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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인 그리스도인 (롬 11장 22~24 주일예배 20171105)

by 온누리선교 2017. 11. 3.

성경본문 : 로마서 11: 22 ~ 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설교: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인 그리스도인

 

어느 성도가 빨래비누 공장 주인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신자이고 또 한 사람은 신자가 아니어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어느 날 빨래비누 공장 사장이 성도인 친구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자네가 믿는 복음이 그렇게도 귀하고 또 열심히 전하는데, 왜 세상은 점점 죄악이 늘어나고 부조리가 날로 심하여 가는지 설명 좀 하게."

교회가 그렇게도 많은데 세상은 왜 악해지는지 말해보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열심히 빨래비누를 많이 만드는데 왜 거리 에는 아직도 더러운 것이 많으며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랬더니 사장은

"그거야 그들이 빨래비누를 사다가 쓰지 않기 때문 아니겠나?"라고 너무나 당연한 듯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거야! 복음은 분명히 복음이지만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찌하겠는가. 자네도 복음을 믿지 않으니까 그 모양이지.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변화가 있겠는가?"라고 재치 있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축복 받고 싶으냐? 축복받는 그릇이 되라

그런 그릇이 되고 싶으냐? 그럼 깨끗하게 되라

깨끗한 그릇이 되고 싶으냐?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깨끗이 되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축복받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야 합니다. 온전히,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딱 붙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오늘 사도 바울은 참 감람나무, 돌 감람나무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사는 방법을 오늘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 말씀에 귀 기울이시고 이 말씀에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2절입니다.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예전에 기독교신문을 보다가 기사보고 너무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교도소의 범죄 자중 85%가 자신이 기독교인들이라고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더더군다나 미국 살다가 죄 저질러서 그 교도소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도 자신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왜 교도소에 가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심에 없고 그러니 하나님의 준엄하심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찍혀버려 저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한복음 15:5)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하셨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공급받지 못하고 지탱하지도 못해 말라 비틀어져 죽어져 버리는 가지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1장을 보면, 사도바울은 감람나무를 통해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 감람나무는 우리들이요, 좋은 감람나무는 예수님이십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를 말하는 데 열매를 먹기도 하고, 좋은 기름을 짜서 사용하기도 하는 나무입니다.  

올리브의 가지와 잎은 비둘기와 함께 평화의 상징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구약에서 대홍수의 후 노아가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돌아온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돌 감람나무는 열매를 먹을 수도 없으며, 좋은 기름을 얻을 수 없는 나무를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나무를 접붙이는 방법은 돌 감람나무의 밑가지를 자르고, 좋은 감람나무 가지를 그 위에 붙이면 됩니다. 그러면 이후 그 가지는 자라나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맞을 때에는 돌 감람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감람나무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23~24절입니다.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우리 역시 돌 감람나무와 같이 죄악의 사람들, 범죄한 우리들이었지만, 이제 새로운 좋은 감람나무의 가지의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가 자라나서 좋은 감람나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꺾이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참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가게 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야기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저분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잊었나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이제 두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번째, 두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좋은 감람나무의 가기의 접붙임을 했지만, 그 나무가 자라나서 여전히 돌 감람나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만일 이 나무의 주인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기를 원해 접붙임을 했지만, 여전히 나쁜 열매를 맺는 돌 감람나무라면 너무나 화가 나고 뽑아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하나님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말씀대로 사는가 말입니다. 우리는 좋은 가지의 좋은 감람나무 가지로 접붙임을 받고 자라나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과연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가 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 좋은 감람나무로 살지 못하고 아직도 전에 있던 돌감람나무의 성질이 남아서 죄를 계속 저지르고 나쁘고 악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자신 스스로가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지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가 정성을 드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나무를 기르는 주인의 마음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어 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내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적은 사람은 내 뜻대로 안되면 하나님 사랑을 비판하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나의 소원대로 되어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손바닥만 한 것을 딱 내어놓고 이대로 되어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첫째는, 접붙임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접붙임을 하거나 접붙임을 받는 연속의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접붙임을 받으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접붙임을 받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오늘 내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뿐 아니라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한국 땅에서 믿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선교사들의 희생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희생 위에서 우리가 참생명을 사실을 깨닫는다면, 절대로 높은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서 내가 존재하므로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4절에서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은 자리에 그 자리에 뿌리가 나고, 줄기가 나고, 가지가 나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잊지 마시고 예수님께 접붙인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얻어 사단이 공중권세 잡은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놀라운 은혜를 주신 주님!

주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께 날마다 붙어 있어서 점점 참 감람나무로 변하게 하시어 좋은 열매 복된 열매 맺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늘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