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마태복음 6장 20-21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제목: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1,944년에 소련이 루마니아를 무력으로 침공하였습니다. 그들은 루마니아를 단번에 공산화시키고 소련의 위성국가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아직 20세밖에 되지 않은 청년 차우세스쿠를 공산당 지도자로 삼고 키우면서 그를 조종하여 자기들의 마음대로 나라를 끌고 나갔습니다.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의 목사가 공석이 되니까 공산당 당국은 자기들이 조종할 수 있는 가장 얌전하고 순종적인 젊을 토키스목사를 담임목사로 지명하고 교회마저 자기들의 마음대로 하려고 하였습니다. 토키스목사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공산주의 치하에서 시달려 굶주리는 민중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과 함께 울면서 고난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부터 몇 명의 성도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자유를 위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모이더니 수백명으로 불어났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고 루마니아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불어나더니 수천명 아니 수만명이 모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에는 토키스목사가 목회하는 그 교회가 루마니아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고 차우세스쿠 공산당 정부는 토키스목사를 어리숙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 교회를 맡겼는데 이제 국민들의 영웅으로 훌쩍 커버린 토키스목사를 어떻게 처치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당국은 토키스를 체포하려고 군인들을 파견했는데 시민들이 하루 24시간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과 경찰들이 총칼을 들고 그 교회로 쳐 들어 가려고 시도했으나 시민들의 방어벽을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1,989년 12월 15일 수십만명의 시민이 그 교회를 철통같이 지키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하는 찬송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이 나라에 자유와 권리를 주소서”하고 통곡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결국은 차우세스쿠 대통령은 계엄령을 내리고 시위하는 시민들을 향해서 발포 명령을 내리기 까지 해 피 비린내나는 대 혈투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경찰과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누어야 할 대상은 자기들의 부모님들이었고 형제와 자매들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주춤주춤하였고 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고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냥 숨죽여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탱크와 장갑차도 앞으로 밀고 올라가지 못하고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지휘관들은 빨리 발포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기류가 흐르더니 그만 병사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서고 탱크들과 장갑차까지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군인들은 그들의 총부리를 시민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하는 지휘관에게 돌리고 총을 쏘기 시작하였고 밀고 들어 갔습니다. 결국 시민들과 군인들 그리고 탱크와 장갑차까지 차우세스쿠 대통령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차우세스쿠 대통령은 그 어디로 피할 길을 찾아 허둥지둥하다가 서둘러 대통령 전용 헬기에 금궤들과 달라박스를 가득히 싣고 아내와 함께 망명길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많은 달라와 금궤를 가지고 어디로 갈 가 갈 곳도 정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방황하다가 겨우 스위스로 방향을 정하고 기장에게 “스위스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기장이 “각하, 너무 급해서 휴발유도 넣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이것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통령은 사색이 되어 야단을 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쏘아 붙였습니다. 기장이 “각하, 우리나라 어느 변두리 주유소에 갈 수밖에 없겠습니다.”고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헬기의 방향을 틀어 시민들의 분노하는 광장의 중심에 착륙시키고 말았습니다.
광장의 중앙에 수십년 동안 공산 독재자로 국민을 억압하면서 피를 빨던 차우세스쿠와 화학교수인 그의 아내가 엄청난 달라와 금궤를 가지고 분노한 시민들의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로 굶주리던 시민들이 그 악랄한 공산 독재자 부부를 앞에 놓고 허탈감에 사로잡혀 얼마 동안을 울다가 시민 재판에 부쳐 그 자리에서 즉결 심판으로 사형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1,989년 말에 있었던 루마니아의 쟈스민 혁명은 별로 이름이 없었던 토키스목사가 시작한 작은 수의 성도들의 기도 모임으로부터 시작한 기도 운동이 이런 엄청난 시민혁명으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작은 기도 모임이 이렇게 대단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짐작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다음 그를 따르던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폭발적인 체험을 하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제자들과 성도들이 주님의 명령대로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므로 오늘의 세계교회를 이룬 대폭발의 현장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차우세스쿠와 그의 부인을 처단하고 그들이 살고 있던 대통령궁을 찾았습니다. 그 대통령궁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백성들은 가난으로 굶주리고 있는데 대통령은 화려하고 웅장한 “대통령궁”을 지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대통령궁을 본 국민들은 수십년 동안 국민들의 고혈을 짜서 자기들의 배만 불렸고 그들의 풍요로움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대통령궁은 수만 평의 대지 위에 정문에서 본관까지는 1km정도나 떨어져 있었고 방이 무려 1,000여개나 되었고 5층 건물인데 거기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그 옆에는 화학 교수인 그의 아내의 화려한 연구실이 있고 건축비는 무려 10억$ 즉 우리나라 돈으로 1조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또 엘리베이터로 450m를 내려가면 집무실이 또 있는데 그것은 핵전쟁을 대비해서 완벽하게 지어 놓았고 모든 가구와 비품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국민들은 각 가정당 40w 미만의 전구만 사용하도록 하고 대통령궁은 지하로 450M 그 엄청난 공간을 대낮처럼 밝게 전기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는 분노한 국민앞에서 비참하게 처형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보물이 무엇입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 그리고 우리가 사는 주택이 아니겠습니까?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세상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것을
다 땅에 두고 성난 시민들의 즉결 심판으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없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다 헛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성경은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쌓는 것들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고 했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
우리가 보물로 아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쌓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잠자리에 눕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하여 수고하다가 병을 얻고 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의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것을 위해서 피나는 고생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사신 것을 본받아 산다면 그것이 바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생활이 될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는데도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절대로 순종하고 복종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시면서 마지막 전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을 앞두고 이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인류의 모든 죄가 너무 크고 무거워 좀 미루고 싶었던 것도 같것입니다.
마지막 겟셋마네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
게서 옮기시옵소서.”(막14;36)하고 간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절대로 순종만 하시는 분이었는데도 십자가형만은 좀 면하게 해 달라는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고 절대 순종하시고 십자가의 사형장으로 나아 가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본래 세상적인 것을 많이 소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가문이 좋았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인 유대인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는 나라 세계 최강국인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지체 높은 가문의 자녀였고 또한 유대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바리세인이었고 일찍이 유대의 대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유대교의 학자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제사장의 신임장을 가지고 기독교 신자들을 잡아 결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뜻밖에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예수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다 버리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복음을 전하되 유럽을 세바퀴나 돌면서 기독교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였습니다. 그가 유럽을 돌면서 복음을 전할 때는 지금처럼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속철이나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냥 도보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어떤 때는 옥에 갇히기도 하였고 자기가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태장으로 맞고 한번은 돌에 맞았으며 세 번은 파선을 당하여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났으며 수많은 위험을 당하고 여러번 잠도 못자고 주리고 목마르고 어떤 때는 굶고 춥고 헐벗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살았으면서도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빌3;13~14)고 한 것을 보면 죽음을 앞에 두고도 마지막까지 보물을 하늘에 쌓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 즉 그의 생명까지도 다 주님께 드리겠다는 각오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내게 있는 소중한 것 즉 생명까지도 다 하늘에 쌓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늙은 몸으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그의 모든 힘을 다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의 모든 보화를 하늘에 쌓고 산다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인 쉬지 말고 기도할 때 우리의 보화를 하늘에 쌓을 수 있을 것이고 또 항상 기뻐할 수도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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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히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농사를 짖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무슨 특별히 권력이 있는 자리에 오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감사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삼고 아버지의 돌보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욱히 우리는 우리를 돌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오늘도 은혜를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습니다.
차우세스쿠는 국민들의 고혈을 짜서 대통령궁에 수많은 보물을 쌓았으나 그 모든 것을 두고 국민들 앞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으나 우리의 보물은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생활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물질도 삶도 생명도 하늘에 쌓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는 영원하시고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품어주시고 구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주의 말씀주심에 감사하고 또 축복주심에 감사하오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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