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시편 37: 23~24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설교 :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가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은 아무런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내가 도와달라고 해도 하나님은 나를 도와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복음 전도를 20년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제가 많이 들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없습니까? 그러면 교회가 왜 있을까요?
진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이 거짓일까요? 그러면 왜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매년 기념할까요?
현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 사실을 무시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라고 자랑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였습니다. 그 배는 빙산과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다에 완전히 빠지는데는 2∼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등객실의 손님들과 여성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마지막 구명보트가 배에서 내려올 때였습니다.
그 보트에 타도록 되어있던 여성 한 사람이 선실로 향해서 쏜살같이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원은 깜짝 놀라 못 가게 막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울면서 통사정을 했습니다.
"내 객실에 보석상자를 깜빡하고 그대로 놓고 왔어요! 내가 가서 그것만 가져올 테니까 제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선원은 어쩔 수 없이 5분간의 여유를 주었습니다.
선실로 뛰어가는데 1분, 거기서 보석상자를 찾는데 1분,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1분, 도합 3분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5분이 지났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5분을 더 기다렸습니다. 10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구명보트는 배에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 여인이 돌아오지 못했겠습니까?
자기의 보석상자만 쥐고 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보니까 온갖 패물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것을 줍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안목의 정욕 때문에 배와 함께 바다 속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기쁨을 아시기 바랍니다.
23절의 말씀입니다.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우선 “절대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단 1초 후의 일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끝을 다 아십니다.
나의 1초 후의 일도, 50년 뒤의 일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단 1초 후의 일도 모르는데 많은 계획을 만듭니다.
성경에 “요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적인 니느웨 사람들에게 가라고 합니다.
왜요? 니느웨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이 화가 많이 나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는 싫었습니다.
만약에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니느웨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한테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이들을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느웨의 반대 방향, 다시스를 향해 요나는 도망을 갑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마음을 아시고, 폭풍 가운데 요나를 있게 합니다.
요나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보내 요나를 살리십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고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를 살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큰 물고기를 니느웨 가까운 곳으로 가게 합니다.
요나는 큰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이 한 악한 일로 분노하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놀랍게도 니느웨 사람들이 딱 한번 요나가 이야기 한 것을 듣고 모두 나옵니다.
왕부터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아이까지 전부다 하나님께 나와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니느웨 사람들을 모두 다 용서하시고 살려주셨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으로 잘못된 길을 갔었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간 요나가 무엇을 잘했냐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안보인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메시지를 많이 무시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무시했지만 그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시 마음을 돌려, 하나님 말씀대로 한 것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길을 다 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그 길을 하나님 말씀대로 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실까요? 그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4절에서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세상에 숨쉬고 사는 사람들 중에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 걱정 없고, 아무 고통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고난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오면, 주저앉습니다.
마치 태풍에 오래된 나무가 쓰러지듯이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이 오면 넘어졌다 일어섭니다.
마치 그는 오뚝이와 같습니다. 넘어뜨리면 바로 이러나고, 또 넘어뜨리면 일어납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겠습니까?
24절의 말씀대로, 오뚝이와 같이 일어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고난 때문에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더 두려워해야할 것은 넘어져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고 사랑하는 사람은 넘어져도 반드시 다시 일어납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하루 아침에 전 재산을 잃어 버렸습니다. 10명의 아들 딸도 집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또 욥 자신도 피부병이 걸려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이 와서 욥한테 억울한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너의 죄가 많아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욥에게 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아들딸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 1장 33절 보니까,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절대 주권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라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어느날 하나님께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빛을 만드시고 ‘빛을 보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땅과 하늘을 만드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을 만드셨을 때는 ‘사람을 보니 좋았더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빛과 땅, 하늘은 완성품으로 만들었으나 인간을 만들 때는 완성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완성을 위한 책임을 맡긴 것을 의미한다”는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덧붙이셨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image)를 가진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세상의 생물들과는 아주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이해하고 그에 따를 수 있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존재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또 모든 사람의 관계 안에 계시고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다 하나님께서는 통치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절망적인 영역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실망스럽고 답답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믿음의 눈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 속으로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한 통치는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도 그 나라를 튼튼히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권이 만방에 미치도록 늘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여 우리 모두가 이런 주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대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기쁘게 하는 인생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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