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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강해 18)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 벧전 4:4-6, 수요기도회 20231220)

by 온누리선교 2023. 12. 20.

본문: 베드로전서 4:4-6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설교: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피스 존은 20년이 넘도록 중국에서 지내면서 젊은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경건해지도록 힘쓰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877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회의에서 그는 선교사는 무엇보다도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거룩한 사람이길 기대합니다. 나는 별로 경건하지 않은 채 큰 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목회자는 착한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언어와 문학을 익힐 뿐만 아니라 경건해지기에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바로 이 큰 나라가 우리를 통해 변화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삼위일체시요 거룩하신 분이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가지십시오. 거룩함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를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시간을 나누십시오. 이처럼 거룩한 교제를 위해 시간을 내어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친히 우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십니다. 끊이지 않는 교제를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도 베드로의 말을 통해 우리는 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왜 죄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지,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이 필요한지에 대해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5절의 말씀입니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심판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죄에 대한 심판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싸우기 힘든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죄와 싸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와서 나는 지금 교만과 싸우는데 그것이 참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주변에 죄와 싸우면서 괴로워하면서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이 넘쳐난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하기 쉽고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내면의 죄와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의 본질아 내 안에 있는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밖에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문제가 있다, 사회가 문제다, 직장상사와 직장 구조가, 나의 부모가, 나의 아내 또는 남편이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피해자이고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문제의 본질을 밖에서 찾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국가에 문제 있다는 것,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 남편 또는 아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을 이루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문제의 본질을 교만, 이기심, 죄의 욕구에서 찾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의아해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 사람들에 대해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방탕쾌락을 좇아 통제되지 않는 제멋대로의 탐닉하는 것을 말합니다(그루뎀, 259). 탕자의 허랑방탕한 삶을 묘사할 때 사용된 표현입니다(15:13).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방탕함을 향한 세상 사람들의 질주에 함께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거대한 무리가 홍수처럼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함께 달리지 않고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달린다는 표현을 보면 세상이 방탕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무섭게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에 거슬러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이성교제를 좋아하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큰 의미를 두는 것은 자아실현, 자기만족, 행복입니다. 내가 만족하고 기쁘다면 양심의 가책을 가져와도 조금은 부조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들 사는 것처럼 나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반대되는 삶을 삽니다. 기쁨을 가져다줘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면 그 기쁨과 만족과 유익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6절의 말씀입니다.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죄와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에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죄의 욕망과 싸우는 삶에 주어지는 보상이 있기에 우리는 죄와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당시 소아시아 성도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타락한 로마의 부패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싸우며 거룩함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많은 비방을 들으면서도 열심히 구원에 이르는 그 길을 묵묵히 걸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심각한 핍박을 받아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전해지고 나서 더욱 심각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성도들을 보면 남아있는 자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특히 이 세상에 눈을 두면서 그것을 바라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죽음 그 이후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연약하다면 말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중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삶을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이 땅의 삶이 전부라면 그분들의 삶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의미가 없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의 삶이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대단하게 잘 되어 살다간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께 헌신된 사람은 가난하게 핍박가운데 살다 갔습니다. 이 땅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불쌍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하늘의 보상을 잊어버리고 살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삶에 매력이 사라집니다. 차라리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마음껏 즐기며 충분히 누리며 살다 죽은 사람의 인생이 더 멋지지 않습니까?

여기 등장하는 죽은 자들은 이미 복음을 들은 사람들, 그리고 그 복음에 따라 죄와 싸우다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는 육체로는 죽음이라는 심판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는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쉬운성경: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나사로 이야기에서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있는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육체적 죽음을 지나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모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른 것이며,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은 것”(1:9)입니다.

 

왜 우리는 마땅히 살아야 할 길, 죄와의 싸움을 더 열심히 싸우지 않습니까? 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치열하게 죄와 싸우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할 때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암 환자로서 가장 격려와 힘이 되는 것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각자가 죄와 싸우는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면 서로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죄와 싸움에서 지고 낙담한다면 성도에게 짐이 될 것입니다. 교회로서 하나가 되고 사랑하려면, 서로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려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죄와의 싸움을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와의 싸움을 멈춘 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잠언 26:11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성인 바실리우스가 하루는 영안이 열려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깨진 항아리에 물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물을 부었으나 밑으로 다 새나가 항아리에 반도 차지 않았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가장 미련한 자라. 마음에 굳은 결심이 없어서 한가지 착한 일을 하고는 이어서 한 가지 악한 일을 하니 먼젓번의 선한 일은 없어지고 끝내 무용한 일이 계속되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을 보니 그는 산 위에서 나무를 베고 있었는데 이미 자기 힘으로는 질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사는 또 설명해 주었습니다.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많은 악을 그대로 두고 다만 후일 회개하고 고치겠다고 하는 가장 미련한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곧 회개하고 돌이켜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계속 반복하여 저지릅니다. 개가 잘못 먹은 것을 토했다가 나중에 다시 그것을 먹듯이 미련한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 고통을 겪어도 그 고통이 지난 다음에는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파멸을 당할 때까지 계속 미련한 짓을 되풀이하다가 미련한 사람은 결국 죄 가운데서 파멸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따라 살려는 길을 선택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소중한 생명들이요, 하나님의 것이며, 그리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목표가 있는 삶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시고, 당신의 거룩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날마다 주님을 향하여 가게 하옵시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늘 새롭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