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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106) 내가 만난 주님 (수요예배 20160622)

by 온누리선교 2016. 6. 22.


    성경본문: 사도행전 26: 8~18

 

8.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설교: 내가 만난 주님

 

국민일보에 실린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 씨의 공연에 대한 신문기사의 내용입니다.

2000116일 오후 1030, 서울 세종문화회관은 감동의 물결로 흘러 넘쳤습니다. SBS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오후 730분부터 시작된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이 끝나자 청중은 열렬하게 ?앙코르!?를 외치며 공연에 화답했다는 것입니다. 앙코르는 2곡 정도인 것이 관례지만 계속되는 청중의 성화에 못 이겨 4곡을 부른 조수미씨는 그래도 청중이 자리를 뜨지 않자 다시 무대에 올라 스텝에게 마이크를 요청했습니다그리고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지난날의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오늘 이처럼 뜨거운 환호를 받고, 지금까지 외국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늘에 계신 분, 하나님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평소에 불러보고 싶었던 노래를 이 자리에서 한번 부르겠습니다.?

조수미가 부르는 노래는 찬송가 405장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었다연주를 맡은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곡이라 조수미 씨는 반주 없이 노래를 불렀습니다소프라노 중에서도 최고음 소프라노(콜로라투라)인 그녀가 무반주로 부르는 찬송은 더없이 감미롭고 깊은 감동으로 순식간에 청중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마이크에 두 손을 포갠 채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세계적 소프라노가 아닌 ?기도하는 소녀?였다고 합니다

이 죄 많고 부족한 사람을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로 만들어 주신 인자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 끝나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꽉 메운 3900여명의 관객은 일제히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무대 앞쪽 주한 외교사절들은 물론 교복 차림의 청소년과 노년층 관객까지 모두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이날 밤은 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경건함이 공연장을 휘감아오는 가운데 청중은 깊은 감동에 사로잡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박수를 보냈다고 신문기자는 감격스럽게 그 날의 상황을 기사화했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자신이 만난 주님을 이렇게 자신이 가장 잘하는 노래로 간증했습니다. 모두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조수미를 통해 알았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할 기회를 얻었지만, 자신이 살려고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도 주님을 증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주님에 대해 어떻게 하든 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만난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구하시고, 우리에게 은혜주시며, 지금도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지 말씀을 통해 생각하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능력있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9~12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자신의 과거의 일에 대하여 바울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를 거부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했습니다.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죽일 때에 가편 투표를 하였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형벌하고 고문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외국에까지 가서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아 지금의 시리아 다마스쿠스인 다메섹에게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대제사장들의 앞잡이였으며 성도들의 저승사자였고 교회에 대해 악명높은 학살자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뜻대로 자기 방법대로 열심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보다는 자신이 아는데로 자신의 신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교인, 신자, 그리고 성도가 바로 그 셋입니다.

교인들은 일요일 아침에만 얼굴을 교회에 반짝 비추고는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 막 전도되어 교회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하지만, 수년간 습관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개중에는 있습니다.

신자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여러 모임에 행여 빠질세라 열심을 냅니다. 믿음 생활의 비밀도 어느 정도 아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무엇인가를 믿지만 그것이 믿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본인은 극구 부정하나 이들은 자기 자신이나 세상에 속한 것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남을 판단하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자기를 내세웁니다.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교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성도는 덕을 세우고자 애씁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갑니다. 절제하는 법을 알고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습니다. 진심으로 형제를 높이고, 격려하며, 위로하고, 도와줍니다. 선한 일을 도모하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자 힘쓰며,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겁습니다. 즉 한마디로 예수님의 인생이 자신의 목표가 되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성도이기를 원합니다. 다들 교인이었던 시절, 신자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혹시 마음 속에는 교인, 신자 였던 시절이 인간적으로는 너무 편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바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결코 성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 변화가 되었다고 말합니까? 13~15절의 말씀입니다.

13.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정오에 해보다 더 밝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다가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모습은 책망이었고 경고였으며 심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해보다 더 밝은 빛으로 오셔서 사울에게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지금 가시채를 밟고 있다고 말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그가 당할 심판을 더욱 더욱 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생스럽게 스스로 자원하여 자기가 받을 형벌을 더욱 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더욱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그 말씀을 해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지만 그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주님 이셨던 예수님이 직접 나아오셔서 그들을 대신해서 바울에게 엄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님은 바울에게 너를 용서한다고 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자비로운 모습으로 네 죄를 다 사하노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네가 지금 나를 핍박하고 있다!”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이 말은 바울은 진리도 알지 못하고 잘 못된 길에서 엄청난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다메섹에서 나타나신 주님은 심판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심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알려주지 않고 그저 덮고 감싸기만 한다면 진리를 드러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아이들이 버릇이 없거나 마마보이나 마마걸이면, 말하길 부모가 잘 못키웠다. 부모가 문제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정확히 따져보면 그 아이들 성향도 있을 텐데도 부모가 문제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잘잘못을 알려주지 않아서 성격형성이나 사회적응에 있어서 부모의 큰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저 감싸주기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진정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심판자로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의 사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고 또 사명을 받습니다. 16~18절입니다.

16.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부르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기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 받고 거룩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기서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죽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바울은 큰 충격을 받고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죄많은 바울에게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을래 아니면 살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였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돌이켜 오히려 종과 증인을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세운 사환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그 부르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사명은 바로 이방인의 사도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보는 태양빛은 너무 밝아서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습니다. 눈이 부셔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햇빛 보다 더 밝은 빛이 있습니다. 햇빛의 세기가 아무리 밝아도 어둠을 전부 없애지는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죄악까지 물리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그늘지게 하는 악한 영들은 몰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경험한 주님의 빛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축복가운데 있게 합니다. 이 은혜를 우리는 증거해야합니다. 내가 만난 주님을 알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이러한 은혜가 가득차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잘못된 믿음에 빠져있지 않은지 뒤돌아 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만난 주님을 세상에 전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순종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하루하루 그 사랑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