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로마서 14: 13~ 18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설교: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것
미국이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했을 때, 그 원리를 발명한 아인슈타인(Einstein, Albert) 박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원자탄은 가공할 무기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원자탄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원자탄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원자탄을 사용하는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악이 문제고 죄가 문제란 말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상과 사람의 마음, 그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 사도는 로마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고 했습니다.(20절)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어느 날 로마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먹는 문제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다시 말해 우상에게 제물로 올려 졌던 음식을 먹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에 대하여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자기와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축복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고 사랑이 넘쳐도 모자를 판에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상대방을 비판하는 그 일이 하찮은 작은 일 같지만 하나님의 축복 받는 일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에 방해가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 제대로 우리가 쓰임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사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오늘 주신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통해 아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3~14절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미국 영화감독 존 휴스턴은 자녀들에게 친구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을 당부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딸 안젤리카가 식탁에서 “난 반 고흐의 그림은 질색이에요, 아빠!”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휴스턴이 말했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싫다고? 그럼 네가 알고 있는 반 고흐의 그림을 몇 점이나 가지고 있고 왜 싫은지 이유를 말해보거라” 딸이 우물쭈물할 때 휴스턴은 “상대방을 자세히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탈무드에서 남을 비판 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자신,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화제가 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내가 남을 비판하면 나에게는 열배, 스무배로 되돌아오게 마련입니다.
비판은 이렇게 자기 살을 깎아 먹는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자기 영혼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판 하지 말고 도리어 드러내서 부딪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사람의 말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말합니다. 속된 것, 즉 거룩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가 아니라 속되다고 말하는 사람이 거룩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즉, 비판하는 그 순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그 사람보다 더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한 여자를 끌고 와서 욕하고 비난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
우리는 주님 앞에서 아무도 거룩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속된 사람입니다. 다 죄지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늘 겸손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위해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담배나 술 문제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담배를 피지 말라~’라고 성경에 있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라고 했지 술 먹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셨고 예수님께서도 포도주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담배 피는 것이 죄가 되지 않고 또 술 먹는 것도 죄가 아닌데 뭐 그러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든다면 결과적으로 죄입니다. 형제를 신앙적으로 시험에 들게 해서 넘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예전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오래간 만에 만났는데 ‘뭐 이 정도 맥주 한잔 가지고 그러느냐’라고 해서 맥주 한 잔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 교회 교인이 그 곳에 들렸다 이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놀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목사님이 몰래 술 마시드라’하면서 그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지 않겠다고 하면, 저는 주님 앞에서 큰 죄를 진 것입니다.
그래서 15~16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그러니, 바울의 말을 쉽게 우리에게 맞추어 생각해 보면, 마시거나 피운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며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얘기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큰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살리시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이끄신 사람인데 우리가 비판하고 마음을 상하게 해서 주님 앞에 오지 않게 하냐 말입니다.
옛날에 세 자매를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 자매는 모두 예뻤으나, 그들은 제각기 한 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딸은 게으름뱅이이고, 둘째딸은 훔치는 버릇이 있고, 셋째 딸은 험담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한편, 아들 삼형제를 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세 딸을 모두 자기네 집으로 결혼시키지 않겠느냐고 청해 왔습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자기 딸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그대로 말하자 부자는 그런 점은 자기가 책임지고 그것을 고쳐가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는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아버지는 게으름뱅이 첫째 며느리에게는 여러 명의 하녀들을 고용해 주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는 둘째 며느리에게는 큰 창고의 열쇠를 주어 무엇이든지 갖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에게는 매일같이 오늘은 험담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사돈집을 찾아갔습니다. 큰딸은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고, 둘째 딸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딸은 시아버지가 자기에게 남녀 관계를 꼬치꼬치 묻기 때문에 귀찮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친정아버지는 자기 셋째 딸의 말만은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셋째 딸은 시아버지까지도 헐뜯고 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안에 덕을 세워야 합니다. 덕이란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고 어려움을 준다면 그것은 덕스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덕을 세우면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도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살려면 이것 저것 꼬집어 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사는 우리가 당연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7~18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우리는 두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한국 땅에서 사는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한국 법과 질서를 지킵니다.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법과 질서를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 바로 의와 평광과 희락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르게 살기'와 '사이좋게 살기' 그리고 '기쁘게 살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을 좋아하시고 찾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의 십자가로 용서 받았습니다. 죄인의 옷을 벗고 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아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용서받은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나 그리고 이 세상 가운데에서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이좋게 사는 살기'입니다. 누구와요? 하나님과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과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웃 사랑'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우리를 위해 그 끔찍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화목 제물로 오셨습니다. 사이를 좋게 해주시려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 평강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참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쁘게 살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락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재미있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내가 낳은 아이가 아무 것도 안하고 보고만 있어도 기쁘고 즐거운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기쁘고 하나님만으로도 즐거운 것입니다.
영국에 가면 여왕이 사는 버킹엄 궁전이 있습니다. 여왕이 그 궁 안에 계시면 영국 국기가 궁전 꼭대기에 게양되고, 없으면 여왕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까?
우리 안에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다면 평안해야 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다면 평안과 기쁨의 깃발을 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셔야 그 깃발을 달 수 있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의 왕이 거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존재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이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주께 영광 올려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를 사셨는데 우리는 제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남을 비판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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