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베드로전서 3:16-17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설교: 선한 양심을 가지라
교회에서 한 성도가 다른 성도를 비방할 때, 회사의 물품을 다들 내 것처럼 사용할 때 당신의 양심은 무엇을 말합니까?
병원에서 입원했는데 당신을 잘 아는 직원이 병원에 장기주차하는 주차료를 안낼 수 있도록 조치해주겠다고 합니다. 당신의 양심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결정을 하며 그에 따른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운전하는 운전대, 키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양심입니다.
베드로가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한 것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양심의 상태를 좋게 유지하라, 지켜내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은 건강한 양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건강한 양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양심은 우리가 어떻게 지켜내는가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서 파선하였다”(딤전 1:19)고 말합니다. 또한 양심에 화인을 맞아 감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경고합니다(딤전 4:2). 양심을 깨끗하게 혹은 선하게 다른 말로는 건강하게 지켜낼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하루는 김구 선생님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셨습니다. 관상학적으로 볼 때 임시정부를 맡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수상(手相)을 봤고, 그것도 별 볼일 없어서 족상(足相)까지 봤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나라의 중책을 맡을 만한 근거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 김구 선생님이 내리신 결론은 바로 심상(心狀)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창인 눈이 성해야 온몸이 밝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깨끗해야 그 사람의 삶이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몸을 씻는 것도 중요하고 새 옷으로 치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회의 눈물로 맑은 양심을 유지하는 것이며 혼탁해진 영혼의 눈을 씻는 일입니다. 나이를 먹어도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같은 맑은 눈동자의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맑은 양심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기준점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양심은 건강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6절의 말씀입니다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먼저 건강한 양심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양심이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기능을 정상적으로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것은 선한 것으로 악한 것은 악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 양심 혹은 건강하지 못한 양심은 악을 악이라 하지 않습니다. 행악하는 것을 옳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양심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체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정도를 만족할 때 우리는 정상이라고 말하고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혈압은 보통 120-80이라고 말하지요. 선과 악을 판단하는 양심이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을 살펴보면 로마서 1장 32절에 다음과 같이 건강하지 못한 양심을 가진 사람에 대해 묘사합니다.
“그들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32)
무엇이 기준입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입니다. 그것에서 멀어진 양심은 건강을 잃어버린 양심입니다. 반대로 좋은 양심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할까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는 교훈”(딤전 1:11)을 전달하면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자신이 전달한 하나님의 교훈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선하다고 말하고 악하다고 말하는 것에 악하다고 말할 줄 아는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양심, 선한 양심입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다 괜찮다고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 그렇게 한다고 하는 말에 흔들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신 것이 옳은 것이고 옳지 않다고 하신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양심이 말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갈릴리의 한 산에 오르셔서 하신 말씀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너희 양심은 난 살인하지 않았으니까, 간음하지 않았으니까 선하다고 말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악한 것이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과 같이 악한 것이다. 하나님의 예리하고 분명한 선악의 기준으로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셨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무뎌졌다면, 건강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은 우리의 양심을 계속해서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교훈은 그 목적을 위해 주어졌습니다(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 3:16).
반대로 어떻게 하면 우리 양심의 건강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요? 무뎌진,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버릴까요? 진리를 거스르면 됩니다. 한번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 다시 귀를 막기가 쉬워집니다. 계속해서 진리가 아닌 다른 가치관들을 섭취하면 됩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준과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판단 기준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럴수록 점점 더 무감각한 양심과 멀어진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열심히 선을 행하는 주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그 보혈을 흘리신 목적입니다. 선행의 대가로 때로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 비방했던 그들은 이 땅에서 혹은 하늘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상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면류관을 돌려드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 놀라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분명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예리하고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건강한 양심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으로 날마다 당신의 양심을 갈고 닦으시기 바랍니다. 무뎌진 부분을 예리하게 쪼개고 무감각해진 부분을 찔러서 일깨우기 위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두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충분하도록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17절에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말씀을 살아내려면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믿음을 신앙으로 살아내는 선한 행실을 비방하고 욕하는 자들에게 그 비방하는 일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다면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원수를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유익한 것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 뛰는 총명과 우리 앞에 큰 장벽이든 깊은 함정이든 함께 뛰어넘어 주시는 형통의 복으로 인도해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고난은 훈련이라 생각하고 소망으로 감당하여 가장 좋은 유익함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애드가 군지 할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그분은 한국에서 복음 영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영사기를 사서 한국 공항을 통과하여 들어오셨습니다. 새로 산 영사기에 붙는 세금은 엄청났습니다. 세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배려해주기 위해 영사기를 돌려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사용한 물건으로 처리하여 세금을 면제해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나중엔 박스라도 뜯어본 적이 있으면 세금을 면제해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끝까지 이 물건은 새물건이고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답답하게 느껴지십니까?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게 느껴지십니까? 저는 할아버지의 선한 양심에 감동이 됩니다. 다른 사람은 다 눈감아주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옷자락을 자른 것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모든 일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고백을 하고 싶으십니까? 날마다 선한 양심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주님의 백성으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거룩한 존재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양심으로 살기에 너무 힘듭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악을 행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난을 받는 게 낫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으로 주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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