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요한복음 1:29~34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설교: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3대 선언
저는 간혹 지나가다가 아파트를 보면서, 혹시 실수로 사람이 떨어지면, 가서 받아서 구하면 되지 않을까? 잘만 받으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 99%정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몸무게에 중력이 가해지면, 가속이 붙게 되고, 밑에서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속도로 내려오게 될 뿐 아니라, 받는다 하더라도 그 가속 때문에 마치 차에 치이듯이 받은 사람에게 큰 해를 입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주일쯤 전 대구에서 베란다에서 놀고 있던 4살짜리 어린아이가 엄마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6층높이에서 떨어졌지만, 지나가던 한 50대 남성이 그저 양팔로 아이를 받아내 생명을 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희안한 것은 아이와 이 50대 남성이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별 도구도 별 방법도 없이 다급했던 50대 남성은 몸을 날려 아이를 양 팔로만 받아낸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구급 및 소방관계자들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였지만,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 뭐.. 그런게 이루어질 수 있어? 말이 되어?라는 식으로 상식에 어긋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기적아닌 기적들이 우리 안에 많이 일어납니다. 사영리 전도를 과거에 나가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비된 자들은 사영리의 내용에 깊이 감화되어 영접기도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인 사람들은 우선...첫째, 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제물이 되셨는가에 대해 물음을 가지게 되고, 둘째로, 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의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는가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워진다는 자체또한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내 죄를 남이 다 담당하겠으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서 왜 그리 쉽게 예수 이름만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겠냐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세례요한이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사실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난다고 선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워했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요, 주의 길을 예비한 자, 세례요한은 이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유일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세레요한의 예수님께 대한 3대 선언이라고 부릅니다. 이 3대 선언을 통하여, 믿기지 않지만 우리에게 복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더 깊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29절 함께 읽겠습니다.
첫째,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29)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어린양을 제물로 자주 드렸습니다. 특히 레위기 4장 23절에 보면, 죄사함을 위하여 어린양의 머리에 바친 사람이 그 머리에 손을 얻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나면, 이 양은 대신 죽음을 당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2장 3절 이하에 보면,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의 재앙때 이스라엘 민족들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가축 뿐 아니라 장자의 죽음또한 피한 사실도 있습니다.
즉, 어린양이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지는 것은 사람들의 죄로 인한 재앙을 피하게 해주거나 죄에 대한 결과, 사망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어린양은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겪게 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요, 절망이요, 사망일지 모르지만, 이 어린양의 진짜 파워는 바로 누구에게 속해져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탕수수의 재래적 수확방식을 아십니까? 사탕수수를 수확하기 위해 한 해동안 수고한 농부는 그 넓은 밭에 불을 지른답니다. 그러면, 입과 여러 가지 부수적인 것들은 다 타없어져 버리게 되어, 사탕수수가 줄기와 뿌리만 남는데, 줄기는 새카맣게 변해서 1차 정제를 하면, 갈색설탕이 나오고, 2~3차 여러번 정제를 하게 되면, 흰설탕이 나오게 된답니다. 그렇다면, 그 밭은 완전히 타 사탕 수수가 다시 자랄 수 없을까요? 아닙니다. 뿌리는 생명력이 강해서 그대로 살아있답니다. 그래서 불타서 없어진 잎이랑 불순물들이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어서 이 뿌리에 다시 영양을 공급해서 그 다음해에도 똑같이 사탕수수를 수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알수도 없는 이러한 생명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실패자의 모습으로도 계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그 사명을 순종함으로 감당하셨고, 이것을 승리와 생명으로 바꾸신 분입니다. 마치 시꺼먼 불타없어진 사탕수수밭처럼 세상은 예수가 실패하였다고 말하였지만, 그 속에서 뿌리가 깊숙이 박혀 주위의 모든 양분과 수분을 빨아드려 새생명을 일으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잇는 화목제물로, 막강한 에너지를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어떻게 반응하셔야겠습니까? 세상에 믿을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제되고 또 정제되는 과정을 거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낸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피, 보혈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하늘에서 주시는 천상의 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이”로 선언하였습니다. (31)
세례는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씻느냐? 죄를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죄를 씻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물로 세례를 줄 때 물은 바로 씻음의 상징인 것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 불결한 것을 씻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가 세례를 통하여 깨끗이 씻음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은 단지 상징일 뿐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바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정결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1:7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일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세례는 ‘잠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침례교회에서는 그래서 세례식을 거행할 때 바다나 강, 수영장에서 완전히 세례받는 사람들을 머리까지 잠기도록 물속에 집어넣었다가 나오게 합니다. 그래서 침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물 속에 들어가셨다 나오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례때 머리에 물을 붓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머리까지 물속에 잠기면 어떻게 됩니까? 숨을 쉬지 못하여 죽게 되지요. 그러므로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고 다시 나오는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의 두 번째 의미는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세례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세례의 의미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물로 세례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세례요한은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물세례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세례이나, 성령세례는 완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으로 함께 거듭나는 구원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 안의 옛것은 버려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와 함께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 죄의 모습이 죽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죄가 아무리 우리를 유혹하고 세상 부귀영화와 즐거움과 쾌락이 여러분을 손짓해도 거기에 넘어가거나 반응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욕하고 때리고 헐뜯어도 거기에 분노하거나 혈기를 내어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 옛 사람은 죽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온전히 죽으심으로 다시 사셨듯이 오늘 우리들도 옛 사람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살아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처럼 “내가 죽어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는 것입니다. 나는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되신다는 점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충만함으로 세상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주님의 뜻대로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사십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에 5절에 보면, 요한은 물로 세레를 베풀었으나 성령으로 너희는 세례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난 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이러한 소리가 온집안에 가득하여지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면서 각 사람위에 임하여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충만한 경험을 하면서 각 나라 언어들, 방언들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후에 당당히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 전세계로 흩어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고, 또 승천한 것 까지 다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지상명령을 이루기에는 사실 많은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사망권세를 이기신 것도 알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은혜일뿐 이 소식을 세상밖으로 나가 전할 힘도 의지도 거의 없었습니다. 세상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면, 더 핍박하고 더 그것을 숨기려고 온갖 방법으로 제자들을 괴롭힐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전긍긍하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만 하고 있던 그들에게 이 성령강림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이 예배당에 나와 하나님께 함께 예배드리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선택하시고,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임하신다는 점을 알고 온전히 믿을 때 우리 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장은 더욱 더 두드러지고 넓어집니다. 마치 깨끗한 생수에 홍초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붉은 빛으로 번져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성령 한 방울이 떨어지면, 우리의 모든 심령이 성령으로 가득차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보리차같이 색깔이 있고 불순물이 있는 용액에 아무리 홍초를 떨어뜨려보아도, 그 색이 탁한 것처럼, 우리 안에 불순물이 가득차 있으면, 성령께서 주시는 그 능력이 오염되고 희석되어 제대로 우리에게 능력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온전한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한 생수로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깨끗한 마음 즉, 온전한 순종으로 이룬 마음에서 성령님께서는 100% 역사하십니다. 이런 것을 보고, 성령충만이라고 하며, 이를 보고 세상에서 승리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또 그 안에 세상의 모든 고난 가운데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승리케 하신다는 점을 온전히 믿음으로, 주님께서 우리의 삶과 영혼을 이끌어 가시는데 나타나는 모든 기적과 복을 누리시는 우리 성도님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였습니다. (34)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나옵니다. 그 음성은 바로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1:11) 이었고, 이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나타내는 증거였습니다.
시편 2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 모든 민족과 나라들의 궤계와 공격들로부터 괴롭힘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늘의 왕을 내려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친히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진정한 왕으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은 오셔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며, 철저하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할 뿐 아니라, 세상의 왕들의 압제 하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영적으로 사탄의 지배하에 눌려 살던 인생들을 구원하시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이 되고 소망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믿을 때에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 하나 뿐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고 있음을 우리를 축복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버려지는 아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복지시설들이 좋아서 고아원도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재정적인 후원들이 이어지고 이런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풍족한 아주 좋은 환경에서 돌봄을 받지만 정서적으로는 늘 불안하여 늘 울고 표정이 어둡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든 환경 속에 있지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아니면 조부모의 손에서 키워진 아이들은 물질적 고통은 있으나, 그들에게는 의지할만한 대상, 정서적으로 정을 나눌 만한 대상이 있어서 어떠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힘을 얻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를 죄있다 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고아와 같이 방황하며 세상에 소망이 없다며 생명만 근근히 유지하고 살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자녀로 영적으로 입양하여 주신 것입니다. 신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팔자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세상의 종으로 끌려 다니다, 이제는 천사까지도 우리를 수종드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주인이 되게 하심으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권세와 능력의 주인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으셔서 하루하루를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 안에 이루어가지는 축복들을 경험하시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그 귀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화목제물로 삼으셔서 우리의 죄로 인해 막혔던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성령충만하게 하셔서 우리 안에 늘 존재하는 죄성을 날마다 뽑아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늘 축복하여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 온전한 순종과 믿음으로 나아가오니 시시 때때로 우리와 함께하셔서 이 세상의 고난과 사탄의 공격 가운데에서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승리하는 삶 살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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