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설교: 믿음이란?
설교본문: 히브리서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설교: 믿음이란?
예전에 우연히 배우 최강희 자매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자매님은 어머니의 뱃 속에 있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이 자매님을 임신한 어머니가 가난해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서 쓰러져 있을 때 근처 교회의 목사님과 교인들이 구해주시고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어머니는 믿음 생활을 시작하셨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님은 너무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교회 가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가서 별로 1시간을 앉아있어도 딴 생각만 하고 ‘빨리 목사님 설교가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불평했었다고 합니다. 10년간을 정말로 ‘가족들이 다 다니까, 어머니가 저렇게 원하시니까’ 그렇게 교회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왜 교회를 나오고 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여기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정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여러분에게 보이실 것입니다.
1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 번째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합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바라는 것들이 확실하게 나타난다”라는 말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바라는 것들에 대한 진짜 나타나지고 만져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할까요?
보통 믿음이란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지 않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루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상”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의 헬라어는 휘포스타시스인데 그 뜻은 “아래에 서 있다 혹은 밑에서 바쳐주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는 소유권을 나타내는 증서에도 이 말이 사용됩니다. 이런 의미를 생각할 때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은 믿음은 바라는 것을 얻게 해주는 증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믿음은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티켓 혹은 증서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허망한 것이 아니고 불확실한 것도 아닌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다'라는 말을 표현하는 히브리어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도 비교적 잘 사용하는 것이 `아만'입니다.
`아만'이란 절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기를 맡기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어린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의 동작을 표현하는 동사도 이 아만과 같은 어원이라고 합니다.
즉 히브리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심하고 자신을 맡기는 모습을 보고 믿음도 이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의 품안은 절대 안전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품안에 안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이렇게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자신을 맡긴다는 의미에서 볼 때 믿는 마음은 우리 주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천터미널에 가면 많은 고속버스들이 있습니다.
광주, 전주, 부산, 강릉 등등 많은 곳으로 갑니다.
이런 먼 곳으로 데려다주는 버스를 타려면 무엇을 해야합니까?
바로 목적지까지 가는 티켓을 돈으로 사면 됩니다. 그리고 그 티켓을 사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티켓을 받는 버스를 타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버스가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을 압니까? 뭘 믿고 탑니까?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압니까?
내가 산 티켓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 티켓이 만약에 부산을 가는 것이라면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분명히 그 티켓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 버스의 티켓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안전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가진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믿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믿음을 또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볼 수 있냐는 질문에 믿음으로 볼 수 있다는 답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상상을 한 번 해보십시오. 두 사람이 배의 갑판 위에 서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시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멀리 배 한 척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일어난 것입니까? 그것은 한 사람은 맨 눈으로 바라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망원경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맨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현실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망원경과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면 천국이 보이고, 이 땅에서 부터 그 천국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유명한 중세 시대의 수도사 안셀름은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능력이 모든 것을 알고 보게 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진 줄을 직접 보고 아십니까?
단 한 사람도 알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직접 알고 보고 느낀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압니다. 3절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습니까?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말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아무도 본 자들이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지으신 것을 압니다. 무엇으로 압니까?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적이 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아무도 주님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 관해 기록된 성경 말씀을 믿고, 그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의 말을 믿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을 우리의 구주로 믿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2절의 말씀입니다.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11장에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나열하여 놓았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선지자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간적인 약점이나 결점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참으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사람들로, 이스라엘 역사가운데에서 참으로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11장에서 왜 믿음의 승리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히브리서가 쓰일 당시,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이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는 데 따른 많은 희생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유대교에는 ‘출회’라고 하는 징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을 그 사회로 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완전히 사회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사람을 감옥에 수감시키기도 했고, 재산을 완전히 몰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개종한 기독교인들은 가족, 친구, 동료들로 부터 기독교를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오도록 회유 및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들 중에는 마음이 흔들리는 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승리한 구약의 인물들을 이렇게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도 자주 세상 가운데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까?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뒤로 하고 살도록 유혹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보게 될 구약 시대에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마 하신 메시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그토록 그 구약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바랐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사람들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을 살펴보면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끝까지 우리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날마다 이기고 살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믿음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사단에게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축복받으며 산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에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국의 어느 철도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늘 냉동차가 역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 그 차안을 청소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냉동차 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가 문을 밖에서 잠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다시 이 냉동차의 문을 열었을 때는 이 냉동차에 갇혀 있었던 그 사람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회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사건경위를 추적하는 가운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냉동차는 청소하느라고 스위치를 뽑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안에 갇힌 사람이 얼어 죽을 만큼 기온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소가 부족해서 질식할 정도로 그 냉동차가 적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얼어 죽을 만큼 기온이 떨어진 것도 아니요, 산소도 충분했다고 하면 도저히 청소하던 그 사람은 무슨 이유로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갇혔던 청소부 자신의 생각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갇혔다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은 냉동차 안에서 동태처럼 꽁꽁 얼어 죽게 되었다고 굳게 믿었고, 바로 이 생각 때문에 사실은 죽어야 할 아무런 객관적인 이유가 없는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고 만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 세상을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믿음이 두려움, 걱정, 염려, 핍박, 고난, 환난을 이깁니다. 믿음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보증서요, 믿음은 이 땅에서 부터 우리가 천국시민으로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물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왜 교회를 나오고 있습니까?
누구 때문에 여기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사랑하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이 자리에서 축복받는 것을 날마다 때마다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능력의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끌어가시고, 보호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결코 사단의 손에 주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의 인생을 책임져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의 부족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믿음의 연약함을 회개하오니, 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믿음 뿌리 내리고 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에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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