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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 (주일예배 20160417)

by 온누리선교 2016. 4. 17.







성경말씀: 누가복음 18:9·14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설교: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

 

할렐루야!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이끄시고 주님 앞에 나와 함께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가장 쉬운 세상적인 방법은 비교하는 것입니다.

나는 남보다 날씬하고 나는 남보다 아는 게 많고 나는 남보다 젊고~등등 말입니다.

그러면, 가장 쉽게 남에 대하여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방법은 “저 사람은 나보다 무엇이 낫고, 저 사람은 나보다 무엇이 없고~”라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비교를 하거나 비교를 당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적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 하나님이 가장 높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려주십니다. 바로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자주 이런 신앙적인 비교를 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베드로에게도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특별히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살리실 때에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고, 산상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시는 모습도 직접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열심히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모두가 다 예수님을 버릴 것을 예언하시자 베드로는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은근히 자신과 다른 제자들을 비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했던 베드로는 어쩌면 자신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예수님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비교를 늘 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요한은 요한복음 21장 20절 이하에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만나주신 예수님을 만났고,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같이 예수님을 따랐고, 또 야고보와 함께 주님께서 아껴주셨던 요한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그 와중에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이 사람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의 반응은 아주 냉정했습니다. "요한이 어찌 되든 간에 그것이 너 베드로와 무슨 상관이냐며 그런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딱 잘라 말씀하십니다. (요 21:22)

 

우리도 신앙 생활하다가 이런 마음을 가지신 적은 없는지요. 내 신앙은 참으로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신앙, 내 환경, 내 교회생활 모두가 그 누구를 끌어들여 비교한 적은 없으십니까? 그래서 가끔 "난 저 사람보다는 나아~"라며 안도한 적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닌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그래왔다면,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과 싸우는 신앙이야말로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롭고 영혼을 살리시는 말씀을 나누시면서 성령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1~12절의 말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세인의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만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바리세인들이 교만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1절에 보면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바리세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기도 모습이 나옵니다. 서서 기도할 수도 있고, 앉아서 기도하기도 하고 무릎을 꿇기도 하고 엎드려서 하기도 하는 등 많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도하지 않고 따로 기도하고 남들 다 보이게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기도하는 것 같고 아주 경건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형편없이 깎아내리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받지 않으십니다.

거기에다가 더 황당한 것은 기도내용입니다.

도덕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지킨 아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말합니다. 남에게 거짓을 행하지 않고, 일부러 더 이익 내려고 불법을 행하지도 않고, 바람나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거짓말하고 불법행하고, 바람피우는데 나는 하지 않았으니, 하나님 칭찬해주시고, 축복해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아주 열심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이 사람은 또한 소득의 십일조를 철저히 했던 사람입니다. 집에서 나는 극히 사소한 작물에 대한 십일조까지 엄격히 계산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런 바리새인의 태도는 세상적으로 봐도 정말 존경할만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들이 잘 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십일조가 아니라 남들보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더 경건하고 더 열심히 섬기고 있음을 알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모르실리 없고, 이런 바리세인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39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신 말씀이 딱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세인과 정반대인 세리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13절입니다.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는 바리새인처럼 성전 뜰 중앙에 가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없는 한 모퉁이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도대체 세리라는 직업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당당히 바리세인처럼 기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리는 당시에 민족의 반역자로 불렸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세금을 걷어 들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은 로마를 위해서 세금을 거두어들인 것도 모자라 세금을 받는 방법이 포악하고 잔인하기까지 할 정도로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서 유대인들에게서 받아야 할 세금을 빼앗다 시피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인데도 불구하고 세리는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는 복을 받지 못할 사람, 저주를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에 있는 세리장 삭개오 집에 들어가셨을 때, 유대인들이 수군거리며 말하기를 " 저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욕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저주받을 죄인인 세리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먹고 세리장인 삭개오와 대화할 수 있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리는 바리새인처럼 얼굴을 들고 하늘을 향해 자랑스럽게 기도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죄스러움 때문에 감히 눈을 들어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세리의 기도 자세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자신이 어떻게 감히 설 수 있겠는가하는 부끄러움과 회개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세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명을 어기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였습니다. '가슴을 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크게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이켜 보면 볼수록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몹쓸 죄인 이였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세리의 기도내용을 보면 세리는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초라한 존재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과 더불어 중한 죄들을 물같이 쏟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의 이웃들을 속여서 옳지 못한 이익을 가졌습니다. 100원짜리인데 1000원이라고 속여서 900원을 더 얻은 것을 말합니다. 그 뿐입니까?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나라를 빼앗은 로마를 위해 더 일하는 아주 매국노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아무런 자격이나 공로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세리는 자신의 죄와 부끄러움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바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로지 세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기를 빌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 여기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14절입니다.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무디 목사님이 스코틀랜드를 여행하시면서 그 곳에서 전도집회를 했습니다. 그 집회에 한 소녀가 참석했습니다. 이 소녀는 영혼의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구원을 받을 자격이 될까?"라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명성도 없고, 돈도 없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아서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일어나서 두 선을 번쩍 들고 나오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하나님 받아주세요!"

이 때 달려 나오는 소녀를 끌어안으면서 무디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이 딸을 이대로 받아주세요"라고 기도해주었습니다. 그 날 이 소녀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으시고 죄용서 하셨다는 해방감에 주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성가대의 해밀턴이라는 사람이 글을 썼고, 이 글을 받아 생키라는 분이 곡을 붙여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의 원제목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는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단지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길은 우리가 사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다 생각하는 리스트에 잘 맞추어 살아서 아주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제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데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의 인생이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그리하면 바뀌어져야 합니다.

키가 작고 사람들이 무시해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로 올라갔던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 들이자 어떻게 변했습니까? 완전히 변했습니다.

누가복음 19: 8에 삭개오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변해야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우리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처럼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의 소유된 것을 기억하면서 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아무 공로도 없고, 아무 자격이 없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외에는 구원이 없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에 감사하여 성전에서 가슴을 치며 기도한 세리와 같이 우리도 늘 겸손히 주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그리고 말로만 주님을 섬긴다 하지 않게 하시고 행동으로 주님의 일을 기쁨으로 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