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베드로후서 1: 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설교: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격려할 수도 있고, 낙담시킬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꾀며 유혹할 수도 있고, 영감을 주며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축복할 능력도 있고 저주할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악담하는 쪽을 선택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한 사람의 영혼에 상처를 주면서 거친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시와 조롱과 무자비한 비판으로 저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저주의 입이 변하면 격려하고 지지하며 사랑을 표현하게 됩니다. 한 선수가 관중의 격려에 힘을 얻고,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의 칭찬을 통해 더 큰 확신을 가지며, 죄인이 영혼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온유함으로 인해 그리스도께로 나아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교제를 통해 힘과 생명을 덧입습니다. 서로의 짐을 지고 도우며, 사랑하고 섬기며 함께 세워 갑니다. 19세기에 영국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교회의 목사였던 찰스 시므온(Charles Sime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 친구들을 연료로 생각한다. 그들을 우리 집의 벽난로에 불러 모아 그들의 불길을 쬘 때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사랑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보석은 비싸다는 것, 귀하다는 것,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금은 천년이 지나도 금입니다. 불 속에 넣어도 물 속에 넣어도 그대로 금입니다. 지금은 달러보유고로 국가 경제를 평가하지만 옛날에는 금보유고로 경제력을 평가했습니다.
보석이 그러하듯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변하고 힘들다고 변하고 잘 산다고 변하고 못산다고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이 보배로운 믿음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을 보면 믿음은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이 선물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고귀한 피를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피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은 피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을 주고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야말로 가장 값진 보배중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보배 관리법입니다. 구리반지를 은행금고에 보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아무데나 벗어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태복음7:6을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돼지는 보석의 가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밟고 뭉개 버린다는 것입니다. 잠언11:22을 보면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제아무리 고급 장신구로 치장하고 최고급 의상을 걸치고 외제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했더라도 자신의 말과 행동을 삼갈 줄 모르는 여자라면 돼지코에 금고리 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돼지와 보석은 인연이 없습니다. 개나 돼지에겐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가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3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의 신기한 능력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신기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성도들에게 주셨다는 점입니다. ‘생명’이란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생명과 경건의 모든 것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신기한 능력으로 주셨는데, 어떻게 주셨겠습니까? 3절 끝부분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앎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게 된 것입니다. 2절에서 사도 베드로의 축복인 ‘예수님을 앎으로 받게 되는 은혜와 평강’이란 구체적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광과 덕’이라는 표현은 당시 헬라 문학에서 사용되는 관용어구로서 위대한 사람의 업적을 높이 기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높이 기리고자 사용한 말입니다. 성도에게 주님을 알도록 하는 것이 ‘그의 신기한 능력’, ‘신적 능력’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앎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은 것 역시 ‘그의 신기한 능력’, ‘신적 능력’입니다. 우리가 지식이 많아서 또는 지적 능력이 높아서 주님을 깊이 아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지식이 부족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져도 ‘주님을 앎’은 주님의 신기한 능력이자 은혜입니다.
초능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했습니다만 6백만 불의 사나이의 초능력― 자동차나 기차보다 빨리 달리고 자동차를 뒤집어엎고, 여자 초능력 소머즈도 비슷한 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술사들도 초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눈속임이거나 사단의 힘을 빌려 행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 들어가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애굽의 마술사들도 똑같은 능력으로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따라하지 못하는 게 더 많었습니다. 그러니까 병을 고친다든지 능력을 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귀신들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로 죽을 나를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하는 일은 예수님만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습니다. 말짱하게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을 죄인을 살리셨습니다.
4절에 이를 더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수많은 약속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을 기록한 책들입니다. 구약은 옛 약속(old Testament)이고 신약은 새 약속(New Testament)입니다. Testament(약속)는 신과 인간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약속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믿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1백프로 믿을 수 있고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들이 현재 누리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 외에도 미래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약속이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 주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곳인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점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신 이유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란 주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성도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욕에 기인한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해야 합니다. 정욕에 해당하는 원어는 욕망, 탐심, 욕심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정욕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 과신과 자기 사랑과 하나님처럼 세상을 통제하려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육체적 욕심입니다. 정욕이 강한 사람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정욕이 강한 사람은 세상의 썩어질 것을 추구합니다. ‘썩어질 것’에 해당하는 원어는 멸망의 뜻이 있습니다. ‘썩어질 것’은 육체의 썩어짐뿐만 아니라 정신적 부패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부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덕목이 무엇이겠습니까? 5절에서 7절이 알려줍니다.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5절에서 7절까지는 한 문장입니다. 주어는 ‘너희’, 동사는 ‘더하라’ 명령형이며, ‘에’와 ‘을’의 형태를 반복한 점층법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예수님의 앎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알게 해 주시는 은혜를 잊지 않으며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죄인이었던 저희를 의롭게 해 주시고, 보배로운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주님을 앎으로 은혜와 평강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셔서 저희가 정욕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세상에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시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서 오늘 하루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의 덕을 세우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면 (욥 8: 5-7, 주일예배 20240225) (1) | 2024.02.25 |
---|---|
온라인예배 20240225 (1) | 2024.02.25 |
온라인예배 20240218 (0) | 2024.02.18 |
의인과 악인 (시편 1: 3-4, 주일예배 20240218) (0) | 2024.02.18 |
베드로전서 강해 26) 너희 모든 이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수요기도회 20240213) (1) | 2024.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