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태복음 27: 45~46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설교: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
구전(口傳)에 의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로마 사람들이 주문하는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 목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에 아버지 요셉을 도와 열심히 목수의 일을 하셨으므로 예수님도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가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가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전문가이셔서 지금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한 십자가를 친히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주인에게 두 마리의 소가 있는데 한 마리는 약하고 힘이 없고 또 한 마리는 강하고 힘이 세다면 어느 소에 무거운 짐을 지울까”
물론 강하고 힘이 센 소에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나의 십자가가 유난히 무겁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질 만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십자가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의미를 우리가 진지하게 깨닫고 알아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 21:9)라고 라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시면서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들의 전부인 겉옷과 로마시대 승전한 장군이 오면 깔아주던 야자수잎들을 오시는 길에 깔아주는 것도 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버림을 당했습니다. 거기에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을 버리셨음을 아셨습니다.
버림 받아 보셨습니까?
서럽고, 외롭고,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철저히 버림당한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치유되는 역사가 있길 원합니다.
46절의 말씀입니다.
46 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칠 때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엘리야를 부르는 줄로 생각했었습니다.
이 절규는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외친 소리인 시편 22:1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외로움의 절규...절망의 탄식 등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버림당한 걸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버림과 배신을 당하기도 하셨탄습니다.
결정적 상황에서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보다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왜 버려야만 했습니까?
예수님의 절규를 들어봐야 합니다. ”엘리 엘리 사박다니“ 이 말씀은 일곱 말씀 중 하나입니다.
가상칠언 중 네 번째 말인데, 기도에 해당됩니다. 3가지 말씀의 기도가 나옵니다.
첫째,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
둘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셋째,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눅23:46)
첫 번째 기도와 세 번째 기도는 ”아버지“라며 예수님은 기도하고 있으나. 두 번째 기도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으로 불렀을까요?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회당에서 유월절날 가르치실 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눅 2:49)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고, 유일한 독생자 아들임을 얘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서도 침묵하셨던 예수님이 ”엘리 엘리“ 즉,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4년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 질문을 한 적이 없고, 항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오직 순종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45절입니다.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낮12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오후3시까지 어두움으로 변하였다 하였습니다. 가장 하루 중 햇빛이 가득차고 환한 날이 갑작스럽게 밤과 같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자연 현상입니다. 혹자는 일식현상이라 하나 태양과 달이 정 반대 위치하는 때이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했고 어두움의 공중 가운데 매달려서 처절한 고통속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고통과 고독 가운데로 빠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백성을 어떻게 구원 하실지를 아셨기에 절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버림당한 어두운 처절함 관계 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더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살면서 버림당한 사람처럼 처절히 느끼게 하시며 고독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도저히 예수님을 고통에 밀어넣으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실 수 없으십니까? 이야기 하나를 우리 함께 나누며 이 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남미의 어느 섬에서 사역했던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거짓된 종교를 신봉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증거하였지만 삼 년이 지나도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원주민 중에 착하다는 한 사람이 선교사를 찾아와서, “당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시오. 여기서 허송세월을 하지 마시오.”라고 충고했습니다.
어떤 과격한 원주민은 선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의 세간을 도적질하는 등 갖은 핍박을 다했습니다.
선교사는 낙담하여 여기서는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떠나기를 바라며 이를 허락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로 이때 “나와 함께 여기 머물러 있으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선교사는 마음에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고난당하는 그곳에 바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낙심하고 있던 자신에게 큰 위로와 평안이 넘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이후, 이 섬은 일곱 개의 교회와 아홉 분의 목사님과 칠백 여명의 성도들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왜 고통 가운데 빠져야 합니까?
우리의 죄악이 심각했기에 떠안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둠속에서 절규 하셨던 순간을 떠올려 봐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한 예수님의 절규, 탄식을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하나님이 절규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함께 마음에 그려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붙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좌우에 강도 두 사람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지나가는 사람이 저주스런 말로 모욕, 바리새인, 서기관들도 같이 희롱했습니다. 갑자기 제 육시(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3시)까지 어두웠습니다.
제 구시 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길,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시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고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이 순간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어둠의 권세가 이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오후 3시에 돌아가시기까지 어두움이 온 땅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단, 마귀들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기 위해 갈보리 언덕으로 총집합했습니다. 그러나 악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셔서 인간의 죄에 대해 물으시긴 했지만 이를 통해 정확하게 물으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헐으셨습니다.
마땅히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할 인간에 대해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께 물으시고 책임지게 만드신 다음, 51절에 보면,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휘장은 튼튼한 곳입니다. 잘 짙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구원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찬송가 작사가 가운데 프랜시스 해버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영국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유학했습니다.
독일 뮌헨 미술관에 가서 렘브란트 그림을 보다가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그림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아래에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나는 널 위해 내 몸을 주었으나 너는 날 위해 무엇을 주느냐’는 글귀입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이 찬송가를 작사합니다.
주님의 남은 고난을 여러분의 육체에 채우십시오. 십자가를 노래하는 사람은 많으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아서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보아서 믿으시겠습니까?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또 그 고난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도 받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압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순종하게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의 사랑 따라 가려고 하오니 우리를 축복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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