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베드로전서 1:7-12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설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조용기 목사님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성회를 인도할 때에 엣센에서 한 중년부인이 먼 길을 기차를 타고 신앙 상담하러 왔었다고 합니다. 그 부인은 고아로 태어나서 고아로 자랐고 늘 부정적인 환경에서 슬픔을 되씹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독일로 귀화한 일본인 의사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 남편은 이 여인을 끔찍이 사랑해 주었습니다. 자녀도 3남매나 되어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수입도 많고 집도 좋고 남편은 자기만을 사랑해 주며 자녀들은 건강하게 자라는 대단히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의 마음속에 무서운 공포심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어느 순간에 이것을 다 빼앗아 가실지 모른다는 공포심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주를 잘 믿으라 고통을 당해야 할텐데 내가 이렇게 행복하니 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나를 연단시키기 위해 남편을 데려가시든지 자식을 데려가시든지 아니면 생활이 곤란하게 하실 것이다.”
이와 같은 공포심에 눌려 안절부절했습니다. 남편이 정신과 의사였지만 아무리 정신분석을 해도 낫지 못하다가 조목사님께 도움을 구하러 왔던 것입니다.
"목사님, 이제 불원간 먹장구름 같은 불행이 나를 휩싸올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고아로 태어나서 늘 고생만 하며 자라왔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이런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님,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조목사님은 대답하기를 "자매님, 자매님은 중대한 신앙에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함이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시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넘치게 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려 함입니다."
"글쎄, 목사님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니까요."
그때 조목사님은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신 것을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실 때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시고 나서 좋다고 하셨습니까?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까?" "좋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궁창을 지으시고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후로도 조목사님은 성경에 비추어 조목조목 설명하셨습니다. 이 자매님은 나중에 은혜받고 좋으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세세한 신앙생활에서 마귀의 유혹과 장난이 이렇게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 에 있는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구원의 비밀’에 대한 말씀에 대해 확실히 아는 지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7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땅속에 묻혀있던 금광석도 순수한 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로 수차례 연단을 해야 하는데, 하물며 죄 중에 깊이 빠져있던 우리가 구원받은 의인의 삶을 살기 위해 연단을 받아 순수하게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될 것인데, 이것을 안다면 어찌 주어진 시련들을 기쁨으로 찬송하며 이겨내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막상 시련 앞에 서면,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신앙의 원리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시련이 분명히 필요하고 연단을 받아야 진정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아는데 정작 시련 앞에 서면 몸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시련만 바라봄으로써 실망하고,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몸과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가장 마음 아파하시는 분은 누구겠습니까?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비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렇다면 8-11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은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오래 전에 미리 앞서 하나님을 믿던 선지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그분들도 예수님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기록했습니다.
10~11절을 보면, 예수님의 복음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부터 이미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셨고, 이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이 자세히 살피고 연구하여 그리스도께서 어느 때에 어떻게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지 우리에게 알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구약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감추셨던 비밀을 풀 수 있는 지침이 기록되어 있고,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구원의 길이며,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또, 그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초대교회가 형성될 당시 ‘구약성경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구약의 예언이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 구약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성경은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는 이스라엘 역사와 지금은 사라진 성막, 제사법, 성전, 정결법 등이 기록되어 있고, 내용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 면에 있어 구약성경이 신약성경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도 신약성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성경에 비해 신약성경이 구원과 진리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힌트를 주는 책이라면, 신약성경은 정답을 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2절입니다.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어떤 집사가 세상을 떠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은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왔는가?” 역시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역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닙니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 어떤 벌이 내려질 것인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전신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눈을 드니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사를 껴안고 보좌를 올려다보면서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도 못했고 의롭지도 못했고 깨끗하지도 못했으나
세상에서 이 사람은 항상 저의 편에 있었으니,
지금 이 곳에서는 제가 이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 창조주되신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원래, 모든 인간은 처음부터 구원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갖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온갖 유혹과 거짓으로 인간의 심성을 왜곡시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함으로 인간에게 있던 소망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소망과 기대의 자리에 ‘두려움과 절망’을 채웠습니다. 구원에 대한 소망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 사탄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탄의 공격은 신약시대에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이 땅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절망은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는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전략을 바꿉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진리에서 멀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영혼의 구원’을 전하는 것은 차라리 반발하는 사람에게보다도 훨씬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구원에 대한 무관심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적 타락의 적신호’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 ‘구원에 대해 관심없다’라는 말을 한다면 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장차 그에게 임하게 될 영원한 심판을 기억하고 그 영혼을 위해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신 이유이며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 중에서도 찬송하며 믿음을 지킨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영혼에게 구원에 대한 관심과 소망을 성령께서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았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비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칩니다. 또한, 인간의 기원과 궁극적인 목표,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내고, 시간을 정하여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읽은 것을 삶의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믿음의 시련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전해지고 이루어졌는지 깊이 묵상하되, 성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이신 주님이시여!
지금의 이 신앙과 믿음에 만족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더욱 알기를 원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을 매일 더 많이 경험하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고, 모든 악한 권세와 담대하게 싸우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빌레몬서 1:20-21, 주일예배 20230910) (0) | 2023.09.10 |
---|---|
온라인예배 20230910 (0) | 2023.09.10 |
나의 선하신 하나님 (시 143:10, 주일예배 20230827) (1) | 2023.09.03 |
온라인예배 20230903 (0) | 2023.09.03 |
온라인예배 20230827 (0) | 2023.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