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사도행전 3: 6~16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설교 :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얼마전에 제가 TV에서 “쿵푸팬더 2”를 본적이 있습니다. 팬더 포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적을 만났습니다. 이 적은 팬더 중의 한 명이 자신을 죽일거라는 점쟁이의 이야기를 듣고 죄없는 팬더 마을을 공격해서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때 이 팬더 포는 어머니를 잃고 거위주방장에게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팬더 포는 방황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쿵푸를 배웠지만, 이러한 일 때문에 분노하게 되고 점점 감정에 치우쳐 적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스승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inner peace! 내면의 평화”...모든 것을 다 잊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힘듭니다. 여기저기 폭탄이 이 팬더 포를 향해 날아옵니다. 그러나 팬더 포가 “마음의 평화, inner peace!"를 찾으니, 날아오던 폭탄을 손으로 쑥쑥쑥~훅훅훅 하더니 상대방, 적에게 도로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본 적들은 당황하고, 무서워하더니, 결국은 다 팬더 포에 의해 전멸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평화, inner peace"는 어디에서 올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서 옵니다!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는 그 능력을 믿으면, 우리를 향해오는 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엄청난 문제들이 반드시 다 다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앉은뱅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베드로와 요한 주위에 몰립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기적은 기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난 믿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6~8절의 말씀입니다.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이 앉은뱅이를 보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주겠습니다.”라고 하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외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더니,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평생 걷지 못할 사람이 두 발에 힘을 얻어 일어났을 뿐 아니라 걷게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 “누가 가장 앉은뱅이에게 좋은 사람입니까?”
당연히 앉은뱅이를 고쳐준 베드로와 요한일 것입니다. 물론 성전까지 이 앉은뱅이를 데려다 준 사람들이나, 또 성전에서 구걸할 때 측은한 마음으로 돈을 던져준 사람들도 착하고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짜로 앉은뱅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인생을 바꾸어준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던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이 앉은뱅이를 치료하시고 병 낫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여기서 함께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앉은뱅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돈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자신은 날 때부터 생긴 병이 있으므로 고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장애가 있기 때문에 남들과 똑같이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살기 위해, 목숨부지하기 위해 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앉은뱅이는 더 이상 앉은뱅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을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어서게 해주었고, 또 걷고 뛰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전해야합니다. 돈보다 도움보다 최고의 축복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음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7절의 말씀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그렇습니다. 바로, 육신의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커다란 문제가 우리 앞에 다가오면, 겁을 집어 먹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에이 내가 뭘 할 수 있어! 환경이 이런데 어떻게 나아질 수 있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잘 될 수 있는 일도 안 되고, 안 되고 있는 일이 더 안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보이는 것에 약합니다. 또 어찌나 각자들이 똑똑한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해서도 상상하며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흔들리고, 아무 것도 잘 못하는데다, 늘 나쁜 생각만하는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존재가 가장 필요합니다. 나사렛에서 우리와 같이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진짜로 살아계시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하신 일들을 척척해내신 능력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바로 생각부터 달라지고, 생각이 좋고 긍정적인 사람들은 커다랗던 문제가 작아져 보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볍게 그 문제들을 해결되는 것을 보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멋지게 살아가게 될까요?
8절의 말씀입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뛰어 서서 걷습니다!“ 자신감이 생기면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일하게 됩니다.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육신에 힘을 얻게 되니, 뛰기도 하고 서기도 하며 심지어 걷게 되었습니다. 남에게 늘 들것에 실려 성문 앞에 놓이고, 또 남들에게 손을 뻗어 그 사람이 와서 돈을 주고 가라고 했던 이 사람이 자신의 맘대로 서고, 자신의 맘대로 걷고, 자신의 의지대로 뛰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감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인생의 목적이 생기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와도 엄청난 고난이 와도, 이런 내공, 힘이 있으니, 견디고 당당히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자세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9~10절의 말씀입니다.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이 앉은뱅이의 인생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평생 구걸이나 하다가 남의 도움에 의지하며 남의 눈치만 보며 사는 인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죽은 자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이 치유 받고 힘을 얻어 이제는 남들이 막아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살맛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위의 사람들도 놀라게 하는 삶입니다. 돈도 명예도 줄 수 없는 참된 기쁨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 앉은뱅이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남들이 뭐라해도 하나님을 온 성으로 뛰어다니며 온 몸과 정성을 바쳐 찬송하며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온 성을 돌아다니면서 전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11~12절의 말씀입니다.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기적을 수차례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를 물리친 사건의 목격자였고, 홍해가 갈라져 그 샛길로 통과한 기적의 체험자였으며,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은 은혜의 수혜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고난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배반했다는 점입니다.
흔히 기적을 보면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매일 기적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가는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물결을 바라보고 공포를 느꼈습니다. 3년간이나 기적을 보고 들은 가룟 유다 역시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기적은 도처에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하나님의 기적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의 눈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기적의 하나님만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말씀하시는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바라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으면, “바로 하나님 없다, 하나님 섭섭하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다”라며 바로 등을 돌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16절의 말씀입니다.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지금 보십시오. 베드로는 어떻게 앉은뱅이가 낫게 되고, 일어서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첫째,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12-13절). 둘째, 너희가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이 그분을 살리셨다(14-15절). 셋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이 치유의 역사를 일으켰다(16절).”
1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바로 믿음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는 주의 종들의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갖가지 신비한 기사와 이적이 따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적이나 신비한 능력들을 쫒아가지 말고, 오직 예수 안에서 평안을 가지면서 하루하루 꾸준히 믿음을 다져 가시기를 바랍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우리들의 신앙이 반드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나 기적만 쫒고 세상을 쫒는 자들은 갈대와 같이 세상의 바람에 휘둘려서 그 뿌리마저 뽑혀서 다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을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정말로 귀하고 귀하신 우리의 주님! “은과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내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오늘 이 순간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저희들도 새생명 얻게 하시고, 또 주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서 이 귀한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 또 이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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