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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강해 5)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수요기도회 20240403)

by 온누리선교 2024. 4. 3.



본문: 베드로후서 2:9-12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설교:  거짓선지자들에 대하여  

A.D 100년경에 쓰여진 '디다케'라는 교훈집에는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이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을 요약해 보면 '선지자라고 하면서 사흘 이상 머물려고 하거나, 음식 외에 다른 재물을 요구하고, 방언으로만 말하려 하고, 자기가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거짓 선지자로 간주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각 교회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이런 기준을 삼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 왜 이런 교훈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당시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를 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진실한 목자처럼 그럴듯하게 위장을 하고 나타나지만, 사실은 성도들을 노략질하는 이리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별할 때 말보다 행위를 가지고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열매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고, 인내로 열매를 살펴보아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9~10절의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 앞서 있을 대환난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3:10에 우리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의 경건한 자는 바로 이러한 시험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앞에서 경건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는 호색과 탐심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이 세력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을 괴롭혀 왔으며, 지금 이 시대에는 더욱 그 세력이 확장되고 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오직 개인주의와 육체적인 쾌락과 돈에 대한 탐심이 현대인들의 삶의 영역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부패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어 졌고, 노아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처럼 이제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세상이 아무리 부패했다 할지라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친히 통치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타락하게 그냥 두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 가운데 일부분 악을 허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9절 중반 절에서 10절 상반 절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들을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을 속히 벌하지 않으시고 이처럼 참으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예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교회에도 ‘거짓 선생’들이 몰래 들어와서 거짓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타락시키고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구약시대에 있어서 ‘선지자’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예언하는 ‘하나님의 전권대사’였습니다(신 18:18, 암 3:7). 그래서 선지자는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 받았고, 그 누구보다도 거룩한 삶을 사는 거룩의 대명사였습니다. 결코 타락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에는 참 선지자보다 거짓 선지자들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의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그들에게 회개를 외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눈에 보이는데도 평화를 외쳤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염려할 것 없다고 거짓 예언을 말하며 더 깊은 악에 빠지도록 선동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계시를 받지 못했음에도 마치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외쳤습니다(렘 27:15). 그리고 이스라엘의 불의를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던 참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눅 13:34).
참 선지자들은 그 결과가 어떠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 준 반면에, 거짓선지자들은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로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어 주며 인기를 얻어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당시 지도자들은 거의가 다 거짓 선지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렘 26:5).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구미에 맞는 예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악에 빠진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손이 짧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귀가 둔하여 우리의 간구들 듣지 못하심이 아니라 우리의 악함이,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사 59:1-2).
우리의 손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과 원망이 가득하고, 우리의 입술이 거짓을 말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가장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1-12절의 말씀입니다.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사도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마치 도축하기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처럼 오직 본능적인 탐욕과 노는 것을 낙으로 삼고, 성도들과 친교하는 자리에서조차도 방탕한 짓을 즐기며, 교회에 비도덕과 불명예라는 오점과 흠을 남기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함부로 비방하고 고소를 남발하고 그러다 결국 자신의 탐욕과 불의로 인해 멸망당하게 될 저주의 자식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순(矛盾)이라는 말을 아시죠?
사실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을 때 ‘모순이 있다’라고 합니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에 한 무기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장터에서 무기를 팔면서 창을 보여주며 “이 창은 매우 날카로워서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하며 창을 팔았습니다.
그럴듯한 그의 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창을 고르던 사람이 ‘방패도 좀 보여주시오’하니까, 이번에는 방패를 들고는 “여기 있는 방패는 매우 단단해서 세상의 어떤 창의 공격도 능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창과 방패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와 함께 시장 구경을 나왔던 어린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기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저 창으로 이 방패를 찌르면 어떤 것이 이겨요?”
아이의 질문에 무기 상인은 말문이 막혔고, 주섬주섬 창과 방패를 챙겨 후다닥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창을 의미하는 ‘모(矛)’자와 방패를 의미하는 ‘순(盾)’자가 합해서 사실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을 나타낼 때 ‘모순’ 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술수도 이와 똑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고 ‘모순’ 된 얕은 술수로 미혹하여 사람들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고 자기의 이익을 챙깁니다. 때로는 그들의 말이 좋은 것 같고,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일을 확신을 가지고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조금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적용해 생각해 보면,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우리는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현란한 미혹에 속아 넘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 시대에도 많은 목사님들이 있고, 많은 신학자들이 있고, 또 많은 선교사들이 있고, 또 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 많은 말들 중에 무조건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그 중에는 분명히 ‘거짓 선생들의 모순된 거짓말’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그 거짓말들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헛된 일들에 소중한 삶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과 함께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를 통해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혹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고 생각되시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거짓과 진리를 잘 분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성도로 든든히 서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아버지, 거짓 선생들이 호색과 탐심과 무분별한 거짓 송사와 갖가지 모순된 거짓술수를 무기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속히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임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모두 이러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 깊이 품어 이성 없는 짐승 같은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서 사람들을 건져 살리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