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20171018
성경본문: 로마서 14: 6~12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설교: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
어느 병원 암 병동에 두 사람이 입원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의사인데 임파선 암 환자였고, 또 한 사람은 백혈병 암환자인데 유명한 회사의 부장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고, 믿음이 신실하셨습니다. 둘 다 힘든 병을 앓게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가족들이 열심히 암환자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를 낫게 하시면 몽골에 의료선교사로 가겠습니다."라고 서원한 심재학 의사는 29세에 하나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암환자였던 부장님은 " 저를 고쳐주시면 주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살 가능성은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나았습니다. 그래서 이 박부장님은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신학교에 입학하여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비록 심재학 의사 선생님은 몽골 의료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지만, 박부장님은 이 의사선생님의 선교비전을 이루기 위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신학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인천의 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이 박부장님께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2009년에 몽골로 청년들과 함께 단기선교를 갔다가 연세친선병원에서 심재학 선생의 기념패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은 죽어서도 몽골 선교의 뜻을 이루었고, 한 사람은 살아서 몽골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던 것입니다. 살아서 주의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죽어서도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대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뿐입니다.
오늘 말씀에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라는 바울의 고백이 마음 속에 깊이 남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목숨을 바쳐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가 우리의 살아가는 이유를 아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8절 말씀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인생은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돈이나 재능, 인기, 권력은 사는 것을 돕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목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돈을 위해 살면 수전노가 되기 쉽고 권력을 위해 살면 독재로 삽니다.
살아가며 위해야 할 것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등등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하여’가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위하여 그가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은 자유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또 내가 믿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양심의 자유란 것이 순전히 자기를 위하여, 자기 욕심, 자기 편리를 위하여 무분별하게 오용되기 시작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마저도 나를 위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필요하면 하나님을 가지고 내가 필요없으면 하나님 버려도 된다는 사람입니다. 오직 ‘나를 위하여’ 가 사는 목적인 사람입니다.
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이런 주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 내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은 진짜 행복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하는 존재인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자기 생명의 소유주를 바로 알아야 그 주어진 인생의 목적을 바로 붙들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실상 사단을 자기 주인으로 섬기고 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류 중 모성애가 가장 강한 것은 펠리컨입니다.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입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인간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대신 피 흘린 펠리컨 같은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탐욕, 교만, 불신, 증오 거짓을 모두 혼자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신 분입니다.
이런 사랑 때문에 우리가 내 것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주님의 희생, 주님의 사랑을 당당히 받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세상에서 얻은 것은 하나도 내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을 아는 자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분수에 맞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돈을 좀 벌면 하나님 일하겠습니다. 내가 좀 나아지면 주님의 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이든,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라는 의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10~12절입니다.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안내하는 천사를 따라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한 곳에 이르니 혀가 수북히 쌓여 있더랍니다. 깜짝 놀라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천국에 웬 혀들인가요?"
"이것들은 모두 목사님들의 혀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 의아한 마음을 안고 다른 한 곳에 이르니 이번에는 귀만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재차 놀라 묻지도 못하는 그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이것들은 성도들의 귀입니다. 목사님들은 좋은 말만 했기에 혀만, 성도들은 좋은 말만 들었기에 귀만 천국에 온 것입니다."
다음 날 그 사람은 천사의 안내로 지옥 구경을 갔더랍니다.
천사가 보여주는 곳을 보니 피가 줄줄 흐르는 사람의 혀가 철사에 꿰어 말리듯 주렁주렁 수없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끔찍하여 고개를 도리는 그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가지각색으로 죄를 진 혀들입니다.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다른 곳으로 가실까요?" "아. 아니요!"
모든 신자는 각각 하나님 앞에서 최종판단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서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 11~12절을 보면, 누구도 남을 판단할 수 없고, 서로 비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처럼 형제를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은, 우리 각 신자들까지 포함해서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 밑에 있는 처지, 똑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재판 받아야 할 피고의 처지에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준엄하기 짝이 없는 심판대가 될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라고 했으니, 그 곳은 자기 곁에 꼭 같은 높이에 있는 사람을 도무지 내려다보려야 볼 수 없는 위치입니다.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했으니, 거기는 남 고발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오직 자기 행한 것만을 하나님 앞에 이실직고해야 할 자리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마지막 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자세로 정말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날 그 자리에서 결코 할 수 없을 일을 오늘 이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결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먼저 용서하고 받아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보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애써 주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목적은 같아도 그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서로의 재판장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꼭 같은 피고들로서 나란히 서 있는 입장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약한 교인이라 해도 결코 비판하거나 재판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의 품안에 더욱 꼭 껴안아 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위해 사는 가운데에서도 결코 함께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비판하거나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유명한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유서를 쓰는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떠날 때마다 고쳐 쓰고 유서를 비서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유서에는 교회에 드리는 메시지. 가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습관을 가진 후부터 그의 여행이 무척 진지해졌다고 말합니다. 하루하루의 발걸음, 한번 한 번의 설교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진지함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이렇게 부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주의 것임을 깨닫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 심판대 앞에 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도 주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고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오직 주님 말씀하시는 데로 가겠습니다. 날마다 주의 능력과 주의 말씀으로 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 56)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것 (수요예배 20171025) (0) | 2017.10.25 |
---|---|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 (고후 6:2 주일예배 20171022) (0) | 2017.10.22 |
믿음의 그릇대로 받는 축복 (왕하 4:1~7 주일예배 20171015) (0) | 2017.10.15 |
로마서 강해 54) 믿음이 약한 자에 대하여 (수요예배 20171011) (0) | 2017.10.11 |
하나님의 의(롬1:16~17 주일예배 20171008) (0) | 2017.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