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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4)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수요기도회 20240717)

by 온누리선교 2024. 7. 17.

 

본문: 요한12:12-17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설교: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어느 목사님이 신장기능이 약화되어 건강한 사람의 신장을 이식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주일 날 임시로 강단을 맡아 설교를 하게 된 유명한 목사님이 전후사정을 설명한 후 아무래도 교인들 가운데서 신장기증자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고통받는 주님의 종을 위해서 신장을 기증할 뜻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표하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하더니 거기 모인 천여 명이 거의 다 손을 들었습니다. 그날 설교를 맡은 목사님은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이처럼 주의 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러나 신장은 한 사람 것이면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덕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오리털 하나를 꺼내 입으로 분 후, 이 오리털이 머리 위에 내려앉는 사람을 신장기증자로 선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뜻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드디어 오리털이 강단을 떠나 회중석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오리털이 가까이 날아오면 사방에서 주여, 할렐루야, 아멘소리가 입바람에 섞여 나오고 그와 동시에 오리털은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오리털은 누구 머리 위에도 내려앉지 못했답니다.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맙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요한이 핍박 중에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형재를 사랑하며 계명을 지켜야할 것을 보고 우리 모두도 행함이 있는 신앙의 길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12절에서 14절의 말씀입니다.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성도들에 대한 사도 요한의 신앙적 격려입니다. 12절의 자녀들은 서신의 수신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14절에는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서신의 수신자들이 어린 아이였기에 이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애칭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당시 사도 요한은 80대 또는 90대 나이였으니,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가 마치 자녀나 손주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수신자들을 자녀들아’, ‘아이들아라고 호칭한 것입니다. 요한서신에서 사도 요한이 수신자들을 향해 자녀들아라고 호칭한 구절이 9번이나 있을 정도로 성도들에 대한 노사도의 깊은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아비들아청년들아는 문자적 의미가 더 강합니다. 자녀들이 있는 아버지만을, 그리고 미혼 또는 기혼 청년들만을 가리킨다기보다 아비들은 교회에서 비교적 연령층이 높은 성도들을, ‘청년들은 교회에서 비교적 연령층이 낮은 성도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봅니다.

원문을 보면 왜냐하면 ~ 때문이다라는 형식이 6번이나 나옵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에서 밝히는 이 편지를 쓰는 목적, 여섯 중 하나는 왜냐하면 성도들의 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입니다. 이런 형식이 6번 나오는 문장 구조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서신에 쓴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말 것을 격려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서신 기록 당시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라는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영향을 끼칠 때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영지주의처럼 신앙을 흔드는 다양한 세속적인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세속적 가치관에 기인한, 거짓 가르침이나 거짓말이 활개칠수록,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히 다져야 합니다.

 

수신자인 성도들은 아버지를 알았고 태초부터 계신 이이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성도가 성부와 성자를 알았다면 성도는 악의 세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14절에서 청년들에게 전하는 격려 역시 13절에서 청년들에게 전하는 격려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14절의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는 표현은 13절의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와 같은 표현입니다. 사탄을 의미하는 악한 자를 성도가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성도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강하심으로 내가 사탄을 이길 수 있었고,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그 말씀으로 내가 사탄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15절에서 17절의 말씀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계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님을 경험했던 성도가 주님의 능력으로 사탄을 이겼다면, 사탄이 원하는 일을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일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일은 어둠에서 행하는 일이며, 빛 가운데 거하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보면, 사랑할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사람의 육신을 즐겁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를 증거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 교회 목사님이 노인분들을 다 모아놓으시고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오시면서 물론 즐거운 때도 있었겠지만 힘들고 괴로울 때도 많으셨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또 물어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백성인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천국은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고 영화로운 곳임을 믿으십니까?"

모두가 큰 목소리로 "아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대답을 들으시고서 마지막 질문을 또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좋은 천국에 더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 밤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사람은 한 번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모두가 웃기만 할 뿐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천국이 좋은 곳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당장 떠나라고 하면 선뜻 내켜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제 사실만큼 사셨으니까 그만 사시고 천국에 가시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좋게 여기시겠습니까? 아마도 섭섭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는 막연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스스로 죽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혼자서 무섭고 캄캄한 곳으로 가야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스데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동료 유대인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 속에서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고 평안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는 지극히 평안한 모습으로 죽음의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할 이유는 이것들과 세상은 허무하게 끝나기 때문입니다. 간혹 세상을 떠나는 유명 인사들을 보면, 한때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결국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습니까? 사람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정욕과 자랑은 한때 있다가 모두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지나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가치관의 거짓 가르침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한 가치관에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의와 진리를 행하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인격적 경험적으로 아는 성도로서, 그리고 주님과 함께 사탄을 이긴 성도로서 사탄이 원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살아가십시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해 주시고, 태초부터 계신 분을 알도록 해 주시고, 강하신 주님과 주님의 말씀 안에서 악한 자와 흉악한 자를 이기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살아가는 세상과 세상에서 보이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도록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게 하시옵소서. 세상과 정욕은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과 뜻은 영원함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오늘, 정욕과 자랑을 말씀으로 물리침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심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