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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114)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수요예배 20160817)

by 온누리선교 2016. 8. 17.


성경본문: 사도행전27:38~44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설교: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창조신앙, 부활신앙, 재림신앙입니다.

창조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도 만드시고 우리도 만드셨기에 우리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우리도 세상에서 고통 당하고 죽지만 예수 이름으로 결국 살아나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은 ‘다시 오마’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 믿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에 이끌리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세상은 어둡지만 빛을 보고 소금을 맛봅니다. 우리와 같이 하나님 섬기고 살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보고 바보라고 합니다.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살고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때문에 배에 탄 죄수들까지도 목숨을 건지는 것을 봅니다. 목숨을 건지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그저 죽으면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알게 됩니다. 그 어떤 유명한 소설가도 그 어떤 똑똑한 사람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시나리오입니다. 상상도 못할 이야기 전개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에 지치거나 힘들어서 다 놓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의 편에서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모든 것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아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8~39절입니다.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배부르게 먹은 다음에는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배 안에 있던 밀들을 다 버립니다. 버린 것들 중에는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귀중한 사업물품들도 있으며 이태리까지 가지고갈 물건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하루라도 더 연장해 줄 수 있는 밀까지 모두 던져야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제 희망도 보이고 방법론도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모든 결정들은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배가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바다위에 고정했던 닻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닻의 무게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이제부터 그 배는 오직 바다에 맡기고 오직 부는 바람에 돛을 조정하여 항구로 들어가야 합니다. 매우 모험적인 결정이었습니다. 결국 배는 바다 밑 암초를 치면서 앞부분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완전히 상상치도 못한 일입니다. 서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떡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조선이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서 물길이 열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더 심해져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닻줄을 끊어버렸습니다. 그저 바다에 모든 것을 맡기고 육지로 밀려가든, 더 바다 한 가운데로 가든 맡겨야 했습니다. 결국 배는 바다 밑 암초를 쳐서 완전히 부셔져 버렸습니다. 완전히 망한 것입니다. 살 방법이 없습니다. 바닥을 친 것입니다.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실까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잔인합니다.

아이들이 잘 가지고 노는 통통 볼이라고 있습니다. 워낙 잘 통통 거리고 고무재질로 만들어서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공이 가장 높이 올라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닥에 세게 내리 꽂아버리면 가장 높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냥 던지면 속도도 안 나고 높이 뜨지도 않습니다. 바닥에 강하게 내리 꽂혀 버려야 상상 못할 만큼 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회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려야 더 나은 길을 가게 되기도 합니다. 버리지 않으면 수영해서 뭍으로 못나갑니다. 버리지 않으면 죄수들도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온전히 상황을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바닥으로 내려가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예전에 바닥을 칠 만한 일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엄청난 일로 두 손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어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다면 우리의 영혼은 절대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를 바닥으로 내리쳐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합니다. 그 바닥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을 진짜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어서 보겠습니다. 42~43절입니다.

42.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배가 난파되자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 것을 염려하여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 군법에 의하면 죄수를 지키던 군사가 그 죄수를 잘 지키지 못하여 도망가게 할 경우 그 죄수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아야 했게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배는 파선했고 육지는 멀지 않았기 때문에 죄수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갈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39-41).

이런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 백부장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 군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은 먼저 뛰어내려 육지로 올라가며 나머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매달려 육지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43, 44).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상륙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약속하신 대로 당신의 섭리 가운데 그들을 모두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구원하려고 하였을까요?”

단순히 말하자면, 바울의 로마행은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세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세계였기 때문에 로마가 중심이고, 끝이 스페인이었습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계의 중심인 로마를 먼저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은 바울이 스스로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로마행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곳에 갈 때까지 하나님이 책임을 지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뜻이 계신데 그것을 이루기까지는 우리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그가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 풍랑 속에서도 바울을 죽이시지 않은 이유는 아직 바울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은 잘 먹고, 스트레스 안받는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이란 이 땅에서의 사명이 끝나면 결국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건강하고 오래 사는 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을 죽이시지 않은 이유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것은 바로 바울과 연결된 수많은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셨습니다. 죄수이든, 선주이든, 로마군인이든 말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잃은 드라크마 비유나 잃은 양 비유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보시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이란 사도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배에 타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도 비록 그들이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는 소중한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구원함으로 함께 동승한 선원들과 군인들과 죄수들까지 구원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권능을 알지 못했다면 참으로 이상할 것입니다. ms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심지어 썩는 냄새까지 났지만 그를 살리심으로 주님은 생명이요 부활이심을 보여주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이 풍랑 속에서 구원받은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로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다 믿게 되었을 것은 확실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바울의 믿음으로, 또 바울의 사명 때문에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하나님의 구원도 경험하였습니다. 다 바울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때문에 우리 주위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이 다 복을 받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주님의 구원을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누구보다 먼저 부르시고 우리를 축복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따라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명자로서 축복받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주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명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하신 것 잊지 않고 늘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