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1서 3:17-24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설교: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굉장히 가난한 아주머니 한 분이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그녀는 빵과 우유를 샀지만 고기를 몇 근 훔쳤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할 때 그녀는 빵 값과 우유 값만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계산하던 아가씨가 "아줌마, 그 가방 좀 열어 보세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열지 않겠다고 우겼으나 경찰이 왔을 땐 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방에서 고기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당연히 경찰서로 끌려갔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재판관만이 형법을 사용하여 선고를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법을 만든 사람들이며 법을 잘 알뿐만 아니라 그 법의 뒤에 있는 정신까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그 가난한 아주머니를 부드럽게 심문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현재 다섯 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것, 집도 절도 없으며, 몇 달 동안 기름진 음식이라곤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알게 된 재판관은 그 아주머니를 감옥에 보내는 대신 그 가족이 살기 적절한 집을 제공해 주고 연금을 지급 받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재판관에게는 법의 정신이 법조문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 붙잡혀 온 어떤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 하는 형식에 치우친 사람들의 행위를 저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제정자인 동시에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연인의 주위 환경을 아셨으며, 그녀가 지금 회개했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율법 그 자체보다 율법의 정신이 예수님께는 더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17-18절의 말씀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사랑이란 말은 말하기는 쉽지만 그 열매를 맺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확실한 열매의 증거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 생활에 나타내야 비로소 사랑으로서의 가치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16절 말씀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의 증거를 삼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저 말씀만으로 받아 드려서는 아무 의의가 없습니다. 증거를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증거를 요구하시고 증거가 확실한 것만을 열매로 인정하시고 그 열매에 대한 보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18절에서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하므로 하자'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중에는 세 가지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을 만한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믿음은 정해진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계산기 두드려가며 정확하게 바치고, 아침 4시에 정확하게 일어나서 세수하고 기도하고 큐티하고 찬송가를 4절까지 부른 후에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믿음의 계율은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 놓은 것입니다. 선을 행하느냐, 악을 행하느냐는 한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돕지 말아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씩 생각납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절대로 도와주면 안 되는 이유까지 몇 가지 더 생각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전혀 믿을 바가 못 됩니다. 사람 속에는 이기적인 본능이 있어서 머리로는 아무리 동의하는 일이라도 몸이 따라 주질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악을 누르고 선한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따지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완전한 결말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보지 않았다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이미 그 형제의 궁핍함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색한 마음 때문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엔 감동이 옵니다.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육신 안에서 꿈틀대는 정욕이 그런 마음을 막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는 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있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9-22절의 말씀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한은 21절로부터 우리가 이같은 사랑의 행실로 얻을 수 있는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 스스로가 책망이 없는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명은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그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은 먼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순종의 생활인 것입니다. 순종의 생활이 없이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심령으로는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에 담대함이 없게 되고 응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에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인가? 무슨 일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 그런 생활을 자기 생활의 구심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담대한 믿음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 '서로 사랑하라'는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무엇일까요?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살란터 랍비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유월절이 다가오면 유월절 무교병을 굽는 법칙에 따라 무교병을 구워야 합니다. 생수로 반죽해야 하고 이방인들이 보면 부정 타기 때문에 몰래 구워야 합니다. 또 다른 것이 섞이면 안됩니다. 불은 반드시 나무로 피워야 합니다. 살란터 랍비의 임무는 제대로 무교병을 굽는지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그는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감독관을 세워야 했습니다. 감독으로 선정된 제자들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님, 감독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살란터 랍비가 병석에서 말했습니다. “제자들아, 무교병을 굽는 여인들에게 보수가 제대로 지급되는지 감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물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여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습니다. 사랑이 율법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너무나도 당연한 생활의 방편입니다. 이 사랑의 생활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지시고 생활함으로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믿음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옵소서! 당신의 놀라운 계획 안에서 그 기쁨을 누리고 살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라인예배 20240915 (0) | 2024.09.15 |
---|---|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의 장막 (계 21:1-4, 주일예배 2024915) (1) | 2024.09.15 |
솔로몬 왕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왕상 3:27-28, 주일예배 20240908) (2) | 2024.09.08 |
온라인예배 20240908 (0) | 2024.09.08 |
요한일서 강해 10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수요기도회 20240904) (0) | 202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