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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롬 6: 14-15, 주일예배 20250316)

by 온누리선교 2025. 3. 15.

성경본문: 로마서 6: 14~15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설교: 너희가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예전에 우리교회 성도 중의 한명인 정 라리샤는 갑자기 우즈베키스탄에 계신 그녀의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놀라서 갑자기 집에 가게 된 정 라리샤 성도를 저는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라리샤 성도가 말하길 난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살려고 했고, 또 십일조도 3개월 작정해서 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자리가 안 되어서 2개월만 십일조 하고 그 다음에 못했는데, 혹시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신앙적인 찝찝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주는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믿음이 흔들려서도 마귀에게 져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셨고,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주셨고, 라리샤가 돈을 빚내서 십일조를 내야할 만큼 가난하신 분도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사이비 종교를 믿듯이 남의 돈을 빌려서 십일조를 한다면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의 것, 하나님께 속하여 주인으로 알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일을 만나기도 하고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믿고, 많이 기도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고 문제는 더 복합하여 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냐? 사탄이냐? 누구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내 자신을 믿고 살아왔다면 이전에는 내가 주인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 보좌를 주님께 내 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리가 이 어렵고 험난하고 사단이 꽉 잡아 흔드는 세상에서 어떻게 승리하며 살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삼고 견디고 나가며 사는 법을 알게 하시는 방법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사순절 기간 일 년에 한번씩 40일 동안 지키는 이 기간에 하나님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은혜 안에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도 안 되고 또 그 은혜를 잃어버려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 순간 주시는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시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4~15절입니다.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옛날 종칭교에서는 희한한 사형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서양인은 그것을 보고 코미디와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한 길에 가마솥을 걸고 가마솥 안에 죄수를 넣습니다. 장작은 넣지만 불을 피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죄수를 꺼내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가족들은 그를 위해 장례식을 치르고 그 사람은 죽은 듯이 살아야 합니다.

잔칫집에도 갈 수 없고, 이웃에서 초상이 나도 갈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듯이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아래에서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다시 죄 가운데 살지 않으려면 죄에서 죽은 듯 살아야 합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나는 죽었다라고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의에 대하여는 산 자로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도 본래는 죄와 허물로 죽었었고, 진노의 자녀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아래서 사는 그리스도인이 축복을 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은혜 아래 있지 못하고 법아래 있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가 크다는 여인에게는 " 가져올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오세요."라고 했고, 자질구레한 죄밖에 지은 게 없다는 여인에게는 "치마폭에 작은 돌멩이들을 가득 주워오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한 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큰 죄를 지었다는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왔고, 자질구레한 죄를 지었다는 여인은 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 가득히 주워왔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자리에 갖다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인은 다시 낑낑거리며 바윗돌을 제자리에 갖다놓았습니다.

어디에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잘한 돌들을 잔뜩 가져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소리쳤습니다. "바로 그거요!" "하나님께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한 번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크게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큰 죄를 지은 여인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죄의 법이 우리 믿는 자를 이렇게 만듭니다. 죄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지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지도 않게 만듭니다.

우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로 구원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굳이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를 죄의 법아래서 살게, 그렇게 쭉 살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종입니다.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가짜 주인 행세하는 사탄을 구별하지 못하고 섬긴다면 우리에게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도 주어지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더 알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아주 난폭한 주인을 만나서 날마다 잘못한 일도 없이, 맞고, 구박받고, 힘들게 일시키는 인생을 살다가 아주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이 가장 비싼 값으로 하찮은 나를 사서 위로해주고, 평안하게 해주고, 주인의 것을 잘 관리하는 일을 맡아서 즐겁게 일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떤 기분일까요? 우리는 이제 살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새로운 주인, 나를 높은 값으로 사준 주인께 평생 잘해야 하겠다고 우리는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은혜를 제대로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렸습니다. 그래서, 노예의 특징은 자기 것이 없습니다.

항상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드림이 없습니다. 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보는 노예의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적인 노예로 우리가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우리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는 것을 훈련시킴으로 노예근성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보면, 없는 사람은 한번 생기면 그 애착이 대단합니다.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힘 아래 있는 거지 의식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가 집착의 노예가 되지 말고, 풀어 놓을 줄 아는 자유민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드려도 된다. 우리는 둘째, 셋째 것을 가지고도 넉넉하게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은혜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순종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합니다. 이 순종하며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조급함은 불신앙이며, 순종하지 못함은 무늬만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또한 미숙하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보챕니다. 찡찡 거립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순종의 종으로 살아야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에서 떠나 우리에게 축복하시려는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영원히 사탄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그 위에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 죄의 종에서 순종의 종으로 바꿔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떻게 변화되어 살아야 하는지 오늘 주님 주신 말씀을 통해 결단하시기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시고, 주님의 종이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가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 아래서 주님의 것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자 하오니 순종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주의 뜻을 받들어 살게 하옵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주의 사랑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