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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사도행전 강해 67) 갈라서는 바울과 바나바 (수요에배 20150826)

by 온누리선교 2015. 8. 26.

성경본문: 사도행전 15: 36~41

36.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설교: 갈라서는 바울과 바나바

 

성경에는 좋은 일들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껄끄러운 일들, 충격적인 일들, 아주 불편한 일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부터 멋진 호흡을 자랑하던 바울과 바나바가 아주 심하게 싸웠고, 싸운 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서로 헤어져 버렸습니다. 선교적으로 보면 아주 큰 손해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이 주를 믿겠다고 오면, 바나바가 섬김과 양육으로 주의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목회를 하였습니다. 아주 멋진 선교팀이었던 바울과 바나바.. 이들이 헤어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지금까지도 ‘바나바가 옳았다, 바울이 옳았다!’ 팽팽하게 맞섭니다. 그러나 어찌했든 간에, 그동안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도 아닌데, 이런 것을 성경에 쓰도록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1차 선교여행에서 큰 성공을 이루고 또 예루살렘 교회의 지지를 받고 이제 더 안정적으로 선교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순간, 찾아온 엄청난 분열! 이 가운데 감추어진 하나님의 의도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이 시간 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시는 그 뜻을 아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6절입니다.

36.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사도행전 전체에서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면 전후 관계가 명확해 집니다.

바울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선교를 떠납니다.

지금은 1차 선교 여행이 끝났을 때의 시점으로 복음의 중심이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이방 땅으로 옮겨지는 태동기였습니다.

그 중심은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최초로 선교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는데 그 두 인물이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1차 선교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시점에서 지난 주 설교에서 언급했듯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내려온 무리들과 복음에 대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수습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원활히 이루어지고, 안디옥 교회는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신학적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핍박기-부흥기-분열기’의 과정을 거치고 이제 복음이 이방 땅에서 널리 퍼져 부흥이 이를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기에 바나바가 바울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쉴 만큼 쉬었으니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는 게 어떻겠는가?"

바울 또한 이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찬성합니다. 바나바는 1차 선교 시에 열심 하나로 복음을 과감히 전하고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닌 성급함을 지적하면서, 2차 선교 시에는 뿌린 복음을 점검하고 양육을 집중적으로 하자고 합니다. 이 또한 바울이 그러자고 합니다.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때, 갑자기 한 문제 때문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37~39절입니다.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나바는 바울에게 지난 선교에서 중도하차한 마가도 데려가자고 합니다.

바울은 완고히 반대하고, 바나바 또한 이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저 서로 ‘아니다, 그렇다’라고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다툽니다.

 

도대체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바울은 ‘마가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밤빌리아에 선교일행이 이르렀는데, 요한이라는 사람이 바나바와 바울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요한이 바로 마가입니다. (행 13:13)

밤빌리아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태백산맥 줄기'에 해당합니다.

바울, 바나바, 그리고 마가 이렇게 세 명이 1차 선교 여행을 떠났다가 거대한 산맥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여기서 마가는 그 거대한 산맥에 겁을 먹거나, 혹은 불평을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럼, 예루살렘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로 올 정도로 훌륭했던 청년 마가가 선교여행을 갑자기 그만 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학자들은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가가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험난하고 위험한 선교여행을 견디지 못했다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때 마가의 다락방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때 대략 120명 정도가 모였다고 나옵니다. 분명, 120명 정도 들어갈 정도의 집은 그저 평범한 집이 아니라 큰 저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작은 다락방이 아닙니다. 저도 성지순례 때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곳을 가봤는데, 마치 아주 크지는 않지만, 옛날 궁정의 댄스파티를 할 것같이 넓고 중간중간 기둥이 받치고 있는 커다란 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의 집안은 부자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바나바를 학자들은 마가의 삼촌이나 좀 먼 친척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도 재산이 있어,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밭이 있어, 그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헌금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구브로, 지금은 키프로스 또는 사이프러스라고 불리는 섬에서 레위족인 유대인이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부유한 가정으로 살았던 마가의 가문은 축복받은 가문이었으나, 험난한 선교여행에 있어서 마가는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마가가 바울에 대한 반감으로 뛰쳐나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있어서 은인이고, 믿음의 선배고, 든든한 지지자였습니다. 사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이 이렇게 선교여행을 하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마가의 눈에도 당연히 바나바가 바울의 무대포식의 전도에 뒤처리해주고 지지해 주는 일이 참으로 황당해 보였을 것입니다. 마가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먹고 자는 것, 전도해서 던져놓은 영혼을 거두어 양육시키는 것, 온갖 궂은일은 다 삼촌 바나바가 하는데 어쩌면 바울은 저리도 교만할까?’

그래서 마가는 밤빌리아 산맥 앞에서 돌아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이유 중 그 어떤 것이 진짜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마가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마가가 제 2차 선교여행을 이번에는 같이 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심지어, 마가라고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38절에 보면,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선교여행에 있어서 마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교일, ‘일하러 갈 만한 자’가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가 중요했습니다. 마가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함께 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자,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은 누구처럼 결정하겠습니까? 바울이겠습니까? 바나바겠습니까?

그 어느 답도 맞지 않습니다. 그 어느 답도 맞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중심일 수도 일 중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이시고 당신의 계획대로 이루어가시는데 우리 사람들만 서로 이런 일로 다투게 됩니다. 39~40절입니다.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심하게 다툰 후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에 떠나고 바울은 실라라는 동행자를 택해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납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선교로 출발하기 전부터 이렇게 싸우다니 이번 선교는 실패하고 말거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선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다와 함께 왔던 실라를 택하여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떠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시아로 떠나려는 바울을 마게도냐 지금의 유럽으로 선교의 방향을 돌리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렇게 갈등을 겪고 갈라지게 상처만 남도록 놔두셨을까요?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4장 11절을 보면, 디모데에게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하면서 왜 데리고 와냐하는 이유를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합니다. 바울에게 내쳐진 자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마가가 이렇게 바울에게 소중한 자가 되었을까요? 골로새서 4장 10절에 보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라고 나옵니다. 바울과 감옥에 함께 갇힐 정도로 동고동락, 함께 선교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입니다. 이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았지만, 바울을 선교활동으로 이끌었던 바나바의 성격상,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자신의 조카 마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희생하였을 것입니다. 마가에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나라, 참는 것, 등등 선교사로서의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누구보다 완벽하고 의지되는 선교동역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떠한 이유로, 헤어지게 되고 멀어지게 되고 갈라지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합력하여 모두가 선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떠난다하여, 힘든다 하여, 포기하는 순간에도 원망 불평이 자리 잡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고, 나의 모자람과 무너짐에도 주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고, 결코 인생의 굴곡이 거칠게 다가오더라도, 하나님의 전적인 이끄심에 감사하시면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인생의 길을 열어주시고, 새롭게 이끌어 주심을 믿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한 영혼을 두고 사람과 일을 가지고 다툴 때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셔서 주님의 더 크신 일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의 주권에 늘 의지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오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