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도행전 23: 25~35
25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설교: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나이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일들은 다 영적인 것입니다. 퓰러신학교 총장이며 기독교 철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는 "리처드 마우"가 쓴 "왜곡된 진리"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성경의 입장에서 보면 이 우주에서 벌어지는 실질적 전투는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다. 양자는 유일하게 절대적인 적대자들이다. 이것은 전투를 우주적인 견지(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너무 성급하게' 인간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만 보아서는 안된다"
저는 그래서 모든 인간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잘 안풀리고 쓸데없는 고집으로 사이가 안좋을 때마다 그 안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쫒습니다. 중보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한 가정을 놓고 기도합니다. 오랫동안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대화가 잘 통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번 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을 놓고 기도할 때, 남편이 아내 말을 잘 듣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다 포기하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편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그 가정을 축복하시고, 그 둘 사이에서 이 축복을 가로막고 상황을 오해하게 만들게 하고 또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악한 사단이 절대 손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장난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공중권세 잡은 사단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들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세상 살면서 신앙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고 신앙이 깊어질려고 하면 커다란 걸림돌이 그 믿음의 길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 죽음을 이기신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결국은 하나님의 편에 선자가 진정한 구원을 얻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억울하게 죽게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지극히 세상적인 천부장을 통하여 구하시고 사명을 감당해야할 로마로 가게 하십니다. 이 과정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주님주신 말씀에서 더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리 가운데 계신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순종하고 헌신할 때, 사단의 영에서 구하시고 보호하시는지 보면서 결국 영적인 싸움을 싸워 이겨나갈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28~29절의 말씀입니다.
28.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천부장은 서둘러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전후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편지를 같이 보냅니다. 그 내용은 천부장이 소요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이 대체 무슨 일로 바울을 고발하는지 알고자 공회에 바울을 세웠고, 결국 알고 보니, 유대인들의 율법에 관한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29절을 보면 천부장은 바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나이다"
여기 천부장이 보기에 유대인들과 바울 사이의 갈등은 한낱 율법에 관한 것이며, 하등 죽일 이유도 투옥시킬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를 빌라도도 똑같이 말하였습니다. 대제사장과 무리들에 의해 잡혀온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lT18:38)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될 것이 없는" 이 일이 어찌하여 유대인들과 바울 사이에는 죽이거나 결박해야하는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또 바울이 복음전파를 중단하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게 하는지 그리고 이에 더 난리를 치는 유대인들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바울을 죽이려 하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을 잘 압니다. 명분과 신념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실로 잘 산다고 믿는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리차드 마우교수가 말하길, 사단은 “~주의”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이기적으로 만들어서 악한 일을 하는데 명분을 만들어 주어 양심에 찔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지식도 많고 자신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잘못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잘못 섬기고 있느냐? 자신들이 섬기듯이 안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유대주의로 이어져온 율법 중심의 신앙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게 해주셨는데 이것을 모르는 유대인들이 답답하고 또 이방인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복음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기존에 믿어오던 교회의 교리는 다 율법과 같은 것이며, 타락한 현재의 교회들은 다 헛된 것합니다. 아마도 마지막에는 재림예수로 오신 우리 교주를 믿어야 한다고 하겠지요. 지금 3주째 신천지 교인이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 와서 매번 쓰는 글 내용입니다. 악령에 씌인 이단교인에게 논쟁을 벌여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자신들이 받는 핍박은 마치 바울이 당했던 핍박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논리나 성경내용에 대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울처럼 영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까요?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인정하기 앞서서 우리는 영적으로 이러한 세상적 논리와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잘 무장되어 있는지 늘 살펴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어떻게 잘 살펴야 합니까?
영국의 유명한 장군인 고든 장군이 수단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고든 장군은 한 장교에게 철옹성같은 요새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명령을 받은 장교는 몇일동안의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고든 장군에게 요새를 함락시켰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고든 장군은 "그럼 이제 다른 요새를 공격하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쉴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다른 요새를 공격하라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든 장군은 적이 존재하고 있는 한 자기 편 군사들이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속이 되었으며 주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능력 가운데 주님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공급함이 끊어지지 않는 한, 최후 승리할 때까지 결코 영적인 싸움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 후서 10장에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4-5).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떠한 방해도, 어떠한 강한 세력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생각을 바로 잡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감정을 휘몰아치는 것을 잔잔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목숨의 위협가운데 있는 바울을 어떻게 하셨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33~35절입니다.
33.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유대 서북쪽에 있는 가이사랴는 바람이 많이 부는 항구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로마문화가 장악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식민지였고, 로마 총독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당 수의 로마군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유대이기는 한데 가이사랴 만큼은 로마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마치 서래마을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한국이기는 한데 완전히 프랑스풍인 거리와 프랑스 학교가 있어서 불란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처럼 가이사랴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제는 유대를 떠나 로마로 들어섰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통해 몇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성령님의 계시의 정확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에 감동한 아가보가 띠를 가져다가 바울의 손발을 묶고 유대인들이 이 띠 임자를 예루살렘에서 매어 이방인의 손에 넘겨준다고 했는데 과연 그 계시대로 바울은 결박되었고, 로마의 총독에게 호송되었습니다. 한치도 그름이없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밤에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바울은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주께서 로마 군인을 동원하여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군인들에게 호송되어 가지만 이것만큼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하게 가는 방법은 없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470명의 군인들의 호위까지 받으면서 가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보고 참으로 대단하다고 무릎을 치며 감동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전부 다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아도, 그 모든 상황을 넘어서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싸움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 더 치열하게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최고로 복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늘 잊지 말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헤로우신 주님~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주님께 의지하오며 악한 영에게 굴복하지 않고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눈에 보이는 일들이 다 악한 영으로 우리를 괴롭이는 사단의 장난임을 알면서도 쓰러지려는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하여주시고 늘 말씀으로 늘 기도로 살아가도록 성령이여 붙들어 주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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