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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주일예배 20170312)

by 온누리선교 2017. 3. 11.

성경본문: 누가복음 17: 1~6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설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구약에 보면 바사라고 알려진 대제국, 페르시아가 나옵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유럽을 정복하기 위해 일전을 벌이기 직전 일입니다. 다리우스 황제가 유럽의 맹주인 알렉산더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사신을 통해 선물을 보냈습니다. 알렉산더가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니 참깨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궁리를 하는 중에 한 신하가 그 뜻을 풀어줍니다. “폐하! 다리우스의 군대가 깨와 같이 많으니 까불지 말고 항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은 작은 봉투에다 겨자씨 한 톨을 넣어 다리우스 왕에게 보내게 됩니다. 다리우스 역시 그 겨자씨 한 톨을 보고 신하들에게 무슨 뜻인지 묻습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이렇게 해석합니다. “폐하, 알렉산더의 군대가 작아도 무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후에 전쟁이 일어났고 결과는 겨자씨 한 톨을 보낸 알렉산더의 승리가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라고 말합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17:6) 오늘 이 말씀을 받들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안에 가득 넘치기를 바랍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정말 겸손한 사람은 대개 자신이 겸손하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랑하는 마음을 깨뜨리시고,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겸손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 믿음 없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 저 사람은 이렇게 잘 못되었네, 저렇게 잘못되었네~’라고 판단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함부로 사람에게 비판합니다. 꾸짖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사랑으로 덮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을 하다가 그 사람의 믿음을 약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연자맷돌이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무섭게 경고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함부로 판단하고 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지식으로 인해 꽤 자만해 있었답니다.

한번은 뱃나루에서 사공에게

"그대는 철학을 아느뇨? 철학을 알아야 사람이지."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사공은 얼마간 배를 저어 가다가 배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크라테스를 보고

"그대는 수영을 할 줄 알아? 수영을 할 줄 알아야 사람이지."라고 사공은 말했습니다.

그 일에 크게 깨달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를 남겼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 모른다 하고 살던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알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아닌 죄로 인해 영원히 지옥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죄없다고 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 버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몇 번이나 십자가에 못박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라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깊어질수록 우리 자신에게 더 철저해하야 합니다. 교만해지려하면 나 자신을 더 쳐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만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은혜를 입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내가 입은 은혜를 떠올리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거듭 용서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 말씀을 알아듣고 예수님께 말합니다. 5~6절입니다.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5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그 내용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도들의 거룩한 요구에 예수님께서 6절에 대답하십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믿음을 더하여 달라는 사도들의 요구에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가 바다에 심기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합니다. 나무가 뽑혀서 바다에 심겨진다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는 절망입니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어도 뽕나무가 바다에 심기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내 믿음은 무엇인가!’라고 하는 절망감과 좌절감입니다.

두 번째는 반대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해도 이런 놀라운 일이 있는데 내게 믿음이라는 것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여겨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하는 도구요 방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 믿음은 만병통치가 되며 믿음은 만사형통을 만드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에 대한 오해는 본문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사도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합니다. 여기서 더하여 주소서라는 말은 증가하게 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increase’ ‘add’ 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믿음에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들이 믿음을 양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믿음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더 많아지게 하여 주소서라는 요구에 예수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이 의미는 믿음은 양이나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며 믿음에 대한 너희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진정성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참 믿음이냐 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크기로 그 능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참이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 겨자씨를 가지고 예수님은 설명하셨을까요?

겨자씨는 작지만 견고하고 작지만 생명력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주님이 겨자씨는 작지만 반응하는 씨앗임을 말씀합니다. 겨자씨를 땅에 심어보세요. 땅 속에서 꿈틀거리며 싹이 나옵니다. 살아있기에 반응하는 겁니다. 성장하는 겁니다. 여기에 겨자씨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씨앗은 달라요. 반응하지 않습니다. 죽어있는 화초나 나무에 물을 줘 보세요. 살아나질 않습니다. 죽어 있는 것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에는 하나님의 응답도 없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헤쳐나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가 들리고 아무리 하나님의 생생한 음성이 들려도 믿음이 죽어있으면 반응이 없습니다. 조금만 반응을 보여도 구원을 얻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체험할 수 있는데 죽은 나무처럼 전혀 반응이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있는 겨자씨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믿음이 되길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신단 말을 듣자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가슴이 뛰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요동쳤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믿음이었어요. 주님의 옷을 와락 붙잡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로부터 능력이 나타나 그녀의 혈루의 근원이 말라버렸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에 예수님이 반응하셨던 겁니다.

바디메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씀을 듣자 주님을 만나면 자신의 눈이 떠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슴이 요동쳤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지나가시자 멀리서부터 소릴 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살아있는 믿음이에요. 반응하는 믿음입니다. 그 소릴 듣고 주님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고 그에게 다가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이 떠졌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이렇게 꿈틀거리며 반응합니다. 작은지, 크던지 상관없습니다. 살아있어야 이러한 믿음에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고 어려운 일도 해결하는 축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이 바로 우리를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것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겨자씨 믿음은 참 작은 믿음입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 심겨지면 새들이 더위를 피하고 둥우리를 틀 정도로 큰 그늘을 만듭니다. 이처럼 작지만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담고 있는 것이 겨자씨의 생명력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겨자씨 믿음은 작지만 매우 꽉찬 진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거창한 믿음이 아닙니다.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허풍스런 믿음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자랑할만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싹을 틔우고 자라는 믿음, 자라서 주위의 생명을 움트게 하는 믿음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작습니다. 그러나 작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믿음의 보물을 숨겨두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겨자씨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 믿음으로 이 사순절 기간동안 지내시면서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 우리의 약한 부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속여서 사단의 올무에 넘어지는 우리가 되지 않도록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늘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이것을 늘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주님 함께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