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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이어받는 그리스도인 (벧전 3:8-9, 주일예배 20240211)

by 온누리선교 2024. 2. 11.

본문: 베드로전서  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복을 이어받는 그리스도인 

 

오늘은 민족의 명절 구정연휴가 있는 주일입니다

또 다시 한번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만 축복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축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무슨 관계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싶어합니까?  

우리가 내가 하나님이랑 어떤 관계지? 난 하나님 별로 믿지 않는데, 믿음이 없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한테 복을 달라고 빌까요? 하나님을 믿지도 못하는데, 축복을 주어도 그것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이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구원자이냐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 영생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와 아주 밀접하고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면,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이어받는존재임을 확실하게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8절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여기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서로 간에 반드시 가져야 할 5가지 미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예수님부터 시작해서 제자들까지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했던 명령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다시 다섯 가지로 모아서 성도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석가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임의로 뽑은 미덕들이 아니다. 손의 다섯 손가락처럼, 그 미덕들은 하나의 중심에서 퍼져나가며 서로 협력한다. 그 모든 것의 비결은 은혜의 사랑이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사랑, 불쌍히 여김을 반영한다.” 이 다섯 가지 미덕은 한 손에서 뻗어나간 손가락처럼 하나의 중심에서 흘러나와 서로 하나가 되는 미덕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강한 동력과 동기가 됩니다.

이제 그 다섯 가지 미덕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라는 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전에 제가 유튜브를 보다가 경악을 한 일이 있습니다. “청결에 강박이 있는 연예인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보통 청소를 하면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우선 대충 걸레질로 바닥을 청소하고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제거한 후, 청소물티슈로 바닥을 닦았습니다.

가끔 전에 연세 지긋한 고려인 권사님께서 아예 교회 바닥을 대걸레로 쓱쓱 청소하시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그처럼 3번에 걸쳐 바닥을 닦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벽과 천창까지 진공청소기로 그는 먼지를 제거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단순한 청소도 다 사람마다 다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간에 연합한다는 것은 획일적인 하나를 만들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의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됨의 아름다운 모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연합을 이루시는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를 하나로 묶어주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 한 성령 안에서 한 세례를 받았고 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또한 그 하나님 안에서 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가 당연히 연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정하며는 말도 우리는 주의깊게 봐야 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고통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12:15). 우리는 이렇게 감정을 나누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우리를 한 몸으로 비유하는데, 한 몸이라면 더욱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발이나 손을 다쳤는데 그 부위만 아프고 다른 몸이 멀쩡한 것이 아닙니다. 이가 아파도 밤새 잠을 못자지 않습니까. 한 부분이 아프면 몸 전체가 힘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한 지체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그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며라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됩니다.

이 사랑은 가족으로서 느끼는 끈끈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러 미덕 중 사랑이 가장 핵심적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공감하기도 어렵고 연합하기도 어려우며 동정이나 겸손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없이 형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벧전 1:22). 구원받은 사람은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레 솟아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생겨나는 본능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며라는 말도 참으로 우리가 가져야할 미덕입니다.

이것은 상대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며 나아가 용서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미덕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긍휼(불쌍히 여김)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를 불쌍히 여겨, 새로 더해진 성도가 있을 때 자신의 물건을 팔아서 부족한 성도의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겸손하며라는 말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11:2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겸손은 위대합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으냐고 싸우고 있을 때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부르지만 서로 누가 크냐고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 발을 씻긴 것처럼 너희도 서로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따라야 할 본입니다. (2:6-8). 우리 모두는 이 예수님을 겸손히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가져야 하는 미덕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밖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9절의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되갚는 것이고 해야 할 것은 축복입니다.

되갚는다는 것은 복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되갚아주고 싶어합니다. 복수를 완벽하게 할 때 후련함을 느낍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우리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세상의 원리에 반합니다.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것이 당연하다, 나에게 그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 막사에서 함께 군생활을 하는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 병사가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데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다른 병사가 있었습니다. 욕을 하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하고 있는데 진흙이 묻은 군화를 던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그는 진흙 묻은 군화를 잘 씻어 말려서 다음날 주인 곁에 가져다 두었다고 합니다. 그를 괴롭혔던 병사는 부끄러워했고 그 일로 몇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우리는 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 이유와 목적이 다음 말씀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는 티켓이나 얻고 이 땅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미덕들이 모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부르심에 따르겠다고 동의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손가락질 하더라도 이 길을 걸어가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우리 주님의 본을 따라서 이 길을 함께 걸어가길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가 순종하며 살겠사오니, 우리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당신의 축복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