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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1) 성육신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 (수요기도회 20240619)

by 온누리선교 2024. 6. 19.

 

본문: 요한1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설교: 성육신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

 

요한일서는 편지입니다. 편지의 시작에는 의례 들어가는 내용이 누가 이 편지를 쓰는가누구에게 쓰는가’, 그리고 일반적인 인사말입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그런 형식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 인사말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있는데, 하나는 굳이 그렇게 명시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그러한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나 생각하면 그의 다른 편지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어떤 인사말을 넣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하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 전체의 축이 되는 표현은 3절의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핵심적인 말입니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전했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했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사도 요한을 비롯하여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증인들을 가리킵니다. 직접적으로 보고 들었던 증인들 말입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열두 명의 사도들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사도들의 증언’, ‘그 증언의 내용’, ‘그 증언의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은 정당한 증인들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증언이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최소조건이 있어야 했습니다. 먼저, 두 명 이상이 같은 증언을 해야 합니다(19:15). 1-4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만이 아닌 많은 사도 최소한 12명의 사도들이 같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에는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귀로 들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는 지금 마지막 남은 제자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을 만한 증인으로서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이 효력이 있었던 것은, 그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1). 1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멀리 있는 대상에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서 듣고, 보고 또 자세히 보고, 그것을 만지기까지 가까이 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또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서 직접적으로 들었습니다(요한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생략된 많은 말씀을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았습니다. 특별히 눈으로보았다는 것은, 꿈이나 환영이나 비전을 통해 본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 직접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재하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세히 봤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훑어지나가듯이 본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 손으로 만질 만큼 가까이 나가서 그분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손으로 만질 수 있습니까? ‘사랑희망은 분명 존재하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습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손으로 만졌다는 것은 예수님이 물질적인 존재이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식사를 할 정도로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표현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예수님이 실재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증언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증언으로서의 가치와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증언이 가치가 있는 이유는, 알고 있는 확실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2). 그들이 본 것은 영원한 생명이고 증언한 것도 영원한 생명이며 전한 것도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사이에서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들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독자들에게 전해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들의 증언이 사상이나 철학,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중요할까요? 왜 이렇게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그들이 무엇을 증언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시대 유명한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지주의로 불리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머리 속 특별한 지식만 쌓으면 되는 것으로 잘 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달달 외우고,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지식만 있으면 구원 받는 것으로 착각 했던 했습니다. 그들은 머리로 알기만 하면 어떠한 삶을 살던지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영지주의자들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는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믿은 영지주의자들은 영적 가르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게으르고 음란한 생활을 마음껏 탐닉하고 있었습니다. 극기야 점차 세력을 확대해간 영지주의자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교인들을 마구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들은 육신을 더러운 것,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온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영적인 존재였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며 돌아가신 사건을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탄생은 교회의 근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흔들기 위한 명백한 사단의 전략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제자이자 사도인 요한은 교회에 영지주의자들의 거짓 신앙을 경계할 것에 대한 필요를 알리고자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머리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참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가까이 지내며 주님과 함께 교제를 누리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특별히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중 한 사람처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신 분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글의 특징은 예수님을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혹시 요한복음 11절을 암송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태초에 계신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거하신 분임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 11절을 보겠습니다.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1절을 자세히 보겠습니다. 여기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이 생명의 말씀이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1절에 요한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것을 귀로 들었고, 눈으로 보았고, 그 분을 직접 손으로 만져 보았다는 것입니다. 왜 사도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을 감각적으로 경험한 것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적인 것만 거룩하고 육적인 것은 더럽고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온 것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들의 거짓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3절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신이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있는가?” “어떻게 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는가?”하고 질문합니다. 사도 요한 당시 영지주의자들도 동일한 질문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참 되고 거짓 없는 진리임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귀로 들은 바, 눈으로 본 바, 그의 손으로 만져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도 요한은 신앙의 실체가 단순히 영적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참 신앙의 본질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사실과,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에게는 하나님과 참된 교제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이 복음을 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절 말씀을 보니 그는 이러한 진리가 우리 서로의 기쁨을 충만케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허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발명해낸 허구의 인물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실체 시며, 참 진리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허상으로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실체이십니다. 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 삶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주님께 순종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죽기까지 충성하였던 사도들의 믿음을 우리가 갖게하시고, 주님의 진리를 이 세상 사는 동안 끝까지 전하며 담대하게 전파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