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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주일예배 20170326)

by 온누리선교 2017. 3. 25.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3: 8~14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설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 이 성경말씀이 중요할까요?

독일의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카톨릭 신부로서 사명을 갖고 로마에 갔을 때, 그의 나이 30대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그가 동료 신부들과 같이 '스칼라상타'라는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계단은 28층으로 되어있는데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면서 올라가신 계단입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후에 천사들이 로마로 옮겼다면서 누구든지 이 계단을 무릎으로 한번 오르내리면 15년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말도 안 되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당연히 다른 신부님들과 함께 무릎으로 계단을 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반쯤 올라가는데 루터에게 한 말씀이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바로 로마서 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루터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캄캄한 밤 중에 샛별처럼 이 말씀이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강하게 마음을 치자 무릎으로 올라가던 그 스칼라상타 계단을 일어나서 뛰어 내려가 버렸다고 합니다. 이 후에 마틴 루터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이렇게 미신적인 신앙으로 살면 안된다 생각해서 95개조의 항의문을 만들어서 마침내 종교개혁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잘 나서 무엇을 이루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절절하게 진심으로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8~9절입니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예수만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즉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 가운데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인 된 우리를 벌할 수밖에 없고,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벌하실 수가 없고,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이 대신 벌을 받아 주실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구원의 든든한 변하지 않는 백(Background)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수 없고, 도리어 예수님이 죽기까지 사랑한 우리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으며, 다시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많다면 그대로 죽어서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함께 달렸던 두 죄수들과는 달리 다시 살아나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고 40일 동안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의로우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흠 없다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이 복음으로 우리는 믿음을 갖게 되고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다고(9) 하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으며 용서가 있고 자비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며 긍휼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한숨 쉽니다. 힘들어서 주저 앉습니다. 낙망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때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왜 이럽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받고도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성소까지 나아가지를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도 수시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지를 못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도 끊임없이 불순종하며 죄를 짓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게으를 뿐만아니라 우리의 신앙 양심에 꺼리끼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기도하기 위하여 엎드려도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나와 앉아 있어도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앞까지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10~11절 보겠습니다.

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우리가 아무리 칠흙 같은 밤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아무리 어두운 동굴 속을 걸어가고 있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곳에는 낮은 광도이기는 하지마는 그 나름대로 빛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떤 빛도 없는 어두움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우리의 상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 율법에 비추어서 바른 사람, 하나님의 뜻에 딱 맞는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율법 좀 지켜보겠다고 사람의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은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더럽히니 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율법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사람의 방법을 쓰는 사람을 저주 아래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러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사도 바울은 로마서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은 있지마는 또 넘어지고 쓰러질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선을 행하고자 하는 원함은 내게 있지마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사도 바울은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2~1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지 결코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도 역경은 닥쳐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영생을 바라볼 때 주님 앞에 들고 갈 믿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큰 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가 꿈을 포기하며 좌절하고 있습니까?

목표를 세우고도 우리는 왜 주저하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약속된 말씀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처한 환경과 내가 당한 역경을 바라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언제나 실패하고 맙니다. 마귀는 결코 휴가가 없습니다. 약속된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된 가나안으로 들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요단강이 가로 놓이고 여리고성이 우뚝 솟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역경을 바라볼 것인지 혹은 주님을 바라볼 것인지는 바로 믿음으로 승리할지, 아니면 믿지 못해 실패할지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결정해야 합니다.

 

루마니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리챠드 범브랜드 목사가 약 30명의 크리스챤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루는 김옥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밀쳐 던져졌는데, 침침한 감방 속에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 알아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감방 속의 모든 크리스챤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던 비밀경찰의 대위였습니다. 그가 왜 감옥에 들어 왔는지 너무나 의아해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 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 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보내라고 했습니다. 수줍어하며 자기의 사무실에 들어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져 있었습니다.

소년은 입을 열어서 말했습니다. "대위님, 당신이 우리 엄마와 아빠를 체포해 가신 분이에요. 오늘은 우리 엄마의 생일이예요. 나는 엄마의 생일이면 꼭 꽃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 왔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체포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나에게 늘 가르쳐 주시기를, 원수도 사랑해야 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에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이 꽃으로 대위님의 애기들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왔어요. 이 꽃다발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대위는 그 소년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소년을 부둥켜안고 눈물로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의 마음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왔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년의 믿음을 보십시오. 이 소년의 믿음으로 잔혹하고 무서운 대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능력의 종교입니다. 능력이 곧 기독교는 아니지마는 참 기독교 신앙에는 반드시 능력이 따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능력을 행하여야 합니다. 마귀의 올무에 매어 신음하는 영혼들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성경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러한 능력이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만, 내 가족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되시기 바랍니다. 이 사순절 바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이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하나님 축복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옵소서! 우리가 쓰러질 때 힘들 때마다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굳건한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해주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