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출애굽기 10:24-29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설교: 하나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
물리학 이론 중 “카오스 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풍선에 바람을 넣고 풍선을 날리면 풍선이 위로도 가고 옆으로도 가는데, 풍선이 밑으로 내려가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보면, 도대체 세상은 엉망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하지만, 그 혼란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치밀하고도 빈틈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바로 그렇습니다. 출애굽기의 전반부 내용을 보면,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의 재앙을 통해 많은 재앙속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파라오왕의 마음이 아주 고집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앙들속에서 꼼꼼히 치밀하게 해방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성경말씀을 통해 함께 깨닫기를 바랍니다.
24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흑암재앙이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집트의 온 땅에는 흑암이 가득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고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은 곳은 어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곳은 광명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현장은 지금도 흑암과 혼돈과 공허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흑암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들어가면 광명이 비춥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은 어디로 향해져야하는 것입니까?
파라오왕의 관심을 먼저 보겠습니다.
흑암이 있으니까 모세를 불러서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가서 예배 드리라 하면서 소와 양은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재앙과 저주가 임했을 때 ‘하나님을 몰라서 이런 문제가 계속 왔구나!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지금 기껏 생각하는 것이 ‘가라! 대신에 소와 양은 놔두고 가라!’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 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파라오왕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한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소와 양, 바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소와 양이 아닙니다. 자기 가정과 나라에 저주와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붙잡는 것이 소와 양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의 문제가 소와 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인생의 근본문제인데, 먹고 사는데 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먹고 사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바로가 사람이 죽어가면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바라봐야지, 죽어가면서 소, 양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일 모래 죽어가면서도 붙드는 것이 집문서 붙들고 있고 그런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까? 지금 바로에게 이런 문제가 오는데 해결책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붙드는 것이 소와 양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26절을 함께 봅시다!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모세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는 소양은 안 된다고 하는데, 모세는 소양을 다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모세와 바로가 싸우는 것은 소와 양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소양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소와 양을 가지고 여호와를 섬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똑같이 파라오와 모세가 소와 양 때문에 붙잡고 싸우고 있는데, 파라오는 소와 양 자체에 목적이 있고, 모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에 있기 때문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똑같지만 내용이 다르고 본질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을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요. 늘 세상것만 붙잡고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없다하며 사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의 어니스트 색클톤 경이 남극을 탐험하였을 때 자신의 밑에 있었던 사람들을 불가피하게 코끼리 섬에 남겨 두어야만 하는 경우를 당하였습니다.
그는 곧 그들을 영국으로 데려갈 것을 약속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연기되어야만 하였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가려고 할 때는 공교롭게도 바다는 얼어붙어 자기 휘하에 거느린 사람들은 고립되어야만 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그들을 구조하려 하였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하여 빙판에 구멍을 뚫으며 갔습니다. 조그만 배로 섬에 도착하자 그는 자기 휘하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배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은 곧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모든 흥분이 가라앉자 어니스트 경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승선할 수 있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그들의 지도자가 잠을 깨우며 "항상 갈 준비를 해두시오. 오늘 주인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라고 외쳤다고 말하였습니다.
모세는 아홉 번의 재앙에도 파라오왕이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가게 될 것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저같으면 ‘아니~ 아홉 번이나 무시무시한 재앙을 경험하고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 도대체 파라오왕의 고집을 하나님도 못 꺾는 걸까?’라며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목적’을 정확히 알았고, 모세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도 알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확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다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색클톤 경이 코끼리 섬에 들어간 것보다 더욱 확실하다는 사실입니다. 구세주가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약속은 그분의 말씀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축복 받은 희망" - 반드시 이루어질 희망"-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
모세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삶을 하루하루, 일분 일초에 간섭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잘못과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고, 또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 더욱더 날마다 힘을 얻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꼭 기억합시다.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일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축복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전부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세에게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은 것처럼 우리에게 이 은혜와 축복을 주셔서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는 증인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 인생이 말씀 안에 잘 다스려져서 하나님의 소원을 가슴에 품고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 생애가 쓰임 받도록 주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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