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마태복음 1:19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설교: 의로운 요셉
구약성서의 중심사건인 출애굽 사건의 바탕이 된 사람이 있지요. 바로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가, 형들의 시샘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갑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혹을 물리치고 믿음을 지켜 냅니다. 결국,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기근으로부터 구하지요. 그렇게 이집트로 온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요셉을 모르는 파라오에게 억압을 당하다가 출애굽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예수님의 아버지 이름도 요셉입니다. 요셉이 헤롯을 피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가 돌아오는 대목도 출애굽 사건을 연상하게 하지요.
누가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그 초점을 마리아에게 두고 있습니다.
천사의 예고와 마리아의 순종, 그리고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가 울려 퍼지지요.
이렇게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에게 조명이 집중되는 반면, 마태복음, 적어도 그 탄생 이야기 에서만큼은 요셉에게 조명이 주어집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는 마리아의 두드러진 특성 때문에 요셉의 모습은 거의 가려져 있는 편입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물론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된 것은 그 자신의 자격 때문은 아니었 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탄생에서 요셉의 위치는 작지 않습니다.
적어도 마태복음에서 요셉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는 어쩌면 메시야의 탄생을 막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가 거부한다면 마리아는 처벌을 받아야 했고, 그런데 되면 예수님은 태어나실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과 관계없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Джозеф обнаружил, что его невеста забеременела против его воли. Что он должен делать?
율법의 조문에 의하면, 마땅히 파혼하고 고발하여 돌을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마리아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수태고지 즉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신학자는 식민지 로마 군인들에 의한 성폭행을 얘기합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미치도록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여러분들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성경을 문자대로 읽으면, 여러분은 ‘아, 그렇군요. 요셉은 참 맘씨 착한 남자였군요. 관용을 아는 사람이군요’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왠지 합리적이지 않지요
본문 19절에는 요셉의 사람됨을 엿볼 수 있는 요셉에 대한 평가가 기록됩니다.
곧, 그는 ‘의로운 사람’(법대로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 인간 됨됨이가 된 사람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배신, 증오, 울분! 이런 감정이 그에게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는 어찌할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판단이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이기에 기도하면서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요셉은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은 특히 마태복음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기록하였지요. 무엇보다 ‘의’를 주장하는 바리새파 율법 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고, 그리스도인의 ‘의’가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마5:20).
이것이 마태복음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 요셉이 바로 그 ‘의로운 사람’, 마태복음이 시작부터 내세울 수 있는 전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의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만약 한 여인이 약혼한 남자가 모르는 임신을 했다면, 그에 대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율법 학자들의 ‘의’에 따르면, 그녀는 정죄 받고 돌팔매질로 심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난한 유대인이며 평범한 남자인 요셉이 아는 ‘의’는 달랐습니다.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부끄러워하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율법학자들의 의는 ‘문자’였지만, 요셉의 '의'는 ‘사랑’이었습니다.
율법의 ‘의’가 ‘정죄’로 표현된다면, 복음의 의는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1935년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뉴욕 빈민가의 법정을 맡고 있던 피 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 ardia)판사 앞에 누더기 옷을 걸친 노파가 끌려왔습니다.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 때문이었습니다.
노파는 울면서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사위란 놈은 딸을 버리고 도망갔고, 딸은 아파 누워 있는데, 손녀들이 굶주리고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빵 가게 주인은 비정했습니다. 고소 취하를 권하는 라과디아 판사의 청을 물리치고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라과디아 재판장이 노파를 향해 이렇게 선고했습니다.
“할머니,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어요. 벌은 받아야 합니다.
벌금 10달러를 내시거나 아니면 열흘간 감옥에 계십시오.”
선고를 내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모자를 벗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거기에 넣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어서 이렇게 최종 판결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벌금 10달러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벌금을 완납했습니다. 나는 오늘 굶주린 손녀들에게 빵 한 조각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살고 있는 죄를 물어 이 법정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그의 모자를 법정 경찰에게 넘겼다. 그렇게 모인 돈이 자그마치 57달러 50센트였습니다. 대공황 시절 불황 속에서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판사는 그중에서 벌금 10달러를 뺀 47달러 50센트를 할머니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뉴욕타임스는 이 훈훈한 이야기를 이렇게 보도했다고 합니다. 《'빵을 훔쳐 손녀들을 먹이려 한 노파에게 47달러 50센트의 벌금이 전해지다!'》
그렇습니다. 사람에 대한 조용한 배려, 그것이 요셉의 ‘의’였습니다.
손잡아 주고, 따듯한 말 한마디, 이해하고, 덮어주고, 격려해 주는 것, 용서하는 것 나도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義의 입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그래서 별로 도드리게 눈에 띄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닮아있습니다.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쳐라' 말씀하셨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요셉처럼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처지를 헤아리며 살려고 애쓰고 괴로워하며 함께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교회는 의로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요셉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서로서로 손잡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오신 중요한 뜻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아기 예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아기 예수로 오신 주님이시여!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에게 “의로운 요셉”에 대해 깨달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성탄 축복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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