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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93) 준비되어 있는 자가 쓰임받다 (수요예배 20160316)

by 온누리선교 2016. 3. 16.


성경본문: 사도행전 21: 37~40

37.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39.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40.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설교: 준비되어 있는 자가 쓰임받다

진짜 실력있는 사람은 자질구레하게 말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렵고 꼭 필요할 때 나서서 말하고 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가득 차 있고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때가 오면 빛을 발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딱 이렇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억울합니다. 무섭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보통 어떻게든 상황을 벗어나 보려고 허둥지둥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당황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이 묻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복음 전할 기회를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준비되고 조용히 차분하게 서두르지 아니하고 때를 기다리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에 나에게 꼭 필요한 때에 나를 들어쓰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돌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이런 자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늘 준비되어 있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7~38절입니다.

37.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38.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잡혀 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 로마 군대가 출동해서 바울을 구출합니다. 로마군대를 지휘하는 천부장은 바울을 결박해서 얼른 영내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은 헬라 말을 썼습니다. 이 무렵에 유대인들은 히브리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말이라는 것은 정확하게는 아람 말을 말합니다.

천부장은 ‘아, 유대인들이 쓰는 아람 말을 쓰지 않고 헬라어를 쓰는 것을 보니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닌가 보구나’ 생각하고서 38절의 질문을 합니다.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이집트이 아니냐?”

요세푸스라는 역사가가 이 때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주후 54년, 바울이 체포당하기 3,4년 전에 벨릭스라는 총독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 한 거짓 예언자가 반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는 이 이집트인은 3만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다가 로마 군대에 의해 전멸 당했는데 요세푸스는 이 때 전사자가 400명, 포로가 200명 발생했고 이집트인은 도망쳐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 때 동원된 유대인이 3만 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는 사천 명이라고 나옵니다.

여하튼 이 일이 실제로 있었고 바울이 로마 반역세력일 수도 있다고 천부장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이 사람이 바로 그 때의 그 애굽인인가 보다. 이 사람이 성전에 나타나 유대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 들어갔다 잡혔고 유대인들이 ’그 때 너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느냐?‘ 흥분해서 폭행을 하나보다’ 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무력으로 로마에 대항하려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드다라는 사람도 그랬고, 갈릴리의 유다라는 사람도 그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로 열심당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했습니다.

당시 로마식민지 안에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자칫 정치선동꾼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목회자들도 이렇게 오해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제 인천노회 목회와 신학연구회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기장신학연구소와 총회영성연구원에서 강사분이 오셔서 기장의 신앙과 영성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강사 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게 기억이 납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영성을 위해 기도, 명상, 성경읽기와 연구 등에 시간을 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기장 안에서 ”~운동본부, ~혁신회“등의 이름을 붙인 기관들을 봅니다. 우리는 사회집단도 아니고 사회복지기관도 아닙니다. 복음에 깊이 빠지고 이를 위한 실천으로 우리가 사회활동을 해야 기독교정신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회자가 자칫 성경에 근거한 구제와 세상의 빛으로의 역할을 한다면서 정치가, 사회운동가로서 여겨지거나 그 곳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강사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칼빈이 초청받아 한 곳에 가서 강연 후에 질문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어떻게 봐야 하냐는 질문에, ‘성령의 은사는 신유, 방언 등 몇 가지가 안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굉장히 많습니다. 은사는 마치 식후에 먹는 디저트와 같습니다. 본식사와 같은 말씀, 기도 등 복음신앙 훈련이 된 후에 은사가 덧입혀져야지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은사만 계속 먹다가는 건강을 잃고 자칫 병이 나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령의 은사의 축복을 잘 못 사용하여서, 목회자가 무당이나 기치료사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의 제자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군지,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순간순간 말씀에 비추어 봐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도 하나님 믿는 자와 우리와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할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하지도 않은 자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 당당히 이렇게 밝힙니다. 39절입니다.

39.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바울은 먼저 “나는 유대인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나는 그 애굽인이 아니오.’ 하는 뜻이 있고 ‘나는 성전에 들어갈 권리가 있는 사람이오.’ 하는 뜻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는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오.’하고 자기의 고향을 밝혔습니다.

여기 ‘소읍이 아닌’ 이 말은 ‘나는 촌놈이 아니오’ 이런 뜻입니다.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 다소는 큰 도시였고 특별히 문화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출신’이라고 하면 ‘문화인’ ‘교양 있는 사람’ 이렇게 알려졌습니다. 바울은 자기 출신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천부장에게 ‘이 사람은 함부로 말할 사람이 아니로구나. 말하게 해도 좋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허투루 날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죽을 위기에 있어서도 차분하게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전후를 정리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바립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왔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바울을 해하려 합니다. 돌에 맞아 흥분한 군중들에게 이유없이 죽을 위기였습니다. 그러자 로마의 천부장이 사도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너는 누구냐?”라는 천부장의 질문에 그저 유대인이며 로마시민이라는 것을 밝히고 살아남으려한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천부장에게 얘기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은 생각지 않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으려하였습니다. 40절입니다.

40.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천부장이 끌려가기 전에 성난 군중들 앞에서 이야기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매맞아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사도 바울이 군중들을 향하여 섭니다. 그리고 말없이 층대위에서서 성난 백성들에게 손짓을 합니다. 놀랍게도 성난 군중들은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히브리말로 바울은 말하기 시작하니 군중들이 듣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대로 끌려가면 복음 전할 기회가 없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음 부분에 나오지만, 바울은 자신도 본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였는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실과 이방인의 복음을 위해 쓰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이것이 정말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알아봐 줄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에 의해 제지당했습니다. 자신을 제지하는 그 사람들과 싸울 수도 있었지만 바디메오는 더욱 심히 소리질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고 치유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도를 해도 응답하지 않은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내 눈의 장애물과 다른 사람의 장애물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나에게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그에게 있었던 것은 목소리였습니다.

기회는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해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중국 명언에 “준비되어 있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기도와 말씀, 찬양으로 준비되어 있는 주님의 제자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 유혹 시험이 몰려올지라도 늘 영적으로 준비된 자가 되어서 천국백성으로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게 하옵소서~!

내 뜻 내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하시면 순종하면서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성령 충만히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