시 성령님의 사역이 뒤따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세상의 죄로부터 분리되고, 정결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아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그 은혜에 따라 성경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 때 우리는 온전한 구원의 기쁨을 소유하게 되고 그로 인해 고난 받고 연단 받는 나그네로서의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백 년전, 미국에서 온 한 여행자가 유명한 랍비 호페츠 캐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랍비의 집에 책들과 한 개의 테이블과 벤치가 있는 단순한 방 한 개가 전부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여행자는 "선생님 당신의 가구는 어디에 있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의 가구는 어디 있죠?"라고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내꺼라뇨?" 당황한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저는 단지 이곳을 방문했을 뿐이오. 단지 지나갈 뿐이예요" "나도 그렇소"라고 랍비가 말했습니다.

여기에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인생은 나그네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 하나님!

저희들은 모두가 이 땅에서 복을 받기를 원하고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오늘 너희는 이미 받을 복을 다 받았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심에 순종함으로 더 크신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