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도행전 3:1~10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설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시골 한 작은 마을에 한 어머니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밥을 빨리 해야 되는데 부엌을 비울 수 없으니 빨리 가서 두부 몇 모 하고 콩나물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엄마가 돈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돈은 안 주고 빨리 갔다 오라는 겁니다. 어린 마음에 돈도 없이 어떻게 사오나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돈을 달라고 했더니, 그냥 가서 엄마 이름만 대라는 겁니다. 이상했지만, 그 아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엄마 이름을 댔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두부와 콩나물을 한 아름 안겨 주셨습니다. 그런 심부름을 한 아들은 너무 신기했습니다. 돈을 안 내도 이름만 대면 아저씨가 무엇이든 척척 주시니 어린 마음에 신기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후 그 아들은 아주 편리해졌습니다. 심부름 갈 때도 돈 없이 갈 수 있었고, 군것질을 할 때도 엄마 허락만 받고 엄마 이름만 대면 ‘만사 오케이’였습니다.
이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고, 그 주인을 대표합니다. 그 주인의 인격, 지위, 권세, 능력 등을 반영하고 대표합니다. 그 주인이 대단하면 그 이름도 대단합니다. 그 주인이 하찮으면 그 이름도 하찮은 겁니다. 주인의 능력이 그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겁니다. 옛날 한국에 조선시대라고 있었습니다. 이 조선시대에 암행어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암행어사는 임금님이 직접 임명하는 관리인데, 한국 땅 곳곳을 다니면서 몰래 어떤 관리가 잘못하는지, 어떤 관리가 임금님의 명령을 어기고 백성들을 괴롭히는지 알아내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러한 관리가 나타나면, ‘마패’라는 것을 보이며, 나타납니다.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면, 누구나 벌벌 떱니다. 왜냐하면, 암행어사는 임금님의 이름을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임금님께서 암행어사를 통해, 자신을 벌하시기 때문에 무서운 겁니다. 이 만큼 이름이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단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엄마이름을 가진 아들과 같이, 사용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왕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암행어사와 같이 능력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귀한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믿고 산다해도 세상사람들과 같이 손해를 많이 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보다 풍성한 신앙생활, 승리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앉은뱅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의 능력을 어떻게 우리의 인생에 나타나도록 할지를 아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세 사람이 이 앉은뱅이에게 도움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전미문까지 그 앉은뱅이를 메고 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겨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가족들이거나 친척들일 것입니다. 이 당시 앉은뱅이 같은 장애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죽거나, 가족들이 하나님의 저주로 생각해서, 집에서 잘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당시 장애인들은 직접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앉은뱅이는 주위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 사람들이 모이는 기도 시간에 구걸이라도 하며 살 수 있도록 성전문 앞에 두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 이 앉은뱅이는 당시 입장으로 봤을 때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성전미문에서 그 앉은뱅이에게 불쌍하다 생각하며 도와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성전 앞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돈 달라고 구걸할 때, 도와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돈을 던져주었습니다. 사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앉은뱅이를 그냥 못본척 지나치지 아니하고 이 앉은뱅이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이 앉은뱅이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떻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주겠습니다.”라고 말하더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외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더니,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평생 걷지 못할 사람이 두 발에 힘을 얻어 일어났을 뿐 아니라 걷게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 누가 가장 앉은뱅이에게 좋은 사람입니까? 당연히 앉은뱅이를 고쳐준 베드로와 요한일 것입니다. 물론 성전까지 이 앉은뱅이를 데려다 준 사람들이나, 또 성전에서 구걸할 때 측은한 마음으로 돈을 던져준 사람들도 착하고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짜로 앉은뱅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인생을 바꾸어준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던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이 앉은뱅이를 치료하시고 병낫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함께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앉은뱅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돈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자신은 날 때부터 생긴 병이 있으므로 고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남들과 똑같이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살기 위해, 목숨부지하기 위해 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앉은뱅이는 더 이상 앉은뱅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을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어서게 해주었고, 또 걷고 뛰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7절의 말씀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그렇습니다. 바로, 육신의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커다란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오면, 겁을 집어 먹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에이 내가 뭘 할 수 있어! 환경이 이런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잘 될수 있는 일도 안되고, 안되고 있는 일이 더 안될 수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보이는 것에 약합니다. 또 어찌나 각자들이 똑똑한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해서도 상상하며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흔들리고, 아무 것도 잘 못하는데다, 늘 나쁜 생각만하는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가장 필요합니다. 나사렛에서 우리와 같이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진짜로 살아계시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하신 일들을 척척해내신 능력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바로 생각부터 달라지고, 생각이 좋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커다랗던 문제가 작아져보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볍게 그 문제들을 해결되는 것을 보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멋지게 살아가게 될까요?
8절의 말씀입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뛰어서서 걷습니다!“ 자신감이 생기면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앉은뱅이었던 사람이 육신에 힘을 얻게 되니, 뛰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심지어 걷게 되었습니다. 남에게 늘 들것에 실려 성문 앞에 놓이고, 또 남들에게 손을 뻗어 그 사람이 와서 돈을 주고 가라고 했던 이 사람이 자신의 맘대로 서고, 자신의 맘대로 걷고, 자신의 의지대로 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감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인생의 목적이 생기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와도 엄청난 고난이 와도, 이런 내공, 힘이 있으니, 견디고 당당히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자세도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것이 가능합니까? 우리도 사람인데, 믿음이 있어도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얼마전에 제가 TV에서 “쿵푸팬더 2”를 본적이 있습니다. 팬더 포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적을 만났습니다. 이 적은 팬더 중의 한 명이 자신을 죽일거라는 점쟁이의 이야기를 듣고 죄없는 팬더 마을을 공격해서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때 이 팬더 포는 어머니를 잃고 거위주방장에게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팬더 포는 방황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쿵푸를 배웠지만, 이러한 일 때문에 분노하게 되고 점점 감정에 치우쳐 적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승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 inner peace! 내면의 평화”...모든 것을 다 잊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힘듭니다. 여기저기 폭탄이 이 팬더 포를 향해 날아옵니다. 그러나 팬더 포가 “마음의 평화, inner peace!"를 찾으니, 날아오던 폭탄을 손으로 쑥쑥쑥~훅훅훅 하더니 상대방, 적에게 도로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적들은 당황하고, 무서워하더니, 결국은 다 팬더 포에 의해 전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평화, inner peace"는 어디에서 올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옵니다!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는 그 능력을 믿으면, 우리를 향해오는 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엄청난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8~10절의 말씀입니다.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이 앉은뱅이의 인생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평생 구걸이나 하다가 남의 도움에 의지하며 남의 눈치만 보며 사는 삶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는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죽은 자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이 치유받고 힘을 얻어 이제는 남들이 막아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살 맛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위의 사람들도 놀라게 하는 삶입니다. 돈도 명예도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 앉은뱅이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남들이 뭐라해도 하나님을 온 성으로 뛰어다니며 온 몸과 정성을 바쳐 찬송하며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사는 인생은 얼마나 복된 인생입니까?
생각해봅시다. 이 앉은뱅이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힘들고 슬프게 지낼 때,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행하게 사는 앉은뱅이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능력을 보이시고, 치유의 손길을 펼쳐서 인생을 구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이렇게 앉은뱅이와 같이 무조건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다들 제 스스로 이 자리에 와있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축복을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 바로 베드로와 요한처럼 가장 귀한 것! “예수 그리스도”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능력은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간증거리를 주셔야 하기 때문에 많은 축복을, 놀라운 기적을 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러 교회에 나옵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 이 앉은뱅이와 같은 큰 변화는 없고, 자잘하고 작은 도움만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나아가 기도할 때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믿음을 보이고,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구할 때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루하루 살면서 나타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정말로 귀하고 귀하신 우리의 주님! “은과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내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오늘 이 순간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저희들도 새생명 얻게 하시고, 또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서 이 귀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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