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로마서 12: 3~8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설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피아노를 사서 오른편에 놓자, 왼편에 놓자 싸우다가 갈라진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없다로 싸우다 갈라진 교회도 있습니다. 너무 심하게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둥글둥글 다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 총각과 경상도 처녀가 결혼하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우리 국수 끓여 먹자”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국시지 국수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둘이는 국수라는 둥 국시라는 둥 말다툼하다가 이장에게 어느 것이 옳은지 묻기로 하였습니다. 이장이 말했습니다. “국수와 국시는 재료가 다릅니다.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부가 물었습니다. “밀가루와 밀가리는 어떻게 다릅니까?”“밀가루는 봉투에 넣어져 있는 것이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겨 있습니다” 또 이 말을 들은 부부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봉투와 봉다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봉투는 기계로 찍은 것이고 봉다리는 손으로 붙여서 만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세세히 따질 필요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그게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지체요, 모두 한 형제요 자매요 가족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이걸 잘하고, 저 사람은 저걸 잘한다고 인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살면 주님께서 주신 은혜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주신 사명만 잘 지키고 살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은혜대로 행복하게 살지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기 카리스(χάρις) ‘은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카리스(χάρις)라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 가운데 카라(χαρά)가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할 때에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기쁜 상태가 되려면 어떤 마음으로 있어야 할까요? 마음이 평안해야 합니다. 마음이 불편한데 기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전에 큰 교회에서 있을 때, 설교 후에 어떤 집사님께서 오셔서 “오늘 설교가 참 은혜로웠어요~”라고 하시면, 저는 ‘아~ 이 집사님께서 말 못할 속상한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이 집사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아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오늘 본문에 보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전에 어떤 우화 중에 당나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금주머니를 항상 들고 다니던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해서 한번은 개울을 건너다가 훅 하니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니 소금은 다 물에 씻겨 내려가고 못쓰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이것을 보고 맘이 아파서 ‘앞으로는 소금주머니를 나르게 해서는 안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나귀는 ‘아 앞으로 너무 무거우면 일부러 개울에 빠져야지’라고 꾀를 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나귀가 짐을 실었는데 전보다 많이 가벼웠습니다. 그렇지만 이 짐도 거추장스러워서 개울만 나타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개울 앞에 다달았고 건너는 척 하면서 확~ 하고 넘어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짐이 흘러내려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무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 즉, 주인이 너무 무거운 소금주머니를 나르다 개울에 빠진 당나귀가 애처로워 솜을 나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른 당나귀는 한참 가벼운 그 솜도 무겁다며 꾀를 내 개울에 빠졌다가 엄청 혼이 난 것입니다.
욕심은 이렇게 우리가 소중히 받은 은혜를 다 버려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욕심이 우리로 불만의 마음을 갖게 하며 불만의 마음이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自足)하기를 배웠노라”(빌 4:11)라는 바울의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스스로 만족하며 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의 어느 부흥사가 하나님과 다음과 같이 대화했답니다.
부흥사: 하나님! 나에게 강한 믿음을 주셔서 미국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 네가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 아브라함은 그의 외아들까지 나에게 바칠 수 있었지 않니? 너의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 있느냐?
부흥사: 하나님! 다른 것은 다해도 외아들은 번제 발칠 수 없나이다.
하나님: 그럼 너는 아브라함이 될 수 없다.
부흥사: 그러면 나에게 강권적으로 능력을 주셔서 미국의 예언자, 엘리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엘리야와 같은 능력의 종이 되고 싶다고? 그러면 너희가 엘리야와 같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기손 시냇가로 데려가 죽일 수 있느냐?
부흥사: 미치지 않고서야~저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그럼 너는 엘리야가 될 수 없다.
부흥사: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셔서 미국의 모세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모세? 모세는 한 사람을 죽여서 모래사장에 죽여 모래사장에 묻었는데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부흥사: 하나님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어도 사람은 죽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너는 모세가 될 수 없다.
부흥사: 그럼 하나님! 전 누구처럼 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 넌 너처럼 되어라~ 다른 사람과 같이 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준 달란트대로 살아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위대하고 큰 일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신 분량대로, 주신 달란트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5절입니다.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 몸에 눈, 코, 귀, 입, 손, 발, 기타 여러 다른 기관들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쓸데없이 그냥 있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몸인 교회의 지체는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사람 몸의 각 지체가 중요하듯이 교회를 구성하는 각 지체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도양의 외딴 섬에 도도라고 불리는 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도도새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도도새의 고기는 끓이면 끓일수록 질겨지고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도새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도도새가 멸종되고 나자 그 섬에서 자라고 있던 갈바리야라는 나무가 더이상 번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갈바리야 나무의 씨앗은 껍질이 너무 두텁기 때문에 도도새에게 먹혀서 배설물로 나와야만 싹이 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눈에 하찮게 보이는 작은 것이 하나님의 눈에는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 12:25~26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이렇게 우리가 우리 지체의 각 부분을 사랑하듯 주님께서는 주님의 몸이신 교회에 속한 지체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고, 또 서로서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섬겨야 합니다.
6~8절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성령의 은사들이 어떤 것들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은사들은 고린도전서 12장이나 다른 성경구절에 나오는 은사들에 비해서 비교적 생색이 들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은사라기 보다는 속에 숨겨진 은사들이 많습니다.
예언하는 사람은 믿음의 분수대로 성경에서 말하는 은사로서 예언은 점쟁이가 점을 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언을 하는 선지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점을 치거나 예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이 어떻게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인가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혹은 장래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던 사람입니다.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섬기는 일을 잘 감당함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보답하는 일입니다. 섬기는 일이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이라 하여 일을 감당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이 사람은 일을 하면서도 은사를 제대로 잘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하고, 권위하는 자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구제하는 자에게는 성실함이 있어야 할 것이며, 다스리는 자는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진정으로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된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대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다른 사람을 판단할 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는 저희가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판단해 왔음을 고백하며, 주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 주님께서 주신 은혜대로 살아서 주님 축복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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