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골로새서 1: 9~12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설교: 성도의 기업을 얻으려면
사람들 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소원이 간절해지면 이 소원에 따라 사람이 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소원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뜻에 맞으면 옳은 것이고, 선한 것이면 다 이루어주십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소원이 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에게 소원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고, 하나님 안에 있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원을 우리도 이 시간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기업, 그 축복, 그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9절의 말씀입니다.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어떤 집사님께서 공장을 하시는데 비싼 기계를 일본에서 수입해서 썼답니다. 하루는 공장 기계가 고장이 났는데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기술자들과 아무리 들여다 봐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건은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일본에 전화하여 기술자를 불렀습니다. 왕복 비행기 표에 호텔비에, 출장비에 엄청난 돈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기술자가 도착하여 뭘 두드리고 만지니까 단 5분만에 기계가 다시 돌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 영적 세계에서도 제대로 아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본문에,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만이 알 수 있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란 다름이 아닌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영적지식입니다. 세상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실 때 비로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예수께서 약속하시기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매 주일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듣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은혜 근처에 있을 뿐 제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좋은 기계는 있지만, 기계 설명서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을 뿐 제대로 작동을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에서 제대로 놀고 싶으면 물에 뛰어 들어 수영을 배워야 합니다. 물에 뛰어들지 않고 수영하는 자세만 열심히 뭍에서 연습한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전인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이 시간에도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는 생각은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있어도 제대로 성령 받을 자세가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지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려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혜와 총명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우리가 기쁘고 평안하고 복 받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다음에 우리는 어떠한 것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10~11절입니다.
10.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한 소년이 바다를 정복할 꿈을 그리면서 성장했습니다. 그 소년은 일평생 뱃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 했습니다.어느 날 그 소년은 큰 선박회사에 취직해서 먼 나라로 항해를 떠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는 배에 자신의 짐을 모두 실은 후, 어머니께 작별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향해 “너를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괴롭다”라고 말했다. 평소에 효심이 지극했던 그 소년은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슬픔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다를 정복하기 위한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복을 받는다”며 성경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너도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머니는 그날부터 효자 아들을 위해 매일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린 그 소년은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입니다.
아들의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아들을 위해 기도한 어머니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면 아버지하나님의 마음은 기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 딸들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잘 자라는 것입니다. 건강히 자라는 것입니다. 또 올바르게 자라는 것입니다. 결코 아파하거나 벌받거나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파서 제대로 스스로 걷지도 못하고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자지 못할 때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스스로 먹지 못해서 부모가 떠 먹여 주어야 하고 그래서 골골해서 누워 있다면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은 견딜 수 없게 아프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라는 말은 건강하게 하나님 믿는 우리들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 열매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때마다 믿음으로 받아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때마다 우리가 순종해서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누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의 소원은 오직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이 소원을 이루어야 할까요?
12절입니다.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련 속에서도 감사하면서 살 수 있는 힘이 나오게 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전쟁 포로였던 사람들의 건강검진을 담당했던 의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보니 전쟁 포로들은 모두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적절한 병명이 없어서 고민하던 이 의사는 그 병의 이름을 "가시철망병"이라고 붙였습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수감되어 있던 수용소의 가시 철망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어도 삶의 의욕을 잃고 자리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달랐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수용소 생활을 했지만 아주 활기차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의사는 매우 궁금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남들이 다 걸린 가시 철망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의사의 질문에 그가 대답하기를, "수용소에 있을 동안 제가 바라본 것은 가지 철망이 아니라 가시 철망 저편의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그 자유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저는 언젠가 자유롭게 되는 그 날 나에게 전개될 새로운 미래,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가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닥쳐도 오래 참을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견디게 하고 참게 하신다구요? 아니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들은 어려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실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사단들이 이 세상을 잡고 있습니다. 고통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안하게는 살 수 있습니다. 고통을 견디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예수 보혈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마 점집이나 어떤 다른 종교에 가면 고통없이, 걱정없이,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의 상황에서도 견디고 오래 참음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참아야 할 일이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견디어야 하는 일이 없게 하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능력입니다. 진짜 파워이며 진짜 실력인 것입니다. 파도는 넘어야 하고 산은 올라야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도록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성도의 기업이 무엇입니까? 기업은 땅입니다. 남의 땅이 아니라 내 땅입니다. 내 땅에서는 자유와 평안함과 안식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을 것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기쁨으로 살게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며 하나님이 가지신 것을 다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가 살면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이나 사람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생긴다면,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능력으로 우리는 견딜 수 있고 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기업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기업을 얻으려면 기쁨으로 견디고 기쁨으로 참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주신 말씀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기업을 받아 이 땅에서 평안하게 주님축복 가운데 살아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오늘 주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성령이여 오셔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우리가 주 하나님을 늘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또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받기를 원하오니, 우리를 가르치시고 주의 길로 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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