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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4)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수요예배 20250604)

by 온누리선교 2025. 6. 10.

성경말씀: 요한계시록 2:1-7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설교: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첫 번째로 나타난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베소라는 뜻은 욕망과 소망이라는 뜻인데 에베소는 아시아의 머리이고,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 지방의 어머니교회였습니다. 이 도시는 가아스텔 항구에 있고, 지금 터키에 속한 도시로서 지중해 연안에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과 교리를 수호하는 면에서는 강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면에서는 약했습니다. 교리는 무엇을 믿느냐하는 종적인 문제이고, 윤리는 어떻게 사느냐하는 횡적인 문제입니다.

에베소는 무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의 가장 큰 항구도시로 동서양 문화의 교류지역이었고, 구라파에서 올 때 아시아의 관문이었습니다. 현대도 그렇지만 고대는 특히 강 유역을 따라서 도시가 번창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입장에서 에베소는 모든 화물유통의 요충지가 되어 고대 세계의 허영의 시장이라고 불려 질만큼 사치와 향락을 위한 물건들이 거래되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가 자치권을 인정해서 자유의 도시로서 민주적인 기능이 활발하게 작동했고 운동경기 시즌에는 이오니아의 전인구가 에베소로 모여 들었기에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화려한 문화가 점령한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는 달의 여신인 다이아나 신전이 있었고 우상 장사와 부적 장사도 있었습니다. 신전 안에는 수천 명의 여사제들과 청소하는 노예들도 수 천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전의 노예가 된 것을 자랑했고, 또 시민들도 그렇게 인정을 했습니다. 추후에 이 신전은 AD 262년에 불탔지만 다이아나를 섬기던 것이 황제 숭배로 발전하게 되어 로마황제 클라리우스와 네로를 위한 하아드라수스와 세베루스 황제의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에베소교회의 형편을 살펴보면 이렇게 음란하고 퇴폐한 죄악의 도시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습니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는 말처럼 죄가 많은 에베소에 복음이 들어간 후 교회가 세워지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앞선 교회가 되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그 이름처럼 처음엔 뜨거운 선교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유대인들이 개종하여 이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AD52)중 잠깐 들렸고, 3차에 다시 들려서 2년간 헌신적으로 사역한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한 교회입니다. 바울의 뒤를 이어서는 아볼로,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사도 요한이 사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에베소 교회에 칭찬과 책망을 주시는 주님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백성으로 살고 주의 일을 감당하시는 사명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사자로 번역한 앙겔로스는 주로 천사를 뜻하지만,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앞으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들을 살피겠지만 그 내용을 보면 사자는 특정인을 가리키기보다 교회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 서두에 발신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입니다. 이분은 예수님입니다. 일곱 별과 일곱 촛대는 120절이 증거하듯이 일곱 교회의 사자와 일곱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피십니다. ‘붙잡고는 원문을 보면 현재 분사형으로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교회를 주관하시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절과 3절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첫째로 행위와 수고와 인내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칭찬받은 이유는 그들이 수고하며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할 때 수고가 따르지 않습니까? 반대 세력이 있더라도, 인내하며 선을 끝까지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악한 자는 율법을 무시하거나 부도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주님의 칭찬입니다. 그러니까 맹목적인 용납은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사람을 권징해야 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출교시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권징을 통해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내용도 둘째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입니다. 사도가 아닌 사람을 사도가 아닌 자임을 조사하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거짓을 드러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잘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교회 내 이단을 포함해서 거짓 유포자 또는 거짓 교사가 있다면, 교회가 그들을 조사하여 밝혀 그들의 거짓을 드러냄으로 교회의 본질을 유지해야 합니다. 넷째는 참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입니다. 첫째 내용처럼 교회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인내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곧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견디며 수고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그만둘 때가 언제입니까? 어떤 상황을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할 때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그 상황을 잘 참고 견디며 게으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으므로 우리도 그 칭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이처럼 놀랍게 칭찬을 들었던 그 열매를 어떻게 했기에 다만 왕년의 신앙으로 흔적만 남기고 지금은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신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까?

4-7절의 말씀입니다.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책망받은 이유는 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지난날 이 같은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 뿌리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처음 사랑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지난날에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여러 가지 열매가 맺혀 있어서 그들에게 소망이 있었고 살아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그 처음 사랑을 버린 후, 이 같은 열매마저 다 사라져 버리고 끝내는 주님의 준엄한 견책을 듣기에 이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고 하는 처음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지닌 의미를 두 가지로 구분하게 됩니다. 하나는 직선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 사랑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옵니다.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난 주님은 그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21:15). 다음에 다른 한 가지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 대하여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이처럼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이 사랑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고 하는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사랑입니까? 이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인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에베소 교회가 주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란 어떤 다른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 주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그 뜨거운 사랑, 자신의 생애를 희생하고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은 그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결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이웃에 대한 사랑까지라도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에서 맺었던 지난날의 그 수많은 아름다운 열매는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주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으로 깨달아 그 사랑이 내 생애를 지배할 때 이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가장 존귀한 사랑, 내 생애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이 내 생활을 지배할 때 신앙의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는데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이런 신앙을 가지고 살아갔을 때 그처럼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어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주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지게 될 때 그리스도를 아는 그 지식 가운데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그의 온 생애를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으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비밀의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보화를 캐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이런 노력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아울러 그 처음 사랑에서 피어난 모든 열매가 사라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허사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떠나자 그들에게서 모든 것이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회개하여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회개치 않는다면 교회의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촛대는 성령의 임재하심을 의미합니다. 만약 그들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지난날의 행위를 되찾지 않으면 성령께서 떠나신다고 하는 엄중한 경종입니다. 성령이 떠나시면 어두운 교회가 됩니다. 이곳에 사탄이 일곱 귀신을 이끌고 들어와 음녀 교회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어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야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에베소교회의 교훈을 통해서 세상의 유혹에 대하여 수고와 인내로 견디어내며 복음을 지킬 때 주께서 칭찬하시는 교회가 됨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나 형식에 너무 치중하다 보면 교회의 본질인 사랑을 잃어버리고 이기적인 종교인이 되어 율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됨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늘 기억하며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오직 사랑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